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밀 가공 15년 차 아빠의 이프 상상의 친구 관람기

by cow85 2026. 9. 25.

이프 상상의 친구 영화 공식 포스터

영화 끝나고 상영관 불이 켜지자 빈 콜라 컵 빨대를 쪽쪽 빨며 씩 웃는 아이 얼굴을 보고 덜컥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그냥 이번 주말은 애들 만화 영화나 한 편 보여주고 두 시간 편하게 눈이나 붙일 요량으로 예매창을 열었을 뿐이었습니다. 금요일 야간까지 공차 100분의 1밀리미터를 맞추느라 머신 센터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퇴근했더니 어깨죽지가 천근만근이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피로가 덕지덕지 붙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애 둘 손을 잡고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주말 낮 시간대 가족 단위 인파로 꽉 찬 복도를 뚫고 상영관 의자에 털썩 주저앉을 때까지만 해도 제 계획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눈만 감으면 바로 곯아떨어질 것 같았지요.

 

극장 전쟁, 철야 12시간보다 힘들었다

애 키우는 집치고 첫 극장 나들이 갔다가 진땀 한번 안 빼본 부모는 아마 없을 겁니다. 저한테는 큰애가 서너 살 되던 해에 패기 넘치게 데려갔던 동네 영화관이 딱 그랬습니다. 시작 전 조명이 서서히 꺼지고 음향이 쿵 하고 상영관을 울리는 순간, 녀석은 기겁을 하더니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주변 사람들 눈치가 보여 애를 냅다 들쳐업고 뛰쳐나왔습니다. 어두침침한 비상구 복도 계단에 쭈그려 앉아 20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며 달래야 했습니다. 달래다 지쳐 밖으로 나오니 이미 영화는 반 이상 지나가 있었지요. 그 시절 극장 나들이는 문화생활이 아니라 그냥 피 말리는 전쟁터였습니다. 무릎 위에 올려둔 라지 사이즈 팝콘 통을 언제 발로 쳐서 엎을지 몰라 영화 내내 허벅지에 바짝 힘을 주고 버텼습니다. 30분 간격으로 터지는 화장실 신호에 맞춰 통로 쪽 관객들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며 복도를 내달렸습니다. 두 시간짜리 영화 한 편 보고 로비로 나오면 온몸의 진이 쏙 빠져나갔습니다. 도면 들고 현장 바닥에 서서 치수 불량 터진 금형 물고 철야 12시간 맞교대 뛰는 게 차라리 덜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쇠 깎는 기계 소음은 익숙하기라도 하지, 어둠 속에서 애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베테랑 기술자의 멘탈도 여지없이 무너뜨렸습니다. 그 뒤로 몇 년 동안은 극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나 혼자 양옆 힐끔

그런데 세월이 참 무섭게도 흘렀습니다. 이번에 상영관에 들어서 자리를 잡았는데, 옆자리의 공기가 예전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둘째 녀석은 이제 시작한다고 제 팔꿈치를 툭 치며 귓속말을 건넸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된 큰애는 제법 폼을 잡고 다리를 꼬더니 팝콘을 한 웅큼 쥐어 입에 털어 넣고 있었습니다. 몸에 밴 트라우마가 무서운 법이라, 불이 탁 꺼지는 찰나에 저 혼자 반사적으로 목을 꺾어 양옆을 힐끔 쳐다보았습니다. 녀석들은 놀라기는커녕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주 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불 꺼지면 들쳐업고 비상구로 튀어나갈 준비를 하느라 바짝 굳어 있던 제 어깨 근육이 그제야 스르르 풀렸습니다. 애들을 극장에 데리고 온 지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좌석 등받이에 등을 깊숙하게 기댔습니다. 언제 울까, 언제 화장실 가자고 보챌까 조마조마하던 긴장감이 사라진 빈자리에 낯선 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상상의 친구들 모습보다, 옆에서 미동도 없이 화면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의 옆모습이 훨씬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가 다 끝나고 환하게 객석 조명이 들어왔을 때, 바닥에 닿은 콜라 빨대를 쪽쪽 소리 내며 빨아먹던 큰아이의 무심한 눈웃음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녀석들이 언제 이렇게 커버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횡단보도 신호 대기 1분, 손가락 한 마디 차이

극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차장으로 향하는 건널목 앞이었습니다. 5학년 큰애는 이제 컸다고 겉옷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덤덤한 척 앞만 보고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빨간 불 앞에 멈춰 서자마자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손을 빼더니 제 손등목을 툭 치고는 손바닥을 덥석 잡았습니다. 손바닥에 닿는 면적이 예전과 전혀 달랐습니다. 손가락 끝을 맞대어 크기를 가늠해 보니 제 손에서 딱 손가락 한 마디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녀석의 널찍해진 손바닥이 거칠어진 제 손바닥의 4분의 3을 덮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쇳밥 먹느라 굳은살 박인 제 새끼손가락 하나를 간신히 감아쥐며 종종걸음 치던 녀석이었습니다. 공구 잡는 손이라 투박하기 짝이 없는 아빠 손을 잡고 넘어질세라 매달리던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아득해졌습니다. 신호 대기 1분이 유독 길게 느껴졌고, 초록 불이 켜져 길을 건너는 내내 주차장에 도달할 때까지 손을 놓기 싫어 쥔 손에 힘을 꽉 주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쑥스럽다며 제 손을 털어내 버릴 것 같아 조바심이 났습니다.

 

40대 아저씨 눈가를 꾹 눌러 닦게 한 장면

영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친구 칼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 장면이 지나갈 때, 목구멍 안쪽이 꽉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책맞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해서 기름때와 쇠 냄새가 찌든 거친 손가락 마디로 눈가를 깊숙이 꾹 눌러 닦아냈습니다. 아이들이 볼까 봐 기침을 두어 번 헛기침으로 뱉어내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20대 초반 기름 냄새 진동하는 공장 바닥에서 막내로 기계를 배울 때부터 제 삶은 온통 버티는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공차 틀어지면 깨지는 건 일상이었고 납기 맞추느라 밤을 새우며 감정 따위는 사치라 여겨 닫아걸었습니다. 서른을 넘겨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뒤로는 가장이라는 무거운 이름표를 달고 매달 나가는 대출금과 생활비 영수증 앞에서 이를 악물며 살았습니다. 사는 게 바빠 어릴 적 내가 어떤 꿈을 꾸었고 무엇을 좋아했는지는 완전히 잊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스크린 속 주인공과 잊혀진 친구들의 모습이 귓가에 조용히 말을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살아남으려고 저 깊은 서랍 속에 던져두었던 그 시절의 너도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고, 여전히 네 안에 숨 쉬고 있다고 툭 치며 일깨워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쇠 깎는 프로그램 수치만 계산하며 살던 메마른 40대 아저씨의 굳은살 속으로 묵직한 온기가 스며들었습니다. 20대부터 쇳가루 날리는 현장에서 감정을 닫아걸고 가장이라는 이름표를 단 채 이를 악물며 버텨왔습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작업복을 다려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애들이 자라는 속도만큼이나 저 자신을 갉아먹으며 조급해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월요일 아침 다시 기계 굉음이 울리는 공장으로 출근해 0.01밀리미터 공차를 다투는 일상으로 복귀하겠지만, 이제는 기계 사이를 오갈 때 주머니 속 작은 여유 하나쯤은 남겨둔 채 아이들의 커가는 손을 조금 더 다정하게 잡아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