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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드맨, 통장 잔고 0원과 이름값 앞에서 버텨낸 40대 가장

by cow85 2026. 10. 16.

데드맨 영화 공식 포스터

바지사장이라는 그 네 글자가 공장 바닥에서 15년 동안 밥벌이해 온 내 가슴속 깊은 흉터를 툭 건드렸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각, 가공기계 밤샘 무인 가공 걸어두고 공장 셔터를 내렸습니다. 땀과 절삭유에 젖은 작업복을 대충 털고 들어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씻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는데도 목덜미에 들러붙은 쇳가루 냄새와 눅진한 피로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찬물 한 컵 들이켜고 멍하니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모니터로 툴패스 선을 하도 뚫어져라 쳐다본 탓에 눈알이 뻑뻑하고 잔상이 어른거렸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멈춘 화면 한가운데에 조진웅 배우 얼굴과 함께 굵직한 제목 하나가 꽂혔습니다. 통장 잔고가 바닥나고 대출 이자 고지서가 날아들던 시절의 서늘한 기억이 불현듯 정수리를 치고 올라왔습니다.

 

데드맨, 새벽 쇳가루 냄새 속에서 만난 영화

기계 가공 밥을 먹기 시작한 지 올해로 꼭 15년 차가 되었습니다. 20대 초반 2년은 기름 묻혀가며 현장 바닥에서 기계를 배웠고, 지금은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CAD/CAM 가공 프로그램을 짜고 공정을 잡는 일을 합니다. 소수점 세 자리 공차를 다투고 분초를 다투는 납기 압박 속에 살아가다 보면, 공장 바닥에서 돈 때문에 고꾸라진 사람들을 숱하게 보게 됩니다. 기술 하나 믿고 밤낮없이 쇳덩이 깎던 선배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공구통을 팽개치고 잠적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대출 돌려막기를 하다가 한계에 부딪히거나, 당장 급한 불 끄겠다고 사업자 명의나 통장을 넘겼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야반도주한 경우였습니다. 그 뒤에 남겨진 처자식들이 겪는 지옥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 탓에, 저는 '명의'나 '공돈'이라는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영화 데드맨은 바로 그 벼랑 끝 바지사장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펼쳐놓습니다. 주인공 이만재는 살기 위해,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절박함 하나로 자기 이름 석 자를 팝니다. 서류상 대표로 이름을 올려두고 몇백만 원씩 떨어지는 돈을 챙기다가, 결국 1천억 횡령 누명을 뒤집어쓴 채 중국의 사설 감옥으로 던져집니다. 서류에 도장 찍고 넘긴 대가가 살아있는 시체, 말 그대로 데드맨이 되는 결말이었습니다. 남들에게는 긴장감 넘치는 범죄 스릴러 영화 한 편이겠지만, 매달 나가는 주택담보대출 이자와 애들 학원비,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살아가는 가장에게는 지독한 현실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이만재의 선택, 목에 가시처럼 걸린 이유

이만재가 서류철에 인감도장을 찍고 돈 봉투를 챙기던 첫 장면부터 목구멍에 억센 가시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습니다. 극 중 이만재는 원래부터 사기 치려고 작정한 흉악범이 아닙니다. 벤처 사업하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임신한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를 길바닥에 나앉게 할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던 흔한 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절박함을 핑계로 삼은 타협이 파멸의 시작이었습니다. 내 손으로 공구를 물리고 기계를 돌려 깎아내지 않은 돈, 정직한 땀이 묻어있지 않은 돈은 반드시 낚싯바늘이 되어 목구멍을 찢어놓습니다. 현장에서도 공차 벗어난 불량 부품을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납품하면 당장은 결제를 받을지 몰라도, 조립 공정에서 터지는 순간 수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서로 돌아와 숨통을 끊어놓는 법입니다. 이만재가 진흙탕 바닥을 기어 다니며 자기 이름을 돌려달라고 울부짖을 때, 손바닥에 끈적한 식은땀이 배어 나왔습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쥐고, 버니어 캘리퍼스를 만지작거리며 굳은살이 박인 제 손가락 지문을 묵묵히 내려다보았습니다. 쇳가루와 절삭유가 깊게 스며들어 아무리 비누로 박박 문질러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이 투박한 손이, 그 새벽에는 참 고맙고도 두려웠습니다. 만약 그때 내가 딴생각을 품고 그 쉬운 유혹에 손을 얹었다면, 지금 내 인생도 저 폐수 구덩이 한가운데에 처박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공포가 턱밑까지 차올랐습니다.

 

서른 초반, 나도 그 300만 원 앞에서 흔들렸다

사실 저에게도 이만재의 그 서류철이 코앞까지 들이밀어졌던 끔찍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서른 살을 갓 넘겼을 무렵,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일하던 1차 협력업체 사장이 공장 문을 닫고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석 달 치 월급이 한 푼도 나오지 않았고, 마이너스 통장은 이미 바닥을 긁고 있었으며, 기저귀와 분유값이 없어 카드론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그때 현장 주변을 맴돌며 일수 명함을 뿌리던 브로커 하나가 저를 삼겹살집으로 불러냈습니다. 찌개 냄비가 끓는 테이블 맞은편에서 소주를 한잔 따라주더니 서류 봉투 하나를 슬쩍 밀어 넣었습니다. 유령 법인 하나 만드는 데 며칠만 대표로 이름만 올려두면 당장 현금 300만 원을 손에 쥐여주고, 매달 100만 원씩 통장에 꽂아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테이블 밑에서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습니다. 눈앞이 핑 돌았습니다. 당장 내일모레 빠져나갈 방세와 대출 이자, 분유값이 머릿속을 사정없이 난도질했습니다. 인감도장 세 통과 주민등록등본만 넘기면 된다는데, 주머니 속에 든 플라스틱 도장이 마치 시뻘겋게 달아오른 쇳덩이처럼 허벅지를 태우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100분의 1밀리미터 치수만 틀어져도 기계가 비명을 지르는 정밀 가공 바닥에서 일하던 놈이, 무슨 사업인지도 모르는 서류에 이름을 판다는 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소주잔을 탁 내려놓고 도망치듯 식당 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몇 년 뒤 들으니 그 브로커 놈과 서류 넘겨준 현장 사람들 전부 대포통장 사기단으로 엮여 줄줄이 철창신세를 졌다고 했습니다. 식당을 뛰쳐나와 어두침침한 골목 전봇대를 짚고 섰을 때, 비 오듯 쏟아지던 식은땀에 옷이 흠뻑 젖었습니다. 지갑을 열어보니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두 장이 전부였습니다. 사기꾼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는 후련함은 딱 5분뿐이었습니다. 그 뒤를 덮친 건 당장 내일부터 내 새끼와 아내를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하는지, 다음 달 이자는 또 어디서 메워야 하는지 뼈를 깎는 지독한 현실이었습니다.

 

일당 8만 원, 그렇게 이름 석 자를 지켜냈다

그 새벽 낡은 단칸방 문을 열었을 때, 아내는 지쳐 잠들어 있었고 갓 백일 지난 핏덩이 아들은 작은 숨소리를 내며 누워 있었습니다. 차가운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그 조그만 얼굴을 내려다보는데 턱 끝까지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아무리 돈에 쪼들려 숨이 턱턱 막혀도, 내 자식에게 범죄자 아비, 남의 이름 팔아먹고 사는 껍데기 아비라는 오명은 절대로 물려주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5시, 작업복 가방을 둘러메고 인력사무소로 뛰어나갔습니다. 가공 공정 짜고 도면 보던 엔지니어의 알량한 자존심은 몽땅 내던졌습니다. 하루 일당 8만 원 받으며 살가죽이 벗겨지도록 시멘트 포대와 쇠파이프를 짊어지고 날랐습니다. 그렇게 밑바닥 공사판 먼지를 뒤집어쓰며 내 이름 석 자를 악착같이 지켜냈습니다. 영화 막바지에 모든 것을 빼앗긴 이만재가 진흙투성이가 된 채 처절하게 이름을 부르짖을 때, 제 목구멍도 굵은 모래를 삼킨 것처럼 콱 막혀왔습니다. 돈의 유혹에 눈이 멀어 쉬운 길로 발을 디디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잃어버린 이름과 삶을 되찾는 데는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주인공은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하루 일당 8만 원 시멘트 포대 나르며 이름 석 자 지켜냄, 그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안고 인력사무소를 나서던 제 발걸음은 지금 돌아보아도 가장으로서 내린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편법과 요행으로 쥔 돈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날아가지만, 정직하게 땀 흘려 번 돈만이 내 가족의 밥상이 되고 단단한 지붕이 되어준다는 걸 현장에서 온몸으로 배웁니다.

 

벽걸이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눈을 붙이고 나면 몇 시간 뒤 다시 공장으로 출근해 공구 홀더를 점검하고 빡빡한 납기 공정을 맞춰야 합니다. 통장 잔고와 대출 이자 걱정에 어깨가 무겁더라도, 내 기술과 떳떳한 이름으로 지켜낼 내 가족이 있기에 신발 끈 질겨 매고 내일도 현장으로 당당히 발을 디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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