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거실 소파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라 온 집안의 불은 다 꺼져 있었고, TV 화면에서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만 멍때리는 제 얼굴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방 안에서는 내일 학교에 가야 할 두 녀석이 쌕쌕거리며 자는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몸은 잔업에 찌들어 천근만근 무거웠는데,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를 생각조차 못 한 채 화면만 바라보았습니다. 다들 통쾌한 반란극이라며 주먹을 쥐고 환호한다는데, 저는 도무지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화면 속 주인공들은 기세등등하던 거대 헤지펀드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 목구멍 너머로는 쓰디쓴 침만 계속 넘어갔습니다. 방구석 유튜버 하나가 촉발한 개미들의 반격이라는 소재는 분명 시원했습니다. 하지만 화면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월스트리트의 비열한 눈빛과 판을 제멋대로 뒤흔드는 거대 자본의 행태를 보는 내내, 제 속에서는 서늘하고 씁쓸한 바람만 휑하니 불어왔습니다.
덤 머니, 크레딧 올라가도 소파에서 못 일어났다
크레딧 올라가는데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던 주가 그래프와 숫자들이 사라지고 까만 배경에 하얀 글자들만 줄지어 올라가는데,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소파 가죽의 찬 기운이 바지를 뚫고 엉덩이에 닿는데도 미동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방금 본 두 시간짜리 영상이 단순한 오락 영화로 와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원하고 통쾌한 장면도 분명 있었습니다. 주머니 털려가며 매일 푼돈에 벌벌 떨던 평범한 사람들이 뭉쳐서 거물들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대목에선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턱 끝까지 차오른 빚더미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겠다고 목숨줄 같은 돈을 집어넣던 그들의 눈빛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나 같은 서민도 한 방 터뜨릴 수 있다는 그 달콤한 광기가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는 묘한 대리만족이 스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속에서는 서늘하고 씁쓸한 바람이 휑하니 불었습니다. 개미들이 이겼다고 축포를 쏘아 올리려는 순간, 판을 쥐고 흔드는 놈들은 너무도 태연하게 매수 버튼을 잠가버렸습니다. 자기들이 잃을 것 같으니까 게임 규칙 자체를 그 자리에서 뜯어고친 겁니다. 개미들이 아무리 뭉쳐봐야 결국 판돈 쥐고 흔드는 놈들 손바닥 안이라는 게 눈에 뻔히 보여서 더 속이 쓰렸습니다. 저 판이나 내가 발 담그고 있는 이 제조업 바닥이나 룰은 똑같이 썩어있구나 싶었습니다. 미국 금융시장의 날고긴다는 펀드매니저들이나, 도면 들고 기름 냄새 나는 우리 공장 문지방을 넘나드는 원청 놈들이나 본질은 단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들이 유리할 때는 시장 경제의 법칙을 들먹이고, 지들이 손해 볼 것 같으면 계약서 조항을 비틀어 밑바닥 하청에 손실을 몽땅 떠넘깁니다. 영화 속 개미들이 매수 정지 버튼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모습 위로, 지난 15년간 제가 겪어온 수많은 밤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하청 공장 15년, REV 03 메일 한 통의 무게
머시닝센터 모니터 앞에 서서 소수점 셋째 자리인 0.005mm 공차를 맞추겠다고 엔드밀 마모량을 체크하고 온도를 잽니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그 오차를 잡으려고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가공 조건을 잡습니다. 그렇게 피를 말려가며 납기를 맞춰놓으면, 납품 직전에 도면을 싹 바꿔놓고 이번에 안 맞춰주면 다음 물량부터 거래를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지난 15년간 서너 달에 한 번씩은 꼭 겪어온 지긋지긋한 일상입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가공 난이도가 워낙 높아 공구 경로만 며칠을 고민했고, 20시간 넘게 5축 장비를 밤새도록 돌려 완성한 알루미늄 블록 부품이었습니다. 버(burr) 하나 없이 거울처럼 말끔하게 깎인 제품을 정반 위에 올려놓고 마이크로미터로 치수를 재며 안도하던 찰나였습니다. 납품을 딱 하루 앞둔 오후 네 시, 사무실 모니터 우측 하단에 메일 알림창이 떴습니다. 제목에는 굵은 글씨로 '도면 수정 배포 REV 03'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메일 한 통으로 20시간 넘게 깎아낸 정밀 부품들이 전부 고철이 됐습니다. 내부 홀 위치와 단차가 통째로 바뀌어 있어서 수정 가공조차 불가능한 형상이었습니다. 원청 담당자 놈은 자기네 설계실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말은 쏙 뺀 채, 설계 변경건이니 내일모레까지 수정본으로 다시 뽑아달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납기를 못 맞추면 라인 중단에 따른 클레임을 청구하겠다는 협박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소재 값만 450만 원이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날려 먹은 특수 초경 공구 값과 며칠 밤낮으로 장비를 풀가동하며 태운 전기세까지 합치면 손해가 순식간에 800만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직원 다섯 명 붙어 있는 영세한 임가공 공장에서 800만 원이면 한 달 꼬박 기계를 돌려 손에 쥐는 순마진이 통째로 증발하는 금액입니다. 그 손실을 고스란히 하청이 떠안아야 한다는 게 이 바닥의 묵계였습니다. 수백만 원짜리 정밀 부품이 순식간에 고철값 킬로당 1,500원짜리 쓰레기로 전락해 마당 구석 팔레트 위에 내던져졌습니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사장 형님의 얼굴은 시커먼 흙빛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담배만 연거푸 태우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번 달 제가 뼈 빠지게 일해서 받아야 할 잔업비와 기술 인건비 얘기는 목구멍 안쪽으로 억지로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청의 일방적인 횡포에 말 한마디 못 하고 당하는 꼴이, 스크린 속에서 거래 정지당한 개미들의 처지와 소름 돋게 닮아 있었습니다.
비밀번호 여섯 자리,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다
공장 잔고가 바닥나면서 월급날 제 통장으로 들어온 돈은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사장 형님은 미안하다며 고개를 떨궜지만, 당장 며칠 뒤면 빠져나가야 할 아파트 담보대출 이자와 두 아이의 학원비, 관리비 날짜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이틀을 끙끙 앓다가 결국 스마트폰을 켜고 마이너스 통장 개설 버튼을 눌렀습니다. 한도 550만 원을 받아 들고 은행 앱을 켰습니다. 마통 550만 원에 찍힌 금리는 연 6%였습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하루에 만 원 가까운 돈이 그냥 숨만 쉬어도 허공에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루 만 원이면 아이들 간식비고, 퇴근길에 아내가 장바구니에 담을까 말까 망설이던 계란 한 판 가격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어도 내 피 같은 생돈이 매일 만 원씩 통장에서 뜯겨 나간다는 공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화면을 쳐다보며 비밀번호 여섯 자리를 누르는데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습니다. 0.001mm 단위 인디케이터 바늘을 맞출 때도 흔들리지 않던 손이었습니다. 기계 앞에서는 단 한 번도 겁먹어본 적 없는 손가락이, 고작 액정 위에 뜬 숫자 패드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습니다. 이 돈을 누르면 내가 가장으로서 쌓아온 바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숫자를 다 누르고 이체 완료 화면이 뜨는 순간,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날 밤 야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부엌에서 조용히 된장찌개를 데워 식탁을 차려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종종걸음 치며 애들 챙기느라 지쳤을 텐데도, 아내는 찌개 속 돼지고기를 건져 제 밥숟가락 위에 가만히 얹어주었습니다. 고기 한 점을 입에 넣는데 목이 턱 메어 차마 넘기지 못하고 헛기침만 연신 뱉어냈습니다. 내가 못나서 밖에서 털리고 빚까지 지고 들어왔다는 자책감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아내는 아직도 그 550만 원의 존재를 모릅니다.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까맣게 모릅니다. 그 빚을 들키는 순간 우리 집 식탁의 평온함이 산산조각 날 것 같아, 저는 입술을 꽉 깨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밥공기를 비워냈습니다.
석 달 새벽 5시, 마통 0 찍히던 날 옥상에서 울었다
그날 이후 석 달 동안 새벽 5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도 하루도 빠짐없이 공장 문을 열고 기계를 돌렸습니다. 남들이 쉬는 주말 특근과 야간 잔업을 도맡아 하면서, 오로지 마통 550만 원을 메우겠다는 생각 하나로 기계처럼 움직였습니다. 조금이라도 긴장이 풀리면 하루 만 원씩 날아가는 이자 생각에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손가락 마디마디는 퉁퉁 부어올라 아침마다 주먹이 쥐어지지 않았습니다. 목구멍에서는 쿨럭거릴 때마다 절삭유 기름 찌꺼기가 섞인 메케한 가래가 튀어나왔습니다. 손목과 허리의 욱신거리는 통증을 잡으려고 정형외과에서 타 온 소염진통제를 믹스커피에 털어 넣으며 버텼습니다. 기계가 깎이는 소음 속에서 멍하니 서 있으면 내가 사람인지 기계의 부속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습니다. 석 달 만에 몸무게가 6킬로가 빠졌습니다. 어느 날 공장 샤워실 거울을 봤는데,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눈이 퀭하게 파인 귀신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40대 가장의 몰골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하지만 기계 가공 사이클 타임이 돌아가는 틈틈이 휴대폰 앱을 켜서 줄어드는 마이너스 숫자를 확인할 때마다 이를 악물었습니다. 400만 원, 200만 원, 80만 원으로 빚이 깎여나갈 때마다 뼈를 깎는 고통도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통장 잔고에 마통 0원이 찍히던 날, 저는 자판기에서 종이컵을 뽑아 들고 공장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컴컴한 공단 야경을 내려다보며 식어빠진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오르더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서러워서 운 게 아니었습니다. 내 새끼들과 아내에게 이 추잡한 돈 걱정을 전염시키지 않고 내 선에서 막아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습니다. 그 지옥 같은 날들을 겪고 난 뒤부터는 푼돈을 모으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대박을 노리는 허황된 투자는 꿈도 꾸지 않습니다. 지금도 ISA 계좌와 연금저축 펀드에 매달 야간 잔업과 주말 특근으로 쥐어짠 10만 원, 20만 원을 쪼개 넣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비트코인이나 테마주로 하루아침에 수천만 원을 벌었다는 세상에서 우스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쇳가루 마셔가며 내 몸을 갈아 넣어 만든 피 같은 돈이고, 우리 가족의 최소한의 방파제입니다.
아내는 아직도 그 550만 원의 존재를 모릅니다. 앞으로도 평생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영화 속 개미들이 시스템의 농간에 분통을 터뜨릴 때, 저는 내일 아침 다섯 시 반에 울릴 알람을 끄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거대 자본이 룰을 바꾸든 원청이 납기를 후려치든, 내 가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내일도 정반 위에 올라선 내 손끝의 정밀함을 의심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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