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모컨 쥔 손에 힘이 딱 들어가면서 끝까지 채널을 못 돌리고 새벽까지 보게 됐습니다. 정밀 가공 납기를 맞추느라 종일 도면 치수와 씨름하고 밤늦게 현관문을 열었더니 온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씻고 나와서 멍하니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는데, TV 화면에서 이 영화가 막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녀석이 갓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던 때라 집안엔 온통 기저귀 냄새가 맴돌았고, 통장 잔고는 늘 간당간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피곤해서 딱 10분만 멍때리다 들어가 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화면 속에서 툭탁거리며 부딪히는 두 형제의 모습이 묘하게 눈에 밟혀서 도저히 소파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형' 관람기, 극장 아닌 새벽 거실 소파에서
극장에 가서 팝콘을 먹으며 볼 여유 같은 건 애초에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낮에는 MCT 머시닝센터 돌아가는 굉음 속에서 엔드밀 날 부러지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밤에는 추가 잔업 도면의 원점 좌표를 확인하느라 늘 눈이 뻑뻑했습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온 새벽 거실 바닥에서 특선영화로 마주한 이 작품은 제게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불 꺼진 거실에는 낡은 벽걸이 시계 초침 소리와 TV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화면 속에서 사기 전과 10범 형 두식과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은 전직 국가대표 유도선수 동생 두영이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남보다 못한 원수처럼 서로를 밀어내고 으르렁거리는 꼴이 참 기가 찼습니다. 그런데도 채널을 돌리지 못한 건 그 삐딱한 말투 밑에 깔린 서러움이 남일 같지 않아서였습니다. 세상살이가 뜻대로 안 풀려서 독기만 남은 두 인간이 좁은 집 안에서 부딪히는 모습이 묘하게 현실과 닿아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기계 세팅이 엉뚱하게 틀어져서 공차 치수가 완전히 터져버릴 때가 있습니다. 손쓸 틈도 없이 고가의 소재가 불량이 나버리면 현장 바닥에 주저앉아 욕지거리부터 튀어나오곤 합니다. 앞이 캄캄해진 두영의 절망이나 어떻게든 바닥에서 살아남으려고 사기를 치던 두식의 모습이 딱 그 꼴이었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색색거리며 자는 갓난아이 울음소리가 깰까 봐 TV 볼륨을 한 자릿수로 줄여놓고 자막 대신 인물들의 입 모양과 숨소리에 집중했습니다. 묵직한 피로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는데도 잠은 다 달아나 버렸습니다. 리모컨을 쥔 손가락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면서, 영화가 끝을 향해 달릴 때까지 꼼짝없이 소파에 박혀 화면만 응시했습니다.
공장 15년, 두식이 심정이 훤히 보인 이유
직원 대여섯 명 남짓한 작은 공장에서 15년을 굴러먹다 보면 뼈저리게 알게 되는 현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같은 현장 기술자는 몸이 곧 밑천이자 자산이라는 사실입니다. 몸이 성해서 도면 보고 마이크로미터로 치수 맞출 때나 기술자 대접을 받지, 어디 하나 크게 다치거나 고장 나는 순간 공장 바닥에서는 그날로 쓸모를 다한 고철 덩어리 취급을 받습니다. 그래서 영화 중반에 두식이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한부 선고를 들었을 때 그 서늘함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당장 죽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병원 복도에 주저앉아 질질 짜며 슬퍼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두식이 병원을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짓은 눈물을 훔치는 게 아니라, 앞을 못 보는 동생을 세워두고 가스레인지 켜는 법부터 억지로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가 없어지면 밥숟가락 하나 제대로 못 뜰 핏줄 놈을 두고 가야 하는 그 속이 어땠을지 훤히 보였습니다. 냄비 손잡이 위치를 손으로 더듬어 확인시키고, 불이 붙었는지 소리로 듣게 훈련시키는 그 투박한 손짓이 참 아팠습니다. 가장이거나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되면 죽음의 공포보다 내가 사라진 뒤 남겨질 식구들의 끼니 걱정이 먼저 앞서는 법입니다. 그 장면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안방 쪽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문틈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아내와 자는 두 아이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만약 내 몸에 이상이 생겨서 당장 다음 달부터 월급봉투를 못 가져다주면 우리 애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싶었습니다. 대출 이자는 밀려올 테고, 애들 학원비에 기저귀 값은 어디서 메꿔야 하나 하는 서늘한 걱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두식은 동생에게 약한 척 한번 안 하고 욕을 섞어가며 혼자 걷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다정하게 말해줄 시간도 없고 포장할 여유도 없었던 겁니다. 내가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치수 공차 0.005밀리미터 틀렸다고 모질게 소리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현장에서는 한순간 방심이 공구 파손이나 손가락 부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독하게 굴 수밖에 없는데, 두식이 동생을 대하는 방식이 딱 그 절박한 공장 바닥의 호통과 같았습니다.
새벽 2시 40분, 문손잡이 잡고 달라진 것들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벽시계를 보니 새벽 2시 40분이었습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안방으로 들어가려다 문손잡이를 손에 쥔 채 한참 동안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굳은살이 박이고 쇳가루 냄새가 배어있는 이 손으로 내가 앞으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날 밤을 기점으로 제 일상에는 작은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조금만 칭얼거리거나 서툴게 굴면 답답해서 숟가락도 직접 쥐여주고 옷도 다 입혀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신발 끈이 풀려 넘어지더라도 혼자 묶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게 됐습니다. 세상이라는 거친 현장에서 내가 언제까지나 곁에서 도면을 대신 그려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셈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태도도 완전히 뜯어고쳤습니다. 예전에는 날카로운 가공품 모서리에 손가락이 베여 피가 나도 대충 절삭유 묻은 면장갑으로 쓱 문지르고 종이 테이프나 둘둘 감아서 넘기곤 했습니다. 납기가 촉박하다는 핑계로 인터록 안전문을 강제로 열어두고 회전축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던 미련한 짓도 싹 그만두었습니다. 귀찮더라도 반드시 보안경을 챙겨 쓰고 정해진 작업 수칙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다치면 단순한 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집 지붕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가장의 생존과 건강이야말로 아이들이 세상에 홀로 서기 전까지 만들어줄 수 있는 가장 크고 단단한 방파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기름 냄새 자욱한 현장으로 출근하면서 안전모 턱끈을 한 번 더 바짝 조여 맵니다. 어제 짠 가공 프로그램 지코드(G-code)에 행여 실수가 없는지 두 번 세 번 모니터를 살피고, 납기 일정에 쫓기더라도 고속 회전하는 스핀들 앞에서는 절대로 서두르지 않습니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이 거친 현장에서 무사히 하루를 버텨내고 온전한 두 발로 퇴근해 아이들의 방 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묵묵히 지켜내야 할 가장 중요한 공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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