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분의 1밀리미터의 단차도 장갑을 벗고 맨손 지문으로 슥 문질러보면 귀신같이 걸립니다. 마이크로미터나 버니어캘리퍼스를 들이대기 전에 이미 살갗 끝에서 먼저 신호가 옵니다. 눈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미세한 턱이 손가락 지문 선 사이에 딱 걸리는 그 찰나의 이물감이 있습니다. 제가 이 지독한 손끝 감각을 온몸으로 체득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려면 2016년 유난히도 무더웠던 그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기름 냄새와 뜨겁게 달아오른 절삭유 연기가 공장 천장에 꽉 차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나우 유 씨 미 2, 공돌이 눈에 보인 것
그해 7월, 믿었던 1차 벤더 거래처 하나가 최종 부도 처리를 맞았습니다. 서류상으로 묶여버린 외상 매출 채권이 3천만 원이었습니다. 원자재 대금 결제일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집에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기저귀를 차던 첫째와 갓 백일을 넘긴 둘째가 있었습니다. 채권단 집회에 쫓아다니며 넋이 나간 채로 서류를 들고 뛰어봤지만 법원에서 최종 배당 통지서로 날아온 금액은 고작 420만 원이었습니다. 진짜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은행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아파트 담보대출 원리금 출금 문자가 휴대폰 화면에 뜰 때마다 심장이 아래로 쿵 떨어졌습니다. 분유통 바닥이 보이고 마트에서 기저귀 한 팩 집어 드는 손이 떨릴 정도였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도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고 앉아 밥도 제대로 뜨지 못했습니다. 그런 꼴을 며칠 말없이 지켜보던 아내가 주말 저녁에 애들을 처가에 맡겨두고는 제 손을 억지로 잡아끌어 동네 작은 극장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예매 창구에서 골라 앉은 영화가 바로 '나우 유 씨 미 2'였습니다. 영화는 화려한 마술 사기단이 나와서 세계를 무대로 사기를 치는 케이퍼 무비였습니다. 극장 안 사람들은 배우들의 현란한 입담에 웃고 떠들었지만, 제 눈에는 스크린의 화려한 색감 뒤편으로 낯익은 기술자의 움직임이 먼저 보였습니다. 특히 침투한 연구소 보안 검색대에서 손바닥만 한 데이터 칩 카드를 몸수색 요원들 몰래 빼돌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네 명의 주인공이 손목 스냅과 손가락 마디 각도를 비틀어가며 카드를 서로에게 튕겨 날리고, 등 뒤로 숨기고, 살갗에 붙여가며 넘겨주는 그 긴박한 시퀀스였습니다. 남들은 신기한 마술 쇼를 본다고 감탄했겠지만, 제 눈에는 그들의 손가락 관절 꺾임과 지문 끝의 미세한 떨림만 보였습니다. 저건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었습니다. 손가락 신경 세포 하나하나를 물리적으로 길들여놓지 않고는 절대 안 나오는 기술이었습니다. 0.01밀리미터 공차를 잡으려고 머시닝센터 베드 위에서 마이크로미터 스핀들을 미세하게 돌릴 때의 그 손맛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극장 어둠 속에서 무릎 위에 얹어둔 제 거친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절삭유에 절어 거뭇해진 손톱 밑, 칩에 찔려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인 손바닥을 천천히 쥐었다 폈습니다. 사기꾼이든 마술사든 쇠를 깎는 공돌이든, 결국 자기 손끝의 감각을 극한까지 갈고닦은 인간은 바닥을 쳐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스쳤습니다.
형광등 절반 끄고 버틴 6개월
극장을 나와 공장 문을 다시 열었을 때 현실은 변한 게 없었습니다. 통장은 비어 있었고 기계 할부금 청구서는 어김없이 날아왔습니다. 저는 그날부로 공장 천장의 형광등을 절반이나 빼서 불을 끄고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기세를 몇만 원이라도 아껴야 했고, 사무실 에어컨은 아예 코드를 뽑아버렸습니다. 가공기 한 대만 켜두고 불빛이 내려앉는 바이스 주변만 작업등 하나로 밝혔습니다. 다른 공장들이 단가가 안 맞는다며 집어 던진 자투리 일감들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습니다. 개당 가공비가 몇백 원짜리에 불과한 볼트 구멍 가공이나 모따기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가공 프로그램을 짜서 돌리고, 밤에는 기름 묻은 면장갑을 끼고 나와 쏟아지는 부품의 버(Burr)를 줄칼로 일일이 긁어냈습니다. 피로가 극에 달해 서 있는 자리에서 무릎이 꺾일 것 같았지만, 납기 날짜만큼은 단 한 시간도 어기지 않고 정확하게 트럭에 실어 보냈습니다. 아이들 통장에 들어갈 적금과 우유 대금을 맞추기 위해 새벽 2시까지 기계 회전 소리를 들으며 버텼습니다. 몸은 모니터 잔상과 쇳가루 냄새로 절어 있었지만, 기계에서 갓 깎여 나온 부품의 치수를 잴 때만큼은 날을 바짝 세웠습니다. 원청에서 도면에 요구한 공차가 플러스마이너스 100분의 1밀리미터 수준이면, 저는 기를 쓰고 100분의 5밀리미터 이내로 맞춰서 납품했습니다. 단가 몇백 원짜리 허드렛일 부품이라고 해서 대충 깎아 던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검사 성적서에 찍히는 수치들이 바늘구멍처럼 일정하게 유지되자, 까다롭기로 악명 높던 인근 1차 벤더 품질 관리자들 사이에서 조금씩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저 집에 일을 던져주면 도면 치수 가지고 장난치거나 납기 펑크 내는 일은 절대 없다는 신용이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왔습니다.
손에 센서 달렸습니까
그 신용 덕분에 겨울이 시작될 무렵 알루미늄 정밀 항공 브래킷 가공 일감이 들어왔습니다. 두께가 얇고 면적이 넓어 바이스로 세게 물리면 제품이 휘어지고, 느슨하게 물리면 엔드밀이 파고들면서 튕겨 나가는 고난도 형상이었습니다. 두께 공차와 400개 홀의 피치 오차를 1,000분의 2밀리미터 이내로 잡아야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다른 임가공 공장 서너 군데가 제품을 죄다 찌그러뜨려 불량 처리를 내고 두 손 들고 도망친 물량이었습니다. 이걸 살려내지 못하면 우리 공장의 회생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시중에 파는 규격 지그를 쓰는 대신, 퇴근을 미루고 직접 바닥 플레이트를 깎아 제품을 균일한 압력으로 눌러주는 맞춤형 진공 흡착 지그를 짰습니다. 알루미늄이 절삭열을 받아 미세하게 팽창하는 오차까지 감안해서 CAM 툴패스의 절삭 이송 속도를 0.1단위로 쪼갰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오기 반, 절박함 반이었습니다. 사흘 밤낮을 공장 구석에 낚시용 캠핑 의자 하나 펴놓고 뜬눈으로 새웠습니다. 기계 제어반 모니터 수치보다, 공구가 쇠를 긁고 지나갈 때 스핀들 모터에서 울려 퍼지는 미세한 고주파 절삭음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날끝이 0.001밀리미터라도 밀리면 모터 소리의 톤이 반 옥타브 정도 미세하게 탁해지는데,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즉시 피드를 미세 조정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400개의 정밀 홀 가공을 끝낸 첫 완성품을 들고 원청 품질 검사실의 3차원 측정기 위에 올렸습니다. 접촉식 프로브가 삐빅 소리를 내며 제품 구석구석을 수십 번 찍고 지나갔습니다. 한참 동안 모니터 그래프를 넘겨보던 깐깐한 품질팀장이 안경을 벗더니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전 구간 0.002밀리미터 이내 퍼펙트 패스였습니다. 팀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제 손을 쳐다보았습니다. "반장님, 손에 센서 달렸습니까? 도대체 이걸 수동 세팅으로 어떻게 잡아낸 겁니까?" 그 순간 지난 6개월간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생계의 공포와 대출 이자의 압박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공장을 살린 건 거창한 사업 수완이나 원청의 자비가 아니었습니다.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나를 지탱해 준 것은 결국 내 손끝에 남아 있던 정직한 기술과 한 치의 오차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던 묵묵한 노동의 힘이었습니다.
내일 아침도 여느 날처럼 정시에 알람이 울릴 것이고, 저는 다시 낡은 안전화를 신고 공장 작업대로 출근할 것입니다. 내 손으로 직접 깎아낸 정직한 수치만큼 우리 집 아이들의 하루가 단단하게 지켜진다는 사실을 이제는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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