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인사이드 아웃 2 속 불안이, 통장 잔고 걱정에 잠 못 드는 내 모습

by cow85 2026. 9. 27.

 

인사이드 아웃 2 영화 공식 포스터

팝콘 씹던 턱이 딱 멎은 순간, 속으로 '저게 바로 나구나' 싶었습니다. 극장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달콤한 캐러멜 팝콘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던 중이었습니다. 스크린 안에서 주황색 깡마른 캐릭터인 불안이가 조종간을 미친 듯이 부여잡고 폭주를 시작하더군요.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온갖 끔찍한 시나리오를 수만 가지나 출력해 내면서, 제어판 주변에 스스로 거대한 돌풍을 만들어 갇혀버리는 그 장면이었습니다. 주말을 맞아 모처럼 아이들 손을 잡고 들어온 상영관이었습니다. 옆자리에서는 녀석들이 스크린 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으로 낄낄대며 캐릭터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제 시선은 완전히 굳어버렸습니다. 알록달록한 만화 영화를 보러 와서 생뚱맞게 턱밑까지 답답함이 차오를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들 먹으라고 사 준 콜라 컵에서 얼음 녹는 소리만 바스락거렸고, 씹다 만 팝콘이 입안에서 퍼석하게 부서졌습니다.

 

인사이드 아웃 2, 팝콘 씹던 턱이 딱 멎은 순간

불안이가 패닉 상태에 빠져 손가락 하나 제어판에서 떼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던 장면에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화면 속 캐릭터는 자기가 만들어낸 새까만 걱정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갇혀서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도와주려고 다가온 친구들의 손길조차 보지 못하고, 자기가 멈추면 모든 게 무너져 내릴 거라는 공포에 질려 눈물만 뚝뚝 흘리더군요. 그게 만화 속 과장된 연출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양옆에 나란히 앉은 아이들 눈치가 보여서 차마 눈가를 훔치지도 못했습니다. 만화 보다가 40대 아빠가 주책맞게 코를 훌쩍거린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남몰래 눈을 깜빡거리며 그저 무릎 위에 올려둔 커다란 팝콘 통을 쥔 손에만 억지로 힘을 꽉 줬습니다. 종이 상자가 바작거리며 우그러지는 감각으로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꾹 눌러 담았습니다. 현장에서 도면을 받아 들고 가공 프로그램을 짤 때의 제 모습이 겹쳤습니다. 소수점 셋째 자리 공차를 맞춰야 하는 고가의 부품을 물려놓고 공구를 돌릴 때가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공구가 부러져 비싼 소재를 파먹지는 않을지, 0.005밀리미터 차이로 납품처에서 전량 불량 판정을 내리지는 않을지 머릿속에서 온갖 최악의 상황을 돌립니다.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가공실 문 앞을 서성이며 날카로운 쇳소리에 귀를 곤두세우는 그 꼴이 화면 속 주황색 녀석과 판박이였습니다. 기쁨이가 불안이의 어깨를 붙잡고 나지막하게 혼잣말처럼 던지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이제 라일리를 그만 놓아주라는 식의 말이었지요. 그때 목구멍이 바짝 말라붙어 침조차 삼켜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놓아버리면 당장 내일 우리 공정이 멈추고, 우리 집 생계가 멈추는데 어떻게 손을 떼느냐고 화면을 향해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내가 쉬면 큰일이 난다는 착각, 내가 모든 변수를 통제해야만 가족이 안전하다는 그 지독한 오만이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신나서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는데, 저 혼자 어두컴컴한 극장 구석에서 거울을 들여다본 것처럼 멍해져 있었습니다.

 

새벽 4시 반, 머릿속 불안이가 혼자 전원을 켬

새벽 4시 반에서 5시 사이, 휴대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늘 눈이 번쩍 떠집니다. 피로가 풀려서 일어나는 개운한 기상이 아닙니다. 누가 뒤통수를 둔기로 내리친 것처럼 뇌신경이 일순간에 팽팽하게 당겨지며 강제로 눈이 떠지는 감각입니다. 방 안은 아직 푸르스름하게 어둡고 고요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규칙적으로 색색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제 머릿속 제어판은 대낮의 공장 바닥처럼 불꽃을 튀기며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평온한 숨소리가 들려오는 그 적막 속으로, 지독하게 차가운 숫자 뭉치들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이번 달 25일에 빠져나갈 아파트 담보대출 원리금, 매달 꼬박꼬박 긁히는 신용카드 명세서, 아이들 영어와 수학 학원비 결제 문자가 머릿속에 엑셀 파일처럼 펼쳐집니다. 대출 금리가 조금만 뛰어도 숨이 가쁜데, 장바구니 물가는 내려올 줄을 모릅니다. 이번 주 납기 맞춰야 하는 임가공 물량의 단가는 또 어떻게 깎였는지, 설비 할부금은 언제 다 털어내는지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집니다. 가족들이 깰까 봐 발뒤꿈치를 바짝 들고 살금살금 침대를 빠져나옵니다. 화장실 문을 닫아걸고 변기 뚜껑 위에 앉아 휴대폰 화면 밝기를 최저로 낮춥니다. 늘 하던 대로 주거래 은행 앱부터 켭니다. 뻔히 알고 있는 마이너스 통장 잔고와 입출금 내역을 손가락으로 새로고침하면서 한숨을 삼킵니다. 몇 푼 남지도 않은 숫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손발 끝이 서서히 시려옵니다. 세면대 거울을 보며 차가워진 손으로 텁텁한 얼굴을 몇 번이나 거칠게 쓸어내립니다. '오늘도 공장 나가서 기계 돌리고, 공차 맞추고, 욕먹지 말고 또 하루를 버텨내야지.' 거울 속 푸석푸석한 얼굴에 매일 새벽 똑같은 다짐을 주입합니다. 그렇게 발버둥 치는 이유가 다 처자식 굶기지 않고 남들 사는 만큼은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을 지키겠다는 내 거창한 명분 뒤에 숨어있던 건, 도태될까 봐 겁에 질린 내 밑바닥의 두려움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불안이는 라일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아이를 망가뜨렸습니다. 저 역시 가장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제 안의 조그만 불안이에게 매일 채찍질만 해대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던 겁니다.

 

아내의 '맛있는 거나 사 먹이자' 한마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상영관에 환하게 불이 켜졌습니다. 서둘러 얼굴을 정돈하고 일어서는데 아내와 정면으로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머쓱한 마음에 헛기침을 두어 번 뱉어내며 "만화가 참 요란하네" 하고 어색하게 웃어넘겼습니다. 모른 척 넘어가 주기를 바랐습니다. 아내는 제 붉어진 눈가를 빤히 쳐다보더니,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왜 우느냐고 놀리지도 않았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캐묻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외투를 걸치며 제 두툼한 팔뚝을 툭 치더군요. 팝콘 통을 비워낸 아이들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무심하게 한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나가서 애들 맛있는 거나 사 먹이자." 별것 아닌 그 짧은 한마디에 뱃속 깊은 곳에서 팽팽하게 굳어있던 쇠줄 하나가 툭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기름 찌든 장갑을 끼고 쇳가루 날리는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짜다 보면 늘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빡빡한 납기와 통장 잔고의 압박은 가장인 나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 숙제라고 믿었습니다. 집에서도 새벽마다 혼자 깨어나 끙끙 앓았던 것이지요. 혼자 짊어진 줄 알았는데 옆에서 보폭 맞춰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알람보다 일찍 눈이 떠질 테고,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출근길 작업복 지퍼를 올릴 겁니다. 그래도 이제는 머릿속 불안이가 날뛰며 제어판을 부수려 할 때, 가만히 어깨를 두드려주며 숨 한 번 깊게 고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오늘은 동네 고깃집 가서 애들 좋아하는 돼지갈비나 노릇하게 구워 먹이고, 집에 들어가 아내와 캔맥주 한 캔 나눠 마시며 푹 자야겠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