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킨 다리를 뜯다가 씹던 게 목에 턱 걸렸습니다. 금요일 밤 잔업을 털어내고 집에 들어오니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습니다. 공장에서 하루 종일 100분의 1밀리미터 맞춘다고 모니터에 머리를 박고 있었더니 눈알이 뻑뻑했습니다. 좌표 하나만 잘못 찍어도 툴이 부러지고 소재가 고철통으로 들어가는 긴장감을 종일 짊어지고 퇴근했더니, 어깨 위에 시멘트 포대 서너 장은 얹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현관문을 여는데 집안이 낯설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처형네 가족이 캠핑 간다며 우리 집 두 녀석까지 데리고 외갓집으로 몽땅 몰고 가버린 덕분이었습니다. 애들 학원비 대느라 둘 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이렇게 집안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본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가늠도 안 됐습니다.
30일 보기 전, 치킨이나 뜯자던 금요일
밤 애들 외갓집 보내고 10년 만에 아내랑 단둘이 거실에 앉았습니다. 이상하게 공기가 뻘쭘했습니다. 매일 "숙제했냐", "학원 늦는다" 소리 지르며 북새통을 치르던 거실에 애들이 쏙 빠져나가니 둘 사이에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둘 다 어색해서 텔레비전 화면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먼저 입을 뗐습니다. 치킨이나 한 마리 시켜서 맥주나 한잔하자고 했습니다. 아내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배달 온 프라이드 상자를 거실 바닥에 펴놓고 OTT 화면을 켰습니다. 인기 순위 맨 위에 영화 <30일>이 걸려 있더군요. 강하늘이랑 정소민 나오는 코미디 영화라길래 머리 식히기 딱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혼 도장 찍고 남은 숙려 기간 30일 동안 둘 다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복잡한 현실 생각 다 털어내고 닭다리나 뜯으면서 가볍게 피식거리다 자려고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영화 30일 그 장면, 치킨이 목에 걸린 순간
초반에는 둘이 죽어라 물고 뜯고 싸우는 모습에 낄낄거리며 웃었습니다. 강하늘이 맡은 노정열은 자격지심 덩어리처럼 굴고, 정소민이 연기한 홍나라는 기 센 말투로 사사건건 맞받아칩니다. "너 뇌에 보톡스 맞았냐"면서 가족들 앞에서도 악을 쓰고 밑바닥까지 치고받는데, 뻔한 억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오래된 현실 부부들이 쌓아둔 독기가 고스란히 보여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기억을 통째로 날려버린 두 사람이 야구장에서 다시 마주치고,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멍하니 끌리는 장면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닭다리를 입에 물고 뜯다가 씹던 게 목에 턱 걸렸습니다. 미치도록 미워하며 헐뜯던 껍데기를 싹 걷어내고 나니까, 서로를 처음 보고 가슴 뛰어하던 그 시절의 서툰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옆을 슬쩍 쳐다보니 아내도 웃음기가 싹 가셔 있었습니다. 손에 든 콜라 캔만 괜히 만지작거리고 있더군요. 우리도 연애할 때는 저 사람들처럼 작은 농담 하나에도 배를 잡고 웃었는데, 언제부터 아파트 대출금 계산서와 아이들 통장 잔고 사이에서 말 한마디 곱게 안 나가는 사이가 됐는지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기름진 치킨 살점이 까끌까끌하게 얹히는 기분이었습니다.
말 한마디 대신 제일 큰 닭다리를 툭 얹어줬습니다
거실에 잠깐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 나이 먹고 "내가 미안했다"거나 "그동안 고생 많았다" 같은 낯간지러운 말을 꺼낼 배짱은 없었습니다. 현장에서 15년 동안 기름밥 먹으면서 배운 거라곤 입으로 떠드는 변명이 아니라 기계 돌려서 결과물 뽑아내는 것뿐이었습니다. 말주변 없는 놈이 할 수 있는 짓이란 게 참 뻔했습니다. 말 한마디 못 하고 상자 안에 남아 있던 제일 큰 닭다리를 집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 앞접시에 툭 올려놨습니다. 그냥 튀김옷 바삭하게 잘 붙은 놈으로 아무 말 없이 밀어 넣은 겁니다. 아내가 물끄러미 접시를 내려다보더니 피식 웃었습니다. "당신이나 많이 먹어. 일하느라 살 다 빠졌네." 그 말 한마디에 며칠 동안 잔업 뛰며 찌뿌둥하던 몸이 쑥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 손등을 보니 겨울도 아닌데 손끝이 허옇게 트여 있었습니다. 애들 학원비 쪼갠다고 본인 옷 한 벌 제대로 안 사고 버텨온 세월이 그 거친 손에 다 묻어 있었습니다. 뼈마디 굵어진 손으로 닭다리를 집어 드는 아내를 보며 고개 숙이고 맥주만 조용히 들이켰습니다.
영화 끝나고, 손가락 마디마디 꾹꾹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둘 다 리모컨을 못 누르고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화면의 흰 자막은 쉼 없이 올라가는데 텔레비전 불빛만 거실 바닥을 푸르스름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기억을 되찾고 서로를 다시 붙잡았는데, 우리는 흘러가버린 10년의 청춘을 어디서 찾아와야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적어도 저 사람들처럼 밑바닥까지 부서지기 전에 오늘 밤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 있었으니까요. TV를 끄고 일어나려다 화장대에 놓인 핸드크림을 집어 들었습니다. 바닥에 다시 주저앉아 아내 손을 끌어당겼습니다. 하얀 크림을 듬뿍 짜서 손등에 얹고 손가락 마디마디를 꾹꾹 눌러줬습니다. 렌치 돌리느라 굳은살 박인 내 투박한 손으로 아내의 메마른 손을 천천히 주물렀습니다. 처음엔 뭐 하냐며 손을 빼려 하더니 이내 가만히 손을 맡겼습니다. "내일 외곽으로 드라이브나 잠깐 돌다 올까." 제 물음에 아내는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 끄덕임 하나가 가슴에 묵직하게 와닿았습니다. 월요일이면 다시 새벽같이 일어나 기계 소음 가득한 공장 바닥으로 출근해야 합니다. 빡빡한 납기와 치열한 하루하루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내일 하루만큼은 아내 손잡고 뻥 뚫린 길을 달려봐야겠습니다. 그렇게 또 한 주를 버텨낼 힘을 얻는 게 가장의 삶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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