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덕이 흙바닥에 대자로 뻗어 거친 숨 몰아쉴 때, 그 얼굴 위로 공장 바닥에 주저앉아 믹스커피 들이키던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헛웃음이 픽 나왔습니다. 저는 공작기계 기름 냄새 맡으며 15년을 보낸 가공 기술자이자 두 아이를 키우는 40대 가장입니다. 초창기 2년은 장갑에 쇳가루 박혀가며 기계 밑바닥을 긁었고, 지금은 모니터 화면 보면서 소수점 세 자리 도면을 칩니다. 기계 소음에 귀가 먹먹해진 채로 잔업 마치고 들어와 식탁에 앉았습니다. 씻지도 못하고 소파에 몸을 던졌는데 낮에 본 영화 잔상이 모니터 잔상처럼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남들은 오컬트니 귀신 이야기니 떠들었지만, 공장 바닥에서 잔뼈 굵은 제 눈에는 영 딴판인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두 번을 보고 나서야 보인 늙은 십장의 현실
처음 극장에서 볼 때는 남들처럼 깜짝 놀라며 스크린을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혼자 모바일로 두 번째 재생을 누르는 순간, 이건 귀신 공포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위험천만한 일감 하나를 앞에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갈등하는 늙은 십장의 현실이 보였습니다. 상덕이 산꼭대기에서 흙 한 줌 집어 입에 넣고 퉤 뱉어내며 악지 중의 악지라고 손사래를 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파묘 못 한다고 매몰차게 돌아설 때 그 모습이 유독 가슴에 쿵 내려앉았습니다. 저도 거래처 미팅 테이블에서 비슷한 짓을 수없이 해봤기 때문입니다. 이건 손대면 무조건 사고 터지는 일감이라는 걸 감각으로 알면서도 선뜻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하는 그 머뭇거림이 고스란히 읽혔습니다. 첫 관람 때는 그냥 흘려보냈던 짧은 장면 하나가 두 번째에는 명치끝을 뻐근하게 찔렀습니다. 큰돈 만져볼 생각에 상덕이 딸 결혼식에 입고 갈 정장을 혼자 거울 앞에서 멋쩍게 걸쳐보는 대목이었습니다. 반듯한 옷 하나 챙겨 입고 어색하게 짓는 그 주름진 웃음이 참 아팠습니다. 멀쑥한 정장 한 벌 맞춰 입는 것조차 사치처럼 여기며 살다가, 자식 큰일에 겨우 티 안 내보려고 애쓰는 40대, 50대 가장들의 꼴이 딱 저렇습니다. 그 웃음 하나 때문에 상덕은 발을 빼야 마땅한 위험한 판에 다시 구둣발을 들이밀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공장 사무실 책상에 얹어둔 아이들 사진을 볼 때마다 비슷한 선택을 해왔기에, 그 마음을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공장 도면과 파묘 도면, 결국 같은 냄새였습니다
가끔 거래처 영업부장이 기름 묻은 도면 한 장을 슬그머니 들이밀 때가 있습니다. 도면을 쫙 펼치자마자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그런 도면 말입니다. 100분의 1밀리미터 공차가 빽빽하게 박혀 있고, 깎기 까다로운 특수 난삭재에, 자칫 공구 하나 삐끗하면 몇천만 원짜리 스핀들이 그대로 박살 나는 일감입니다. 가공 시간은 안 나오는데 납기는 코앞이고, 실패하면 물어내야 할 손해배상 조항이 깨알같이 적혀 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손목이 시큰거립니다. 머릿속은 복잡하게 굴러갑니다. 다음 달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 이자, 큰아이 치아 교정비 견적서, 둘째 학원비 결제 문자, 거기다 얼마 전부터 탈탈거리며 멈추는 통돌이 세탁기 생각까지 꼬리를 뭅니다. 머리로는 기계 망가지니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손은 이미 도면 귀퉁이를 꽉 쥐고 있습니다. "부장님, 이거 잘못 물리면 스핀들 나가요. 알았으니까 납기나 사흘만 더 줘 봐요. 어떻게든 맞춰볼 테니까." 결국 침 꿀꺽 삼키며 이 말을 뱉고 맙니다. 그 한마디 뱉는 순간부터 며칠 밤낮은 지옥문이 열립니다. 상덕이 흙바닥에 대자로 뻗어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 얼굴에, 납기 맞추려고 사흘 밤샘 가공 돌리다 기름때 찌든 공장 바닥에 퍼질러 앉아 믹스커피 들이키던 제 모습이 겹쳐 헛웃음이 픽 나왔습니다.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다가도 다음 달 통장 잔고가 덜컹거리는 꼴을 보느니 몸뚱이를 갈아 넣는 게 낫다는 계산이 섭니다. 현장에서 십수 년 버틴 늙은 기술자들이 위험한 판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용감해서가 아닙니다. 물러설 자리가 없어서 도면을 받아 쥐는 것입니다.
사흘 밤낮 350만 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훅 날아가도
지난가을에도 거래처 라인 펑크 난 걸 틀어막느라 사흘 밤낮을 공장에서 철야로 뻗댔습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박스 깔고 쪽잠 자면서 원단가의 두 배 반을 쳐준다는 일감을 기어코 쳐냈습니다. 그렇게 세금 떼고 통장에 딱 350만 원이 찍혔습니다. 입금 알림 문자를 보며 담배 한 대 태울 때까지만 해도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은 공중에 뜬 연기보다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큰아이 교정 치과에 150만 원 결제 긁고, 지난달 펑크 난 마이너스 통장 한도 메우고 나니 손에 쥐어지는 건 고작 몇십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허탈했습니다. 사흘 동안 기름 연기 마셔가며 몸을 축낸 대가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훅 빠져나가는 꼴을 멍하니 쳐다봤습니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멍하니 한숨만 푹푹 쉬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치아에 교정기를 흉하게 낀 큰애가 아빠 왔냐며 활짝 웃었습니다. 밥상 위에는 아내가 끓여둔 찌개가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녀석 웃는 얼굴 하나를 마주하는 순간, 뼈마디가 쑤시던 피로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던 허탈감이 신기하게도 씻은 듯 사라졌습니다. 이 맛에 내가 기계 앞에서 공차 따위나 맞추고 앉아있구나 싶었습니다. 통장은 비었지만 이번 달은 어찌어찌 버텨냈다는 안도감이 차올랐습니다.
퇴마사가 아니라 현장 기술자들의 서글픈 밥벌이
세간에서는 이 영화를 두고 귀신과 싸우는 화려한 오컬트물이라거나, 후반부 전개를 두고 반일 민족주의를 건드린 국뽕 영화라고 쉽게 재단합니다. 하지만 매일 작업복 입고 현장 나가는 사람 눈에는 그저 각자 분야의 프로 기술자 네 명이 목숨 걸고 밥벌이하는 이야기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슨 대단한 신통력으로 세상을 구하겠다는 퇴마사가 아닙니다. 상덕은 수십 년간 흙의 습도와 지형을 읽어온 토목 측량 기술자이고, 영근은 묵묵하게 시신을 수습하며 절차를 밟는 전문 의전 기술자입니다. 화림과 봉길 역시 망자의 한을 달래고 판을 정리하는 자신들만의 전문 영역을 가진 외주 용역 팀입니다. 문제가 터졌을 때 각자의 포지션에서 자기가 맡은 도구를 꺼내 들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은, 현장에서 불량 터졌을 때 작업반장과 엔지니어들이 머리 맞대고 공정 수정하는 모습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가를 받았으니 위험을 감수하고, 본인 손으로 벌려놓은 일감에 끝까지 책임을 지려는 태도는 프로의 기본입니다. 겁이 나도 밥값을 해야 하기에 삽자루를 쥐고, 공포에 질리면서도 기계 밸브를 잠그러 들어가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숙명입니다. 관 속에 든 것이 괴물이든 조상의 원혼이든, 그들에게는 당장 깔끔하게 끝내야만 다음 일감을 받을 수 있는 위험한 프로젝트였습니다. 화려한 판타지로 포장되어 있지만 알맹이는 차가운 생계의 무게였습니다.
가장이라는 게 참 그렇습니다. 단가 몇 푼에 목숨을 걸면서도, 내 새끼들 입에 밥 들어가는 거 보면 그 고된 일감을 또 받아 쥐게 되는 굴레 말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 괜스레 상덕의 거친 손마디에 제 손을 대어보고 싶을 만큼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 기름 냄새 밴 안전화를 신어야 합니다. 머리 아픈 난삭재 도면이 작업대에 또 놓여있겠지만, 군말 없이 공구 세팅하고 스핀들을 돌릴 생각입니다. 제 뒤에는 지켜야 할 집과 식구들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