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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서울의 봄 보고 차 핸들에 이마를 댄 이유

by cow85 2026. 10. 28.

서울의 봄 영화 공식 포스터

극장 불이 켜지는데 의자에서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몸이 안 떨어져서 사람들 다 빠져나갈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지하 3층 주차장 차 안에 들어와서야 핸들에 이마를 대고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계기판 초록색 불빛만 껌뻑거리는데 가슴속에 차오르는 찌꺼기 같은 감정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더군요.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에서 터져 나오던 그 치열했던 아홉 시간의 총알 세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전화기 붙들고 이리저리 줄타기하던 인간들이나, 원칙 하나 지키겠다고 끝까지 다리 위를 지키던 그 고집스러운 군인 얼굴을 보면서 자꾸만 오늘 낮에 공장 사무실에서 겪었던 일들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통장 잔고와 납기일 사이에 끼여서 하루하루 버티는 중년의 일상이 참 묘하게 그 시절의 공기랑 닮아 있었습니다.

 

서울의 봄, 극장에서 바로 못 일어난 이유

영화는 1979년 12월 12일 밤, 보안사령관 전두광 일당이 육군참모총장을 강제로 납치하고 군대를 동원해 서울 시내를 장악해 들어가는 급박한 아홉 시간을 다룹니다. 전세가 완전히 뒤집히고 반란군 패거리들이 군권을 손에 쥐는 순간, 제 머릿속에는 엉뚱하게도 오늘 오후 원청에서 날아온 엑셀 견적서 한 장이 떠올랐습니다. 화면 속 군인들은 부대 마크를 바꾸고 상관을 배신하며 각자의 생존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더군요. 그 살벌한 줄타기를 지켜보는 내내 저는 모니터 구석에 떠 있던 가공 단가 수정 통보 창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개당 18,500원 받던 정밀 알루미늄 하우징 단가를 다음 달 1일부로 16,280원으로 깎겠다는 통보였습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볼 필요도 없는 숫자였습니다. 한 달에 1,500개를 납품하는 주력 물량인데, 개당 2,220원이 떨어져 나가면 정확히 월 333만 원의 순이익이 공중으로 증발해 버립니다. 스크린 속에서 육군본부 장성들이 전세가 기울자마자 핑계를 대며 하나둘 벙커를 빠져나갈 때, 제 주머니 속 핸드폰에서는 둘째 아이 학원비 결제 문자가 조용히 울렸습니다. 다음 달이면 아파트 담보대출 갱신 금리가 또 오른다는 안내문도 이미 우편함에 꽂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333만 원이면 우리 집 한 달 고정 지출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이고, 현장 막내 직원 세후 월급을 훌쩍 넘어서는 금액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관객들은 한숨을 쉬며 욕을 뱉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역사적인 분노 이전에, 내일부터 당장 날아올 어음 결제일과 기계 할부금을 어떻게 틀어막아야 할지 몰라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권력 찬탈의 서늘함보다 333만 원이라는 숫자가 목덜미를 짓누르는 감각이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12% 단가 인하, 333만 원짜리 단두대 칼날

영화 중반부,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장군이 홀로 바리케이드 너머로 진압군 탱크를 몰고 나가 반란군 앞을 막아서던 장면이 있습니다. 모든 부대가 등을 돌린 상황에서도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을 지키겠다고 버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보다, 저 고집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지부터 먼저 떠오르는 제 자신이 참 초라했습니다. 개당 순마진 3,000원 보고 밤낮없이 머시닝센터 물려서 깎던 제품이었습니다. 칩 갈고 툴 마모 체크해가며 쥐어짜야 겨우 남기던 3,000원에서 2,220원을 깎아버리면 개당 800원도 안 남습니다. 공구대 세팅하고 절삭유 채우고 전기세 내고 나면, 이건 기계 앞에서 공짜로 무료 봉사하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는 처사였습니다. 원청 회의실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때 손에 쥐고 있던 볼펜 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힘을 줬습니다. 도면을 던져버리고 납품 안 받겠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습니다. 가공 공차를 100분의 1밀리미터 단위로 잡아내느라 며칠 밤을 새운 사람한테 들이밀 숫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입술만 깨물 뿐 끝내 고함 한 번 지르지 못했습니다. 제 옆에 앉아 있던 사장 형님 때문이었습니다. 쉰여덟 먹은 사장 형님이 자기 아들뻘도 안 되어 보이는 원청 구매과 대리 녀석 앞에서 허리를 반으로 접고 두 손을 비비고 있었습니다. 젊은 녀석이 턱을 치켜들고 "납품 업체 바꾸는 건 일도 아닙니다"라고 툭 던지는데, 형님은 그저 허허 웃으며 납품 기일과 품질은 확실히 맞출 테니 단가 인하 폭만 조금 유예해 달라고 바닥을 기는 목소리로 읍소하더군요.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주먹을 쥘 힘조차 스르륵 빠져나갔습니다. 영화 속 이태신 장군처럼 끝까지 바른 소리 하며 문을 박차고 나가기엔, 공장에 돌아가면 돌아가고 있는 가공 장비 석 대와 거기 딸린 우리 식구들 밥줄이 너무 뚜렷하게 눈에 밟혔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상태로 회의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맡았던 공장의 기름 냄새가 참 지독하게도 썼습니다.

 

2011년 스물일곱, 쇳가루부터 0.005mm까지

공장 바닥에 처음 발을 들였던 2011년의 제 나이가 스물일곱이었습니다. 기름때 찌든 반코트 하나 걸치고, 사장 형님과 단둘이 남의 공장 귀퉁이를 빌려 중고 머시닝센터 한 대 덜렁 놓고 시작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첫 2년 동안은 가공 프로그램은커녕 기계 밑바닥에 쌓이는 쇳가루와 썩은 절삭유를 삽으로 퍼내며 손톱 밑이 새까매지도록 일만 배웠습니다. 낮에는 치수 재고 소재 나르고, 밤에는 식어버린 컵라면 하나 물려놓고 사무실 구석 컴퓨터에서 새벽까지 CAM 소프트웨어 책을 파고들었습니다. 툴패스 하나 잘못 내서 앤드밀 부러뜨릴 때마다 사장 형님 눈치 보며 울화통을 삼켰고, 소수점 세 자리인 0.005밀리미터 공차를 도면에 맞추려고 마이크로미터를 수백 번씩 돌려가며 손끝 감각을 익혔습니다. 일감이 통째로 끊겼던 혹독한 불경기 때는 둘이서 칼바람 부는 공장 옥상에 올라가 새우깡 한 봉지에 깡소주를 나눠 마시며 버텼습니다. "기술만 똑바로 쥐고 있으면 밥은 안 굶는다"는 사장 형님의 그 투박한 한마디를 밧줄처럼 붙잡고 15년 세월을 깎아내며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현장에서 기름 묻혀가며 배운 기술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30대를 다 바쳤습니다. 0.005밀리미터라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숫자를 지켜내는 정직함이야말로 세상이 무너져도 나를 지켜줄 방패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스크린 속에서 군인들의 맹세가 권력욕 한 방에 휴짓조각이 되듯, 15년간 쌓아 올린 제 기술의 가치도 대기업 구매팀 컴퓨터의 마이너스 12%라는 키보드 입력 한 번에 허무하게 깎여나가고 있었습니다.

 

새벽 4시 지그, 항복 문서이자 생존의 무기

결국 회의실을 나와서 제가 한 일은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밤 11시에 공장 불을 다 켜고 앉아서 CAM 프로그램을 바닥부터 다시 짰습니다. 알루미늄 블록을 깎아내는 황삭 경로를 다 뜯어고치고, 공구 이송 속도를 기계가 버틸 수 있는 한계선까지 밀어붙여 사이클 타임을 개당 14분에서 9분대로 강제로 줄였습니다. 기존 툴로는 공차가 틀어질 게 뻔했기에, 4번 머시닝센터에 물려놓을 고정 지그를 새로 설계해 직접 가공했습니다. 기계 안에서 절삭유가 뿜어져 나오고 칩이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새벽 시간을 꼬박 보냈습니다. 차가운 새벽 4시의 공기 속에서 완성된 새 지그를 꺼내 다이얼 게이지를 물려보니 바늘 오차는 0.003밀리미터 이내로 딱 들어맞았습니다. 절삭유 범벅이 된 지그를 손에 들고 서 있는데 불현듯 쓴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내가 고작 이따위 치졸한 단가 인하에 대가리를 숙이고 납기를 맞추려고 그 고생을 하며 15년 동안 기술을 배웠나 싶어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았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나라를 지키느냐 마느냐를 두고 총을 쐈지만, 저는 내 통장 잔고와 내 새끼들 학원비를 지키기 위해 기계 앞에서 홀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던 셈입니다. 밤새 깎아낸 건 항복 문서이자 생존의 무기였습니다. 비굴하게 단가를 후려치는 세상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도, 기어코 살아남아서 내 자리를 지켜내겠다는 가장의 악바리 같은 무기 말입니다.

 

씁쓸해도 어쩌겠습니까. 제 기술이 원청의 갑질 앞에서는 초라한 항복 문서에 불과할지 몰라도, 집으로 돌아가면 처자식의 아침 밥상을 차려내는 가장 단단한 방패가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합니다. 서너 시간 눈 붙이고 나면 내일 아침에도 저는 작업복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고, 묵묵하게 기계 전원 스위치를 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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