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83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 잔업 끝내고 캔맥주 깔 때 이만한 영화 없다 털북숭이 배불뚝이 아저씨 둘이 쫄쫄이 타이즈 입고 은반 위에 들어가서 죽기 살기로 뒹구는 미친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불쑥 꺼내면 열에 아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되묻곤 합니다. 가공 공장 바닥에서 쇠 깎는 기계 소리만 하루 종일 듣다가 퇴근한 40대 아저씨가 꺼내기엔 참 낯간지러운 소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을 꽉 채운 골치 아픈 찌꺼기들을 단번에 날려버릴 때는 이만한 물건이 없습니다. 오늘도 가공 공차 100분의 1밀리미터 맞추느라 퇴근 직전까지 머리칼을 쥐어뜯었습니다. 모니터 속 3D 모델링 곡면을 종일 째려보며 공구 경로를 뽑다 보면, 퇴근길 운전대 잡을 때쯤엔 눈앞에 푸르스름한 잔상이 어른거립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 2026. 10. 18.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잔업 퇴근길에 본 반쪽짜리 활극 참 독특하고 매력적인 녀석인데 참 아깝습니다. 가공실 모니터 앞에 틀어박혀 서피스 곡면 잡고 공차 맞추느라 눈알이 뻑뻑했던 날이었습니다. 납기 맞춘다고 연장 잔업까지 때리고 밤 11시 다 되어 집에 들어왔는데, 머릿속엔 여전히 절삭유 냄새와 가공 잔상이 뱅뱅 돌더군요. 이대로 그냥 누우면 온갖 일거리 생각이 꼬리를 물 것 같아서 캔맥주 하나 꺼내 들고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때 문득 눈에 밟혀 틀었던 영화가 바로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었습니다. 두 아이와 아내는 이미 안방에서 곯아떨어졌고, 온 집안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깔린 시간이었지요. 피로에 절어 멍한 정신을 달래려고 뭔가 화끈하고 날렵한 해결사 이야기를 기대했습니다. 예전에 지나치듯 봤던 짧은 영상 속 주인공은 꽤나 차갑고 서.. 2026. 10. 18. 영화 데드맨, 통장 잔고 0원과 이름값 앞에서 버텨낸 40대 가장 바지사장이라는 그 네 글자가 공장 바닥에서 15년 동안 밥벌이해 온 내 가슴속 깊은 흉터를 툭 건드렸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각, 가공기계 밤샘 무인 가공 걸어두고 공장 셔터를 내렸습니다. 땀과 절삭유에 젖은 작업복을 대충 털고 들어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씻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는데도 목덜미에 들러붙은 쇳가루 냄새와 눅진한 피로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찬물 한 컵 들이켜고 멍하니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모니터로 툴패스 선을 하도 뚫어져라 쳐다본 탓에 눈알이 뻑뻑하고 잔상이 어른거렸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멈춘 화면 한가운데에 조진웅 배우 얼굴과 함께 굵직한 제목 하나가 꽂혔습니다. 통장 잔고가 바닥나고 대출 이자 고지서가 날아들던 시절의 서늘한 기억이 불현듯 정수리를 치고 올라.. 2026. 10. 16. 파묘 속 늙은 지관에게서 야근 끝낸 내 얼굴을 보았습니다 상덕이 흙바닥에 대자로 뻗어 거친 숨 몰아쉴 때, 그 얼굴 위로 공장 바닥에 주저앉아 믹스커피 들이키던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헛웃음이 픽 나왔습니다. 저는 공작기계 기름 냄새 맡으며 15년을 보낸 가공 기술자이자 두 아이를 키우는 40대 가장입니다. 초창기 2년은 장갑에 쇳가루 박혀가며 기계 밑바닥을 긁었고, 지금은 모니터 화면 보면서 소수점 세 자리 도면을 칩니다. 기계 소음에 귀가 먹먹해진 채로 잔업 마치고 들어와 식탁에 앉았습니다. 씻지도 못하고 소파에 몸을 던졌는데 낮에 본 영화 잔상이 모니터 잔상처럼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남들은 오컬트니 귀신 이야기니 떠들었지만, 공장 바닥에서 잔뼈 굵은 제 눈에는 영 딴판인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두 번을 보고 나서야 보인 늙은 십장의 현실처음 극장에서 볼.. 2026. 10. 16. 영화 국제시장 결말 덕수의 눈물, 15년 차 기술직 가장의 재관람 지난 주말 야간 잔업 마치고 들어와 새벽에 영화 국제시장을 봤습니다, 귓가에 쇳소리 가시질 않은 채로요.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콧구멍 안쪽에서는 여전히 절삭유 냄새가 맴돌았습니다. 납기를 맞추느라 머시닝센터 서너 대를 번갈아 돌리며 도면 치수와 싸우다 온 밤이었습니다. 온 집안 식구들이 깊게 잠든 시간, 혼자 거실 구석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화면에서 퍼지는 푸르스름한 빛 말고는 집 안 전체가 조용했습니다. 식탁 위에는 다음 달 아이들 학원비 고지서와 아파트 관리비 영수증이 얌전하게 얹혀 있었습니다. 국제시장 재관람, 야간 잔업 끝내고 새벽에낮에 짰던 가공 프로그램의 잔상이 눈앞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엔드밀이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쇳덩이를 깎아내던 궤적이 어포를 씹는 내내 아른거렸습니다. 10.. 2026. 10. 14. 영화 바튼 아카데미, 옹졸했던 내 청춘을 버텨준 늙은 반장의 얼굴 스물네 살, 나는 오십 먹은 반장 멱살을 잡았습니다. 머리통에서 김이 펄펄 나던 시절이었고, 세상이 온통 나를 짓밟으려고 작정한 줄만 알았습니다. 야간 잔업을 마치고 퀭한 눈으로 거실 소파에 앉았는데,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웬 괴팍한 늙은 선생 하나가 눈에 밟혔습니다. 영화 '바튼 아카데미'의 폴 선생이었습니다. 사시가 있는 한쪽 눈에 몸에선 생선 비린내가 난다며 기숙학교 아이들에게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양반입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집에 가지 못한 문제아 녀석 하나와 텅 빈 학교에 덩그러니 남겨진 꼴을 보는데, 씻지도 못한 채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제 몸뚱이가 슬그머니 굳어졌습니다. 내일도 아침 일곱 시 반까지 출근해 공차 100분의 2밀리미터짜리 가공 지그를 맞춰야 하는 고단한 밤이었지만, 리모컨을 .. 2026. 10. 13. 이전 1 2 3 4 5 6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