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필사의 추격, 쇳가루 마시며 뛰는 40대 가장의 속도전

by cow85 2026. 9. 13.

필사의 추격 영화 공식 포스터

캔맥주 쥔 손아귀에만 괜히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웃자고 틀어놓은 코미디 영화인데 왜 나 혼자 목구멍이 바짝 마른 채 화면을 쏘아보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루 종일 기계 돌아가는 굉음 속에서 0.01밀리 공차 맞추느라 눈알 빠지게 치수 재고 들어왔다. 그런데 화면 속에서 악다구니 쓰며 내달리는 인간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시동 꺼진 차 안마냥 굳어 있었다. 다들 실실 웃으며 킬링타임용으로 본다는 이 영화를 두고, 나는 기름때 낀 작업복 바지 그대로 입은 채 안방 문 닫아걸고 혼자 들이켜는 싸구려 맥주캔을 찌그러뜨리고 있었다. 웃기려고 만든 장면에서 왜 내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지 기가 찼다. 왜 이 숨 막히는 추격전에 내 목숨줄이 같이 얹혀서 덜컹거리는 건지. 스크린 안이나 공장 바닥이나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바둥거리는 꼴은 참 소름 돋게 닮아 있었다.

 

가면 갈아 끼우는 40대 가장, 사기꾼이랑 똑같았다

영화 속 사기꾼이 살아남겠다고 낯짝을 싹 바꾸며 변장술을 부려대는 꼬락서니를 보는데, 거실 구석에 앉아 있던 내 몰골이 딱 겹쳐 보였다. 거래처 미팅 들어갈 때는 납기 무조건 맞춘다고 사람 좋은 기술영업 이사마냥 허허 웃는다. 그러다 공장 문 열고 들어서는 순간 셋업 불량 낸 막내 녀석 붙잡고 쌍심지를 켠다. 그게 내 일상이다. 퇴근하고 집 현관문 열 때는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정한 아빠 얼굴을 덮어써야 한다.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가죽을 뜯어고치듯 표정을 갈아 끼우고 산다. 내 꼴이 저기 나오는 사기꾼 놈하고 뭐가 다른가 싶었다. 주인공 놈이 가발 뒤집어쓰고 수염 붙이며 숨 가쁘게 튈 때, 내 캔맥주 쥔 손아귀에만 괜히 힘이 꽉 들어갔다. 시원하게 넘어가야 할 알코올이 식도를 긁고 내려갔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으로는 내일 아침에 걸어야 할 프로그램 피드값과 밀린 자재 입고 일정을 굴리고 있었다. 도망치는 놈이나 쫓는 놈이나 둘 다 눈에 불을 켜고 구르는 화면을 보며 턱주가리에도 덩달아 힘이 빡 들어갔다. 쉬려고 앉아 있는 시간인데도 온몸의 신경이 머시닝센터 황삭 치듯이 거칠게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숨이 찼다. 스크린에서 터져 나오는 숨찬 뜀박질 소리가 거실 바닥에 쿵쿵 울려대는데, 그게 꼭 야근 끝내고 계단 올라올 때 내 가슴팍에서 들리던 숨소리 같았다. 쇳가루 섞인 기름 연기를 십수 년 들이마신 탓인지 계단 한 층만 급하게 밟아도 목구멍에서 쇠 긁는 소리가 난다. 저놈이 골목길을 가로지르며 헐떡거릴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납기 코앞에 두고 메인 스핀들 에러 떠서 공구함 집어던지고 컨트롤러 앞으로 뛰어가던 내 다리통의 떨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코미디라고 깔깔댈 틈도 없이 호흡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따지고 보면 저 사기꾼 변장술보다 내 변장술이 한 수 위지 싶어 헛웃음만 삐져나왔다. 저놈은 경찰이나 깡패 몇 놈 속이자고 저 난리를 치지만, 나는 매달 꽂히는 대출 이자랑 두 녀석 학원비 청구서 앞에서 멀쩡한 척, 여유 있는 척 세상 전체를 속이며 산다. 기름 냄새 찌든 손톱 밑을 비누로 빡빡 문질러 닦아내고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럴 때의 뻔뻔함은 웬만한 전문 사기꾼도 명함 못 내민다. 정말이지 징글징글하다. 웃기라고 연출해 놓은 탈출극을 보면서 내 안의 알량한 방어기제만 실시간으로 들통나는 것 같아 헛기침을 삼켰다.

 

주차장 5분, 6~7년째 혼자만 아는 충전 시간

아파트 지하 3층 구석에 차를 대놓고 시동을 끄면, 그제야 귀를 찢던 기계 소음이 딱 멎는다. 핸들에 이마를 콱 박고 한 5분은 멍하니 엎드려 있어야 겨우 사람이 숨을 쉰다. 낮에는 분당 수천 회전으로 돌아가는 엔드밀 날 끝만 노려보며 소수점 셋째 자리 오차와 싸운다. 퇴근길 운전대 잡을 때쯤엔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그 지경으로 집에 바로 올라가면 애꿎은 애들한테 날카로운 소리가 튀어나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차 안의 그 묵직한 어둠 속에서 찌꺼기를 걸러내야만 한다. 그 5분이 있어야 빨간 불 들어오며 바닥난 배터리를 딱 한 칸 채운다. 그래야 '가장'이라는 얼굴로 갈아 끼울 수 있다. 6~7년 전부터 나 혼자만의 암묵적인 규칙이 되어버린 시간이다. 차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부터는 피곤해 죽겠다는 소리도, 기계에 손가락 찧여서 욱신거린다는 말도 입 밖으로 내면 안 된다. 기름밥 먹고 사는 40대 아비가 집구석에 들고 들어가야 할 것은 고단함이 아니다. 생활비와 듬직한 등판뿐이다. 그걸 뼈저리게 안다. 가끔은 핸들에 얼굴을 묻은 채로 내 진짜 얼굴 가죽이 어디에 붙어 있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기계 도면을 노려보며 단가 후려치는 원청 담당자 멱살을 잡고 싶던 성질머리가 진짜 내 모습인지, 아니면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낯짝이 진짜 나인지 분간이 안 간다. 피복 다 벗겨진 전선마냥 위태로운 정신을 겨우 붙들어 맨다.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영화 속 주인공이 사방에서 조여오는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던 그 위태로운 스텝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영화가 쉼 없이 달리고 부딪히며 속도를 내는 걸 보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역설적이게도 그 멈출 수 없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주차장에서 핸들에 머리 박고 버티는 5분의 침묵처럼, 찰나의 틈도 주지 않고 내달리는 화면의 리듬이 오히려 내 굳어버린 머릿속을 시원하게 깨부수고 있었다. 머뭇거리면 잡힌다. 멈추면 끝장이다. 저 바닥이나 내가 버티는 현장이나 매한가지였다.

 

열 40도·팔 골절, 5분이 증발한 딱 두 번

차 안에서 핸들에 이마 박고 버티던 그 5분이라는 안전장치가 인생에서 통째로 날아간 날이 딱 두 번 있었다. 둘째 놈이 열 40도까지 치솟아 숨을 꺽꺽 넘긴다는 전화를 받았던 겨울밤이랑, 큰놈이 놀이터에서 떨어져 팔이 꺾였다고 아내가 울부짖던 초여름 저녁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차 시동 끄고 한참을 멍때리며 호흡을 골랐을 테다. 그 두 번만큼은 주차선 맞출 생각도 못 했다. 차를 패대기치듯 세워둔 채 계단을 세 칸씩 뛰어 올라갔다. 애 아프다는 소리를 귀로 듣는 순간, 하루 열두 시간 서서 일하느라 끊어질 것 같던 허리 통증이고 어깨를 짓누르던 피로고 순식간에 싹 증발해 버렸다. 사람 뇌라는 게 참 간사하다. 내 몸뚱어리 힘든 건 엄살을 그렇게 피워대면서도 새끼들 위급하다는 경보가 울리면 엔돌핀인지 뭔지가 터져 나와 고통을 뚝 끊어버린다. 빨리 문 열고 들어가서 애를 들쳐업고 응급실로 쏴야 한다. 그 한 토막 생각만 머릿속에서 시뻘건 비상등처럼 미친 듯이 번쩍거렸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계단을 단숨에 치고 올라가 현관 앞에 섰는데, 손가락이 덜덜 떨려서 도어록 비밀번호를 두 번이나 삑삑 틀려먹었다.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흥건하고 심장은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데 기계음만 야속하게 울려 퍼졌다. 신발장 앞에 주저앉아 대가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그 몇 초의 정적과 지옥 같은 초조함은 수천만 원짜리 금형 공구 부러뜨려 먹었을 때의 충격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생지옥이었다. 미치는 줄 알았다. 영화 속에서 박성웅이 문손잡이를 거칠게 덜컥거리며 상대를 압박해 들어가는 그 쇳소리가 났다. 그 순간 그날 밤 도어록 삐빅거리던 에러음처럼 귓구멍에 콱 박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손잡이를 부술 듯이 잡아채던 그 거친 질감, 어떻게든 이 문을 뚫고 들어가야만 한다는 그 살기 띤 절박함이 화면을 뚫고 튀어나와 내 멱살을 잡았다. 남의 영화 보는 게 아니라 화면에 내 찌질하고 절박했던 순간들 비춰보는 거였다.

 

 코믹 액션이라는 포장지를 둘러메고 있지만, 결국 이 영화는 각자의 낭떠러지 끝에 서서 이 악물고 발버둥 치는 놈들의 악착같은 질주극이다. 헛웃음 터지는 난장판 속에서도 인물들이 뿜어내는 그 원초적인 속도감과 살려는 의지가 내 낡은 엔진을 억지로 점화시키는 것 같아 가슴팍이 뻐근했다. 맥주 캔을 비우고 빈 깡통을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내일 아침에도 또 지각 없이 공장 셔터를 올리고 시끄러운 가공 기계 앞에 똑바로 서 있어야 한다. 애들 자는 숨소리 한번 확인하고, 땀에 전 양말 벗어 던진 뒤 내일의 전투를 위해 드러눕는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