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밤, 불 꺼진 거실에서 볼륨을 1로 줄이고 맥주 캔을 홀짝이며 영화 <족구왕>을 다시 틀었습니다. 야간 잔업을 마치고 집에 오니 열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아내와 두 아이는 이미 안방에서 깊게 잠들어 있었고, 집 안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작업복 조끼를 벗어두고 샤워를 마쳤는데도 손톱 밑에 스며든 절삭유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몸은 천근만근 피곤한데 머릿속은 온통 모니터 잔상으로 가득 차서 잠이 통 오지 않았습니다. 낮에 가공 불량 난 블록 하나 때문에 치수 맞추느라 머리를 쥐어짰던 피로가 그대로 얹혀 있었습니다. 식탁 구석에 굴러다니던 캔맥주 하나를 뜯어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습니다.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 보관함 구석에 넣어두었던 영화를 눌렀습니다. 다들 취업 준비에 학점 관리에 목을 매는데, 혼자서 사라진 족구장을 되찾겠다며 캠퍼스를 누비는 복학생 만섭이의 이야기. 몇 번을 다시 봐도 웃긴 장면마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화면 속 모습들이 자꾸 마음 한편을 툭툭 건드렸습니다.
사는 게 숨 막힐 때마다 다시 꺼내보는 이야기
이 영화는 지금까지 서너 번 넘게 돌려본 것 같습니다. 사는 게 팍팍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 영화를 다시 찾게 됩니다. 남들은 토익 점수 만들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느라 눈이 시뻘건데, 혼자서 족구장을 만들어달라며 뛰어다니는 만섭이의 모습은 여전히 황당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그깟 족구가 뭐가 대단하다고 온몸을 던지는지 모릅니다. 남들이 보면 철딱서니 없는 복학생의 헛짓거리 코미디일 뿐인데, 이상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다가도 가슴 안쪽이 뻐근해졌습니다. '저 친구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렇게 앞뒤 안 재고 자기 좋아하는 일에 덤벼드는 걸까.' 그 대책 없는 당당함이 사무치게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화면 속 만섭이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문득 스무 살 무렵의 제 얼굴이 겹쳤습니다. 기술 하나 배우겠다고 무작정 산업단지로 내려와 기름밥 먹으면서도 일 배우는 게 재밌다며 낄낄대던 그 시절의 내 모습 같았습니다. 그때는 기름때 묻은 장갑을 끼고 12시간씩 서 있어도 퇴근길에 친구들과 소주 한잔 마시면 세상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쇳가루 날리는 바닥에서 칩을 털어내면서도, 내 손으로 무언가를 깎아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심장이 뛰던 시절이 제게도 분명 있었습니다.
마흔 넘어 다시 보니, 시선이 머문 선배의 굽은 등
그런데 마흔을 넘기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다시 보니, 시선이 영 딴판으로 흘러갔습니다. 주인공 만섭이의 해맑은 족구 열정보다는, 좁은 자취방에 틀어박혀 시험공부에 매달리던 복학생 선배 형탁에게 자꾸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족구공을 차자며 문을 두드리는 만섭이를 향해 차갑게 쏘아붙이고, 매일 실패와 불안 속에 찌들어 있던 그 선배의 굽은 등판이 남일 같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저 선배는 왜 저렇게 성격이 꼬였을까, 왜 저리 청춘을 낭비하며 어둡게 살까' 답답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 역시 그 선배와 다를 바 없는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만섭이처럼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웃고 떠드는 것은 어쩌면 처자식 밥그릇 무게를 짊어지지 않은 자들의 사치였던 것입니다.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대출 이자, 훌쩍 자란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까지 통장에 찍힌 숫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그런 낭만을 부릴 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게 '재미'라는 단어는 소수점 둘째 자리 공차를 맞추는 가공 도면과 빡빡한 납기일 밑바닥에 파묻혀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CAM 프로그램을 짜면서 0.01mm 덜 깎여서 조립이 안 되면 어쩌나, 열처리 들어가서 변형이 오면 거래처 클레임을 어떻게 감당하나 전전긍긍하는 것이 제 일상이었습니다. 재미 같은 소리를 했다가는 당장 납기를 맞추지 못해 큰 손해를 봐야 하는 게 잔인한 현장의 계산서입니다. 그렇게 저는 만섭이를 동경하면서도 현실에서는 형탁 선배처럼 잔뜩 웅크린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공장 신입, 손톱만 한 강아지를 조각하다 떠난 날
몇 해 전, 우리 공장에 들어왔던 스물다섯 살짜리 신입 녀석이 떠올랐습니다. 손재주가 제법 좋고 눈이 유난히 초롱초롱해서 바닥 청소부터 공구 세팅까지 싹싹하게 잘 배우던 녀석이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주문 물량이 밀려 다들 정신없이 기계를 돌리고 있는데 그 녀석 담당 머시닝센터에서 이상한 가공 소리가 났습니다. 다가가서 도어 창을 들여다보니, 납품할 제품을 깎는 게 아니었습니다. 구석에 굴러다니던 알루미늄 스크랩 자투리를 물려놓고 0.05mm짜리 앤드밀로 손톱만 한 강아지 미니어처를 정성스레 조각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쳤습니다. "여기가 네 개인 공방이야? 놀이터야?" 공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호되게 쏘아붙였습니다. 녀석의 얼굴에서 환하게 돌던 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꺼져버렸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잘못했다고 연신 사과하는데, 기계 뒤편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문 제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라이터 불을 켜는데 문득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자괴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습니다. 납기 압박에 쫓겨 눈앞이 캄캄했다지만, 녀석이 눈을 반짝이며 무언가를 만들던 그 마음까지 짓밟아버린 꼴이었습니다. 그 녀석은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직서를 냈습니다. 마지막 날 옥상에서 담배를 한 대 나눠 피우는데, 녀석이 먼 산을 보며 툭 뱉더군요. "반장님, 저 반장님처럼 되는 게 무서워요. 매일 기계 소리만 듣고 치수만 보다가 제 손으로 재미난 거 하나 못 깎고 늙어갈까 봐 겁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명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숨이 턱 막혔습니다.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저 피우던 담배만 바닥에 비벼 껐습니다. 속으로는 '그래, 너라도 도망쳐서 네 족구공 차며 살아라' 싶었습니다.
잃어버린 주사위, 그리고 가장의 자리
녀석이 떠나고 한참 뒤, 주말 특근을 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손바닥만 한 알루미늄 각재 하나를 주워 작업대 위에 올려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문득 나도 기계에 물려 뭐 하나 재미 삼아 깎아볼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바이스 손잡이를 잡은 채 멍하니 서 있는데, 도대체 내가 뭘 만들고 싶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10분 동안 그 차가운 쇳덩이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결국 스크랩 박스에 툭 던져 넣고 말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족구공을 어디다 잃어버렸는지조차 까먹은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제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스무 살 무렵, 처음 범용 밀링을 배울 때 자투리 알루미늄을 주워 손톱만 한 정육면체 주사위를 손수 깎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6개 면에 센터 드릴로 조심스럽게 점을 파내고 사포로 모서리를 곱게 갈아냈습니다. 퇴근길 시내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주머니 속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며 실실 웃었습니다. 비록 손바닥은 쇳밥에 찔려 피가 배어 나왔지만, '앞으로 내 인생은 굴리기만 하면 무조건 6만 나오겠지' 하던 스무 살의 당돌한 낭만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현장에서 알루미늄 자투리를 볼 때마다 '아, 그때 그 주사위였지' 하는 생각이 스치지만, 다시는 기계에 물리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일도 처자식의 평온한 아침을 위해 묵묵히 납기를 맞추러 작업장 기계 앞에 설 것입니다. 그 주사위는 이미 제 심장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으니, 이제는 흔들림 없이 내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가장으로서 제가 던져야 할 유일한 승부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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