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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야근 끝에 마주한 영화 그녀가 죽었다, 폰을 엎어놓게 만든 피로감

by cow85 2026. 9. 21.

그녀가 죽었다 영화 공식 포스터

극장 불이 환하게 다 켜졌는데도 5분 넘게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청소 카트를 밀고 들어오신 직원분이 쓰레기봉투를 털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고서야 부랴부랴 겉옷을 챙겨 들었지요. 평일 심야 상영관 구석 자리에 혼자 멍하니 앉아 스크롤처럼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를 바라보는데, 온몸에 진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었습니다. 낮 동안 가공 공정 잡느라 모니터를 하도 뚫어져라 쳐다본 탓인지 눈알이 뻑뻑했습니다. 피로가 어깨를 짓누르는데 머릿속은 영화 속 잔상으로 어지러웠습니다. 상영관을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가는데, 앞서 걷던 관객들이 하나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군요. 그 푸르스름한 불빛에 비친 사람들의 옆모습이 순간 영화에 나오던 구정태나 한소라의 얼굴처럼 기괴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던 공인중개사와 거짓된 관심에 목을 매던 인플루언서의 서늘한 표정이 계단참마다 어른거리는 듯했습니다.

 

극장 5분, 청소 직원이 올 때까지

상영관 바닥에 발이 굳은 사람처럼 앉아 있던 그 5분은 단순한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청소 도구를 든 직원분이 옆 줄 통로를 쓸어내릴 때까지 넋을 놓고 있었던 건, 영화가 던져준 찝찝한 뒷맛이 머릿속을 강하게 때렸기 때문이지요. 모니터 잔상에 익숙한 눈인데도 그날따라 스크린 잔상이 유독 끈질기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객석을 빠져나오는 내내 계단 난간을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출구 쪽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사람들의 얼굴마다 어딘가 뒤틀린 표정이 묻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남의 집 열쇠를 복사해 집 안을 뒤적거리며 쾌감을 느끼던 구정태의 그 음습한 눈빛이나, 타인의 시선을 사기 위해 가짜 삶을 전시하던 한소라의 비틀린 욕망이 남 일 같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매일 마주하는 기계 소음이나 쇳가루 날리는 현장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도 묘하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손에 쥔 작은 기계 하나로 남의 일상을 관음하고, 내 일상을 거짓으로 포장하는 그 모습들이 너무나 익숙한 일상의 한 단면이었기 때문입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늘상 보던 풍경과 영화 속 장면이 겹쳐지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차라리 아주 터무니없는 허구였다면 헛웃음 한번 치고 털어버렸을 텐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기계 가공에서 치수가 틀어져 제품을 통째로 날려먹었을 때 찾아오는 묵직한 허탈함이 가슴 안쪽을 긁고 지나갔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귀다툼을 하며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는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개찰구 직전까지 버티다가

지하철역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안 바지 주머니 속 폰이 쇳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주머니 안에서 손가락이 폰 모서리를 자꾸 만지작거렸지만 개찰구 직전까지 꾹 참고 화면을 켜지 않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걸어가는 내내 화면을 켜서 포털 뉴스를 훑거나 메신저를 확인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꺼진 액정을 마주하기가 꺼려졌습니다.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기 직전에야 비로소 화면을 켰습니다. 화면이 켜지자마자 빨갛게 떠 있는 숫자 알림들이 시야에 꽂혔습니다. 단체 대화방의 읽지 않은 메시지 수십 개와 SNS 앱 모서리에 붙은 붉은 배지들이 마치 나를 낚아채려는 낚싯바늘처럼 번뜩였습니다. 그 빨간 동그라미들을 보는 순간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놀려 화면의 알림들을 하나씩 지워버렸습니다. 단체방을 확인하지도 않고, 누가 어떤 글을 올렸는지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알림 센터를 비워냈습니다. 마치 기름때 묻은 작업 장갑을 퇴근 직전에 쓰레기통에 털어 넣듯 손끝으로 쓸어 넘겼습니다. 그 낚싯바늘 같은 알림들에 걸려들기 시작하면 영화 속 인물들처럼 끝없이 남의 일상을 기웃거리게 될 것 같았습니다. 피곤에 찌든 퇴근길에 굳이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누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훔쳐볼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알림을 싹 지워내고 검은 화면으로 돌아간 폰을 다시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습니다.

 

15년 오차 강박, 폰으로 옮겨붙은 것

스무 살 남짓에 기름 묻혀가며 공장 바닥에서 기계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어느덧 1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지금은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CAD/CAM으로 가공 경로를 짜고 공정을 잡는 일을 합니다. 머시닝 센터 안에서 0.01mm, 소수점 둘째 자리 단위의 공차를 맞추기 위해 하루 종일 씨름하는 게 제 일상입니다. 치수 하나 틀어지면 수백만 원짜리 소재가 고철로 변하고 납기일이 엎어지니, 늘 오차에 대한 극도의 강박을 안고 삽니다. 도면의 공차 표기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그 습관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마트폰으로 옮겨붙어 있었습니다. 붉은 알림 배지가 하나라도 떠 있으면 그걸 못 견뎌서 바로 눌러 지워야 직성이 풀리는 병이 생겼던 겁니다. 남들이 올린 사진을 멍하니 넘겨보고, 단톡방의 의미 없는 대화를 끝까지 읽어내려가며 완벽하게 확인을 끝내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현장에서 생긴 결벽증에 가까운 강박이 손바닥만 한 화면 속 데이터를 정리하는 데 쓰이고 있었던 셈이지요. 영화를 보면서 그게 얼마나 쓸모없고 위태로운 짓인지 퍼뜩 깨달았습니다. 남의 사생활에 코를 박고 있던 구정태나, 남의 반응에 목을 매던 한소라나 모두 자기 안의 공허를 엉뚱한 집착으로 채우려다 망가진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파멸을 지켜보며 제 마음속에 있는 공작기계의 비상정지, EMG 버튼을 덜컥 눌러버린 기분이었습니다. 0.01mm의 긴장감을 퇴근길 주머니 속까지 끌고 와서 스스로를 갉아먹을 필요는 없다는 경고음이 울렸습니다.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물론 영화 한 편 봤다고 해서 15년 동안 몸에 밴 피로와 버릇이 단칼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납기 압박에 시달리고, 기계가 알람을 띄우며 멈춰 서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일 뿐입니다. 잔업을 마치고 늦은 밤 집 앞 골목에 주차할 때면 몸은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그래도 작은 변화 하나는 확실히 생겼습니다. 차를 대고 시동을 끄는 그 찰나의 정적 속에서 습관처럼 폰을 꺼내려던 손을 멈칫하게 됩니다. 주머니 속에서 화면을 켜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근질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면 폰을 가만히 뒤집어 콘솔 박스 위에 엎어놓습니다. 차 문을 열고 집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열면 부엌에서 아내가 끓이고 있는 된장찌개 소리가 보글보글 들려옵니다.

 

화면 속 가짜 세상 대신 그 찌개 끓는 소리와 아이들이 거실에서 투닥거리는 소리에 귀를 돌립니다. 남의 일상을 훔쳐보거나 증명되지 않은 관심에 기대지 않아도, 내가 지켜야 할 진짜 삶은 바로 이 문 안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도 퇴근 후 차 시동 끄는 순간엔 일부러 주머니에서 손을 뺍니다. 내일도 아침 일찍 현장으로 나가 정밀한 쇠를 깎아내야 하기에, 오늘 밤만큼은 내 손과 눈을 헛된 화면이 아닌 내 가족의 온기 속에 가만히 내려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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