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영화 웅남이와 박성웅의 고군분투, 피곤한 잔업 끝에 본 솔직한 시선

by cow85 2026. 10. 20.

웅남이 영화 공식 포스터

“야, 박성웅 저 양반 진짜 먹고살기 힘들다, 출연료 두 배는 줘야겠다.” 소파에 몸을 파묻고 리모컨을 쥔 채 육성으로 내뱉은 첫마디였습니다. 화면 안에서 온몸을 던져 뒹굴고 있는 배우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같은 40대 일하는 사람으로서 짠한 마음과 실소가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저 정도로 구르고 메워줬으면 제작진은 절이라도 올려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요. 한 주 내내 정밀 가공 도면과 씨름하다 보면 주말 저녁엔 온몸의 진이 다 빠집니다. 머릿속에서는 소수점 세 자리 공차 수치와 툴 패스 잔상이 계속 맴돌고, 어깨는 쇳덩이를 얹어놓은 것처럼 무겁습니다. 애들은 제 방에 들어가 있고 집안이 고요해진 밤 열한 시, 복잡한 생각 따위는 일절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캔 맥주 하나 꺼내 들고 멍하니 TV를 켰습니다.

 

웅남이 보게 된 경위, 머리에 쥐 날 지경의 주말 밤

OTT 화면을 습관처럼 슥슥 넘기다가 낯익은 곰 캐릭터 포스터가 눈에 걸렸습니다. 개봉 당시에 평론가 한 줄 평 때문에 인터넷이 시끄러웠던 기억이 문득 났습니다. 당시에는 야근하느라 논란의 전말까지 일일이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대충 어떤 소동이었는지는 건너들어 알고 있었지요. 마침 화면 메인에 떡하니 올라와 있더군요. 사실 일주일 내내 CAD 화면 들여다보며 납기 맞추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난삭재 가공 물량이 들어와서 엔드밀 날은 자꾸 터져 나가고, 도면 치수는 빡빡한데 납기일은 코앞으로 다가와 피가 마르는 한 주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무슨 심오한 철학 영화나 머리 쓰는 추리물을 틀었다가는 골치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건 예술성이나 거창한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멍때리며 볼 수 있는 킬링타임용 영상이 간절했습니다. 어설프더라도 피식 웃고 넘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겠다는 계산이 섰지요. 작품성을 따져가며 볼 마음은 애초에 털끝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냥 캔 맥주 한 모금 마시면서 흐리멍텅한 눈으로 시간이나 때우자는 편한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기술자도 퇴근하고 나면 오차 범위 따위 신경 안 쓰는 아주 게으른 관객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웅남이 실제 질감, 가문의 영광 시절 슬랩스틱

영화를 30분쯤 보고 있자니 익숙한 기시감이 몰려왔습니다. 2000년대 초반, 20대 현장 막내 시절에 퇴근하고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보던 그 영화들 냄새가 났습니다. 딱 '가문의 영광'이나 '조폭 마누라' 시절에 극장에 걸리던 투박하고 거친 슬랩스틱의 질감 그대로였습니다. 요새 감성이나 세련된 코미디 호흡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옛날식 만화 같은 설정이 연달아 쏟아져 나왔지요. '신세계'에서 담배 한 대 물고 "살려는 드릴게"를 서늘하게 읊조리던 박성웅이 곰 인형처럼 흙바닥을 구르는 비주얼은 솔직히 웃겼습니다. 그 덩치 큰 양반이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순박한 척 뒹구는 꼴을 보고 있으니 큭큭거리며 웃음이 새어 나오더군요. 맥주를 마시다 뿜을 뻔한 장면도 분명히 몇 군데 있었습니다. 웃음 뒤에는 씁쓸한 기운이 바로 따라붙었습니다. 영화의 이음새가 너무 헐거웠기 때문입니다. 공정으로 치면 클램핑이 제대로 안 되어 소재가 덜덜 떨리는 상태로 엔드밀을 들이댄 격이었습니다. 씬과 씬 사이의 연결은 툭툭 끊기고, 개연성은 아예 작업대 밑으로 내던진 모양새였습니다. 그 숭숭 뚫린 각본의 구멍을 박성웅이라는 배우 한 명이 자기 몸뚱어리로 억지로 메워가고 있는 게 너무 투명하게 보였습니다. 1인 2역을 해가며 악역과 바보 역할을 오가는데, 저건 연기가 아니라 거의 육체노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현장에서도 설계가 엉망으로 내려오면 가공 기술자가 기계 앞에서 생고생을 하며 어떻게든 치수를 맞추려 발버둥을 칩니다. 딱 그 꼴을 보는 것 같아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평론가 논란, 여기가 호락호락한 곳인 줄 아느냐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개봉 당시 온라인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평론가의 한 줄 평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여기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인 줄 아느냐"는 식의 그 오만한 문장 말입니다. 그때는 그저 유명 개그맨의 영화판 도전에 대한 텃세 싸움 정도로만 치부하고 넘겼습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그 평론가의 지적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만듦새가 헐겁고 연출이 엉성한 것은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15년 동안 치수 재고 도면 치는 일을 해왔으니, 기준 미달인 결과물을 보면 쓴소리가 먼저 나가는 직업병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적하는 내용이 맞다고 해서 그 비아냥거리는 태도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마치 자기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고결한 영역이라도 되는 양 선을 긋고 내려다보는 태도는 완전히 틀려먹었습니다. 가공 바닥에서도 십수 년 굴렀다고 해서 갓 들어온 신입이나 타 직종 사람한테 "정밀 가공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아냐"며 대놓고 으스대지는 않습니다. 실력이 모자라면 부족한 부분을 객관적으로 짚어주면 될 일이지, 사람 자체를 문전박대하듯 조롱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하루 열 시간 넘게 쇳가루 마셔가며 일하고 돌아온 평범한 가장들이 바라는 건 대단한 시네마 천국이 아닙니다. 그냥 다리 뻗고 누워 헛웃음이라도 몇 번 치면서 하루 치 피로를 털어낼 수 있으면 그걸로 제 역할을 다한 셈입니다. 뇌 빼고 피식 웃을 권리까지 수준 낮은 관람으로 짓밟힐 이유는 없더군요.

 

부족한 영화라도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주말 밤을 달래주는 맥주 안주가 될 수 있는 법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또 알람 소리에 맞춰 출근길에 오르고, 기계 소음 가득한 현장에서 납기를 맞추기 위해 정신없이 하루를 버텨내야 합니다. 비록 엉성한 영화 한 편이었지만, 머릿속 찌꺼기를 털어내고 내일 또 묵묵히 버텨낼 힘을 얻었으니 저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