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털북숭이 배불뚝이 아저씨 둘이 쫄쫄이 타이즈 입고 은반 위에 들어가서 죽기 살기로 뒹구는 미친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불쑥 꺼내면 열에 아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되묻곤 합니다. 가공 공장 바닥에서 쇠 깎는 기계 소리만 하루 종일 듣다가 퇴근한 40대 아저씨가 꺼내기엔 참 낯간지러운 소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을 꽉 채운 골치 아픈 찌꺼기들을 단번에 날려버릴 때는 이만한 물건이 없습니다. 오늘도 가공 공차 100분의 1밀리미터 맞추느라 퇴근 직전까지 머리칼을 쥐어뜯었습니다. 모니터 속 3D 모델링 곡면을 종일 째려보며 공구 경로를 뽑다 보면, 퇴근길 운전대 잡을 때쯤엔 눈앞에 푸르스름한 잔상이 어른거립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면 몸뚱이는 천근만근이고 어깨는 굳어서 삐걱거립니다. 이럴 때는 잔잔한 감동이나 교훈을 주는 영화 따위는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직 생각이라는 것을 완전히 꺼버릴 수 있는 무식한 자극이 절실할 뿐입니다.
블레이즈 오브 글로리,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한 줄로 거칠게 요약하자면 털북숭이 배불뚝이 아저씨 둘이 살을 맞대고 피겨스케이팅 판을 뒤흔드는 이야기입니다. 가슴 털이 덥수룩한 마초 가이와 새침데기 도련님 스타일의 라이벌이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개인전에서 영구 제명을 당합니다. 그러고는 규정의 허점을 파고들어 역사상 최초의 남남 페어로 짝을 이뤄 복귀전을 치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진지한 구석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막무가내 설정입니다. 그냥 내 뇌를 서랍 속에 얌전히 넣어두고 아무 생각 없이 실컷 웃고 싶을 때 틀면 딱 들어맞습니다. 주인공 윌 페럴이 입고 나오는 타이즈는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불꽃무늬가 그려진 전신 쫄쫄이를 비집고 나오는 뱃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억지로 품격을 차리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서 오히려 숨통이 트입니다. 세상만사 복잡한 계산식 다 집어던지고 그냥 원초적인 웃음 하나만 묵직하게 밀어붙입니다. 작품 속에서 이 두 사람이 도전하는 필살기인 '아이언 로터스'는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기술 하나 잘못 들어가면 목이 날아간다는 정신 나간 설정인데, 성공 확률이 0에 수렴한다는 소리를 대놓고 합니다. 한동안 거래처 공장 반장들과 소주 한잔 기울일 때도 어려운 발주 건만 들어오면 서로 아이언 로터스 급 성공 확률이라며 껄껄 웃어댔습니다. 가공하기 더럽게 까다로운 형상이 들어와도 "이거 완전 아이언 로터스네" 하면서 실없는 농담으로 넘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B급 코미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묘하게 정밀 가공 현장과 닮은 구석도 있습니다. 저 우스꽝스러운 몸짓 뒤로 은반 위를 미끄러지는 배우들의 합은 소수점 단위 치수 맞추듯 기가 막히게 딱딱 맞아떨어집니다. 얼렁뚱땅 웃기는 것 같아도 바닥에 깔린 연기와 동작의 타이밍은 아주 정교합니다. 멍청해 보이는 장면을 완벽하게 살려내기 위해 얼마나 무수히 엉덩방아를 찧었을지 훤히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실컷 웃다가도 그 악바리 같은 에너지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솔직히 이 영화 보고 피겨 중계 제대로 못 봅니다
이 영화를 접하고 난 뒤로 생긴 아주 치명적인 부작용이 하나 있습니다. 동계 올림픽 시즌만 되면 가족들과 거실에 둘러앉아 피겨스케이팅 중계를 온전한 정신으로 보지 못합니다. 빙판 위를 우아하게 활주하는 선수들을 보면 경외심이 들어야 마땅한데, 시도 때도 없이 윌 페럴의 기름진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클래식 선율에 맞춰 진지하게 연기를 펼치는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전부 코믹한 장면으로 왜곡되어 다가옵니다. 특히 남녀 선수가 서로를 맞잡고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는 페어 리프트 장면이 가장 큰 고비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번쩍 들어 올리는 그 찰나의 순간마다 영화 속 두 배불뚝이 아저씨의 처절한 표정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됩니다. 허벅지를 부들부들 떨면서 서로의 허리춤을 악착같이 쥐어뜯던 그 꼴불견 리프트가 뇌리에 박혀 지워지질 않습니다. 남들은 예술 점수가 몇 점이니 기술 점수가 어떠니 감탄하고 있을 때, 저 혼자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한번은 참다못해 혼자 거실 바닥에서 끅끅대며 어깨를 들썩이다가 아내에게 호된 핀잔을 들었습니다. 정숙하게 몰입해서 보던 아내가 도대체 저 아름다운 장면에 웃을 구석이 어디 있냐며 도끼눈을 치켜떴습니다. 피겨에 문외한인 아저씨가 예술을 모른 채 실실 쪼개는 줄로만 알았을 겁니다. 차마 배불뚝이 털북숭이 둘이 우당탕탕 몸을 부딪치며 회전하던 영화가 떠올랐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헛기침 두어 번 하고 물 마시러 주방으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격조 높은 스포츠가 한순간에 난장판 슬랩스틱 코미디로 둔갑하는 기묘한 후유증입니다. 빙판 위의 아름다운 동작을 보면서도 기름 묻은 작업복 입은 채 나뒹구는 모습들이 오버랩됩니다. 영화가 머릿속에 심어놓은 잔상이 얼마나 지독한지, 올림픽 피겨 종목만 시작되면 제 머릿속 회로가 엉망으로 꼬여버립니다. 이제는 피겨 중계 화면만 나와도 반사적으로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피우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식구들 다 있을 땐 절대 거실 TV로 못 틉니다
이 명작을 왜 거실의 커다란 스마트 TV로 당당하게 틀어놓고 보지 못하는지는 명확합니다. 한창 호기심 많고 눈치 빠른 우리 집 두 녀석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과 소파에 앉아 이 화면을 띄웠다가는 그날로 온 집안의 평화가 깨집니다. 털이 숭숭 난 건장한 성인 남성 둘이서 서로 쫄쫄이 타이즈를 입고 은반 위를 미끄러지는 꼴을 애들이 보게 둘 수는 없습니다. "아빠, 저 삼촌들은 왜 저렇게 딱 달라붙어서 뒹굴어?" 하고 천진난만하게 물어볼 게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런 질문이 쏟아지는 순간, 평화롭던 거실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고 제 등짝은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남편이 주말에 아이들 정서 교육은 고사하고 저런 민망하고 괴상망측한 화면이나 보여주고 있다고 아내의 잔소리 폭탄이 쏟아질 게 분명합니다.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체통을 지키고 등짝의 안전을 도모하려면 이 영화는 절대 거실 양지로 끌어올려서는 안 될 금기물입니다. 애들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수납장에 위험한 공구를 숨겨두듯 꼭꼭 감춰둬야 합니다. 결국 이 작품은 철저하게 혼자만의 비밀 야식처럼 컴퓨터 하드디스크 깊숙한 폴더에 꽁꽁 숨겨두었습니다. 밤늦게 식구들이 다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꺼내 볼 수 있는 일종의 밀수품 같은 존재입니다. 혼자 몰래 끓여 먹는 얼큰한 라면 한 그릇처럼, 남들에게 공유하기엔 낯부끄럽지만 혼자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짜릿한 맛이 있습니다. 굳이 가족들에게 제 취향을 이해시키려 들 필요도 없고, 온전히 저 혼자만의 공간에서 즐기는 편이 백배는 마음 편합니다. 누구에게나 남들에게 설명하기 구차한 자기만의 도피처가 하나쯤은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에게는 바르고 모범적인 아버지여야 하고, 아내에게는 든든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남편이어야 하는 자리가 때로는 버겁습니다. 그 무게감을 잠시 내려놓고 한없이 유치하고 바보 같은 웃음에 몸을 던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 비밀 폴더입니다. 가장의 품격 따위는 잠시 팽개쳐두고 오롯이 바보가 될 수 있는 저만의 은밀한 피난처인 셈입니다.
새벽 1시 캔맥주, 그리고 꿀잠
가족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든 새벽 1시가 되면 드디어 저만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방에 불을 끄고 조용히 모니터 앞에 앉아 낡은 유선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습니다. 냉장고에서 꺼내온 차가운 캔맥주 뚜껑을 조심스레 땁니다. 칙 하는 탄산 빠지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나지막하게 울려 퍼집니다. 전체를 다 볼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황당하고 웃긴 장면들만 마우스로 툭툭 골라 넘겨가며 보는데, 이미 서너 번은 족히 돌려본 장면들입니다. 낮 동안 현장에서 사람에 치이고, 빡빡한 납기와 원가 절감 압박에 짓눌렸던 피로가 순식간에 씻겨 내려갑니다. 도면 치수 하나 빗나갈까 봐 종일 잔뜩 곤두서 있던 신경줄이 시원한 맥주 한 모금과 함께 탁 풀립니다. 방 밖으로 웃음소리가 새어나가 식구들을 깨울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모니터를 보며 큭큭거립니다. 뱃속 밑바닥부터 울컥 올라오는 실소를 억지로 억누르다 보면, 가슴속에 단단하게 뭉쳐 있던 시커먼 응어리가 툭 하고 풀려나가는 기분이 듭니다. 복잡하게 엉켜 있던 머릿속 스위치가 한순간에 탁 꺼져버리는 듯한 해방감이 밀려옵니다. 내일 당장 결제해야 할 대출 이자나 애들 학원비 걱정, 내일 아침 출근해서 깎아야 할 난해한 금형 가공 계획도 이 순간만큼은 전부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저 화면 속에서 목숨 걸고 타이즈를 부여잡는 저 바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도저히 버티기 힘든 잔업을 끝마친 날이면 어김없이 이 해괴한 은반 위의 난투극을 꺼내 들곤 합니다. 지친 밤 혼자 숨통 트이기엔 이만한 명약도 드물었습니다.
맥주 한 캔을 뚝딱 비워내고 찌그러진 빈 캔을 베란다 분리수거함에 툭 던져 넣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무거운 이불을 덮고 침대에 몸을 뉘이면 거짓말처럼 잡념 하나 없이 기절하듯 꿀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기름 냄새 밴 작업복을 챙겨 입고 치열한 가공 공장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내일도 내 자리에서 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묵묵히 쇠를 깎아내야 하겠지만, 오늘 밤 한 번 거나하게 털어냈으니 또 며칠은 넉넉히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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