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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 결말 덕수의 눈물, 15년 차 기술직 가장의 재관람

by cow85 2026. 10. 14.

국제시장 영화 공식 포스터

지난 주말 야간 잔업 마치고 들어와 새벽에 영화 국제시장을 봤습니다, 귓가에 쇳소리 가시질 않은 채로요.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콧구멍 안쪽에서는 여전히 절삭유 냄새가 맴돌았습니다. 납기를 맞추느라 머시닝센터 서너 대를 번갈아 돌리며 도면 치수와 싸우다 온 밤이었습니다. 온 집안 식구들이 깊게 잠든 시간, 혼자 거실 구석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화면에서 퍼지는 푸르스름한 빛 말고는 집 안 전체가 조용했습니다. 식탁 위에는 다음 달 아이들 학원비 고지서와 아파트 관리비 영수증이 얌전하게 얹혀 있었습니다.

 

국제시장 재관람, 야간 잔업 끝내고 새벽에

낮에 짰던 가공 프로그램의 잔상이 눈앞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엔드밀이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쇳덩이를 깎아내던 궤적이 어포를 씹는 내내 아른거렸습니다. 100분의 1밀리미터 공차를 맞추겠다고 모니터에 눈을 박고 씨름하다 온 날에는 뇌가 쉽게 꺼지지 않습니다. 몸은 파김치인데 신경은 날카롭게 서 있어서 곧바로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봤던 30대 초반에는 그냥 한 사람의 고단한 일대기로 보였습니다. 흥남철수 때 가족과 헤어지고, 파독 광부로 가고, 베트남 전쟁터로 뛰어든 덕수의 이야기가 그저 교과서 속 어르신들의 희생담이겠거니 여겼습니다. 남 이야기 보듯 눈물 한 방울 훔치고 털어내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당장 내일 쳐야 할 가공 수량과 야근 수당 계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마흔을 넘기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 다시 마주한 화면은 전혀 달랐습니다. 덕수가 서독 지하 막장에 기어들어가 탄가루를 뒤집어쓸 때, 제 시선은 그 사람이 짊어진 무게로 향했습니다. 동생들 학비와 가족들 입에 들어갈 쌀값 때문에 스스로를 사지로 밀어 넣던 그 심정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그건 더 이상 흘러간 옛날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현대식 공장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정밀 기계를 돌리는 저나, 캄캄한 지하 막장에서 곡괭이질을 하던 덕수나 본질은 같았습니다. 매달 날아오는 대출 이자와 애들 통장 잔고를 보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지금의 제 삶이 화면 위로 겹쳐 보였습니다. 그때는 미처 보이지 않던 남자의 고단함이 제 몫의 현실로 얹혀 왔습니다.

 

15년 기름때, 덕수랑 다를 게 없었다

스물넷에 처음 공장 바닥에 발을 들였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현장 바닥에 굴러다니는 쇳밥을 쓸어 담고 선반 기계에 튄 시커먼 기름때를 닦아내면서 매일 다짐했습니다. 이 짓은 딱 1년만 하고 때려치우겠다, 절대로 평생 직업으로 삼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습니다. 손톱 밑에 박힌 시커먼 때는 비누로 박박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고, 그게 젊은 날에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1년만 버티자던 세월이 흘러 어느덧 15년째 쇳가루를 마시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작업복을 단정하게 입고 사무실에서 3D 모델링을 하고 가공 공정을 잡는 기술자 대우를 받지만, 제 뿌리는 여전히 그 기름 묻은 기계 밑바닥에 있습니다. 도면 한 장 잘못 읽으면 수천만 원짜리 소재를 날려 먹는다는 압박감 속에서 청춘이 다 지나갔습니다.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통장에 찍히는 월급과 태어난 아이들의 얼굴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영화 말미에 나이 든 덕수가 혼자 방에 들어가 아버지 사진을 보며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그 투박한 한마디가 가슴 안쪽을 강하게 후벼팠습니다. 억누르고 살던 무언가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캔맥주를 입에 대지도 못했습니다. 차가운 알루미늄 캔을 쥔 손가락에 무의식중에 힘이 들어가면서 캔 껍데기가 찌그러질 때까지 온몸이 굳어 있었습니다.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찌그러진 캔만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버지 손이랑 똑같은 내 손금

한참을 굳어 있다가 손바닥을 펴서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거친 샌드페이퍼로 문지른 것처럼 군살이 박이고, 가공 날물에 베인 자잘한 흉터들이 손금 사이사이에 박혀 있었습니다. 쇳가루와 공업용 알코올에 절어 하얗게 트고 갈라진 손바닥이 시골에 계신 아버지 손과 판박이였습니다. 세월을 속이지 못하고 물려받은 손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평생 투박한 흙일을 하셨고 저는 정밀한 기계를 만지지만, 식구들 밥줄 쥐고 버텨온 손바닥 모양새는 거울을 보듯 같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늘 피곤에 절어 계셨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그 묵묵한 침묵이 답답하고 무서웠는데, 제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그게 피로를 견디며 말을 아끼던 가장의 침묵이었음을 알겠습니다. 방 안에서 고르게 숨을 쉬며 자고 있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거실까지 들려왔습니다. 소리를 내어 울면 아이들이 깰까 봐 입술을 어금니로 꽉 깨물었습니다. 턱 근육이 뻐근해질 정도로 힘을 주며 속으로 올라오는 뜨거운 덩어리를 삼켰습니다. 내가 지금 현장에서 아등바등 버티는 이유도 결국 덕수나 제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내 자식들만큼은 돈 걱정 없이 반듯하게 키우고 싶다는 그 단순한 욕심 하나로, 매일 쇳소리와 기름 냄새를 뒤집어쓰며 하루를 팔고 있었던 겁니다. 거친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혼자 삼킨 울음이 가슴 밑바닥으로 묵직하게 가라앉았습니다.

 

새벽 2시, 통화 버튼 위에 엄지 올려두고

휴대전화를 켜서 주소록을 뒤적였습니다. '아버지' 석 자를 찾아 화면을 띄워놓고 초록색 통화 버튼 위에 엄지손가락을 한참 동안 올려두었습니다. 시계는 이미 새벽 2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걸면 필시 자식에게 무슨 큰 사고라도 난 줄 알고 사시나무 떨듯 놀라실 게 뻔했습니다.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켜기를 서너 번 반복했습니다. 아버지, 저도 공장에서 기계 돌리며 애들 키워보니까 이제야 아버지 마음을 조금 알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입 밖으로 내뱉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평생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뚝뚝한 아들은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화면을 엎어두었습니다. 차가워진 거실 바닥에 발을 디디며 조용히 일어섰습니다. 찌그러진 맥주캔을 분리수거함에 넣고, 아이들이 덮고 자다 걷어찬 이불을 목 끝까지 조심스럽게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곤히 잠든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내한테 "이번 주말엔 시골 아버지 댁 먼저 들르자"고 말했습니다.

 

새벽에 혼자 삼켰던 그 먹먹함은 가슴속 깊은 곳에 그대로 묻어두기로 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저는 또 작업복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고 공장으로 출근해 정밀 공차를 맞추며 쇳덩이를 깎아낼 것입니다. 그렇게 버텨내는 하루하루가 곧 내가 짊어진 가족의 무게이자, 아버지가 걸어갔던 길임을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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