영화84 데드풀과 울버린 속 두 퇴물 히어로가 남긴 묵직한 가장의 무게 맥주 캔이 나도 모르게 손안에서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시계 바늘을 보니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고, 거실 바닥엔 알루미늄 캔 따는 소리마저 크게 울릴 정도로 적막했습니다. 낮에 가공 센터 물량 맞추느라 도면 치수와 지코드(G-code) 숫자를 온종일 뚫어져라 쳐다본 탓에 눈알이 뻑뻑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공차를 맞추겠다고 씨름하다 퇴근하면 머릿속이 뿌옇게 타버린 느낌이 들곤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큰놈과 이제 유치원 들어간 둘째 녀석이 곤히 잠든 방 문을 살며시 닫아걸었습니다. 집사람도 하루 종일 집안일에 애들 챙기느라 지쳤는지 먼저 곯아떨어졌더군요. 온 집안의 불을 다 끄고 텔레비전 화면 불빛만 희미하게 켜둔 채 캔맥주 하나를 깠습니다. 그렇게 불 꺼진 거실에 혼자 웅크리고 앉.. 2026. 9. 18. 영화 베를린, 기술자 가장의 눈에 들어온 사내의 등판 처음엔 총구만 보였고, 두 번째엔 굽은 등판만 보이더라고요.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을 때는 화려한 총격전과 맨몸 액션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그러다 십수 년 세월이 훌쩍 지나고, 납기 일정에 쫓겨 며칠 밤을 연달아 새운 어느 잔업 퇴근길 늦은 밤에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다시 마주한 화면 속 풍경은 예전 기억과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공장에서 종일 머시닝센터 돌아가는 소음과 절삭유 냄새를 들이마시며 모니터 속 공구 경로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들어온 참이었습니다. 눈은 뻑뻑하고 어깨는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겉옷도 채 벗지 못한 채 소파 모서리에 걸터앉았습니다. 화면 속에 비친 베를린의 축축하고 어두운 회색 공기는.. 2026. 9. 17. 영화 밀수, 기름밥 먹는 가장 눈에 밟힌 바닷속 사투 에어컨 빵빵한 영화관으로 피서나 가자 싶어서 애들이랑 집사람 데리고 동네 극장으로 갔습니다. 한낮 기온이 35도를 훌쩍 넘어가던 주말이었는데, 평일 내내 기름 냄새 배인 현장과 모니터 앞을 번갈아 오가다 보니 휴일만큼은 시원한 곳에서 머리나 좀 식히고 싶었습니다. CAD 화면 속에서 선 하나, 공차 100분의 1밀리미터 맞추느라 눈알이 뻑뻑했던 한 주였습니다. 매표소에서 팝콘 라지 사이즈 하나에 콜라 두 잔 받아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양옆으로 초등학생 두 녀석이 신나서 빨대를 물고, 아내도 모처럼 땀을 식히며 스크린 광고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냥 시원한 바람 쐬면서 가볍게 범죄 액션 영화 한 편 보고, 저녁이나 사 먹고 들어가면 딱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전히 더위를 피하러 들어간 피서용 .. 2026. 9. 16. 영화 족구왕, 기름밥 먹던 스무 살 내 모습이 자꾸 밟히는 밤 어느 날 밤, 불 꺼진 거실에서 볼륨을 1로 줄이고 맥주 캔을 홀짝이며 영화 을 다시 틀었습니다. 야간 잔업을 마치고 집에 오니 열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아내와 두 아이는 이미 안방에서 깊게 잠들어 있었고, 집 안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작업복 조끼를 벗어두고 샤워를 마쳤는데도 손톱 밑에 스며든 절삭유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몸은 천근만근 피곤한데 머릿속은 온통 모니터 잔상으로 가득 차서 잠이 통 오지 않았습니다. 낮에 가공 불량 난 블록 하나 때문에 치수 맞추느라 머리를 쥐어짰던 피로가 그대로 얹혀 있었습니다. 식탁 구석에 굴러다니던 캔맥주 하나를 뜯어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습니다.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 보관함 구석에 넣어두었던 영화를 눌렀습니다.. 2026. 9. 15. 영화 리볼버, 약속했던 내 몫을 떼먹힌 기술자의 기억 쇳가루 냄새 맡고 온 날은 유독 신경이 곤두서서 쉽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샤워기로 머리를 두 번 감고 비누칠을 박박 문질러도 코끝에 남은 특유의 절삭유 냄새와 쇠 비린내는 살결 깊숙이 배어 쉽게 가시지 않지요. 모니터 앞에서 CAM 툴패스 선을 하루 종일 뚫어져라 쳐다보고 가공 소음 속에 파묻혀 지낸 날은, 눈을 감아도 시커먼 화면 위에 알록달록한 공구 궤적이 잔상처럼 어른거립니다. 거실 불을 다 끄고 아이들과 아내가 잠든 방 문을 조심스레 닫았습니다. 시계 바늘은 이미 자정을 넘어 새벽을 향해 꺾이고 있었고, 욱신거리는 손가락 관절을 주무르며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 들었습니다. 멍하니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 화면에 뜬 영화 리볼버를 결제한 건, 대단한 명작을 기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2026. 9. 14. 필사의 추격, 쇳가루 마시며 뛰는 40대 가장의 속도전 캔맥주 쥔 손아귀에만 괜히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웃자고 틀어놓은 코미디 영화인데 왜 나 혼자 목구멍이 바짝 마른 채 화면을 쏘아보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루 종일 기계 돌아가는 굉음 속에서 0.01밀리 공차 맞추느라 눈알 빠지게 치수 재고 들어왔다. 그런데 화면 속에서 악다구니 쓰며 내달리는 인간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시동 꺼진 차 안마냥 굳어 있었다. 다들 실실 웃으며 킬링타임용으로 본다는 이 영화를 두고, 나는 기름때 낀 작업복 바지 그대로 입은 채 안방 문 닫아걸고 혼자 들이켜는 싸구려 맥주캔을 찌그러뜨리고 있었다. 웃기려고 만든 장면에서 왜 내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지 기가 찼다. 왜 이 숨 막히는 추격전에 내 목숨줄이 같이 얹혀서 덜컹거리는 건지. 스크린 안이나 공장 바닥이나 어떻게든 살아남겠.. 2026. 9. 13. 이전 1 ··· 5 6 7 8 9 10 11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