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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름 냄새 지우고 본 탈출, 벼랑 끝 다리를 건너는 아비의 무게

by cow85 2026. 9. 20.

탈주 영화 공식 포스터

극장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짙은 안개가 깔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화면에 바짝 달라붙게 되었습니다. 한 주 내내 공장에서 머리를 싸매던 피로가 한순간에 잊힐 만큼, 시작부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압박감이 꽤나 묵직했습니다. 주말 오후에 혼자 극장 구석 자리에 앉아 팝콘도 없이 스크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꼴이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은 처량해 보였을 겁니다. 이번 주는 유독 가공 치수가 말을 듣지 않아 종일 씨름을 했습니다. 100분의 2밀리미터 공차를 맞추겠다고 엔드밀 물려가며 영점을 잡는데, 원자재 물성이 조금만 튀어도 불량이 쏟아져 나오는 통에 며칠을 야근으로 때웠지요. 퇴근길에 차창을 열어도 바람에서 절삭유 특유의 쇠비린내가 지워지지 않는 것 같아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복잡한 계산도, 납기일 맞추라는 거래처 독촉 전화도 다 끄고 그저 두 시간 동안 멍하니 다른 세상에 처박혀 있고 싶어서 홀린 듯 예매를 누르고 들어온 길이었습니다.

 

탈출 예매, 잔업에 찌든 주말의 선택

처음에는 그저 쿵쾅거리는 소리에 뇌를 맡기고 잡생각이나 시원하게 날려버릴 생각이었습니다. 기름 묻은 작업복을 세탁기에 던져 넣고 대충 걸쳐 입고 나온 옷차림으로 극장에 들어섰지요. 영화 탈출은 초반부터 차들이 뒤엉키고 쇠붙이가 박살 나는 굉음으로 관객의 멱살을 잡고 흔들더군요. 30분 남짓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스크린 안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대혼란과 연쇄 추돌 장면은 확실히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긴박한 소음 속에서 이상하게 엉뚱한 잡생각이 훅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앞에서 철판이 찌그러지고 다리가 흔들리는데, 스크린 속 주인공의 얼굴에서 공장 작업대 앞에 서 있는 제 얼굴이 슬며시 겹쳐 보이더군요. 저 사람은 지금 당장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 상판 위에서 살아남아야 하지만, 나는 월요일 아침이면 다시 돌아가는 스핀들 회전수를 계산하며 불량 없이 물건을 빼내야 합니다. 형태만 다를 뿐이지 도망칠 구석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는 감각만큼은 똑같았습니다. 주인공이 어떻게든 제 새끼를 품에 안고 살려보겠다고 바둥거리는 몸짓을 보면서, 멍청하게 비워두려던 머릿속이 오히려 복잡해졌습니다. 저런 극한의 재난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 같은 보통 아비들은 매일 보이지 않는 다리 위에 서 있는 셈이지요. 다음 달 돌아올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이자에, 첫째 아이 수학 학원비 고지서가 문자로 날아올 때마다 영화 속 안개처럼 사방이 뿌옇게 흐려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국 잡생각을 지우려고 찾아온 극장에서 저는 제 현실을 더 선명하게 마주하고 만 셈이었습니다. 시끄러운 음향 효과 속에서도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 진동이 울리지 않는지 자꾸 허벅지를 만지작거리게 되더군요. 주말에도 가끔 가공기 알람이 떴다며 현장에서 전화가 걸려오곤 하니까요. 긴장감이 극에 달할수록 스크린 속 인물의 거친 숨소리가 제 가쁜 호흡처럼 느껴져서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습니다.

 

스크린 속 다리가 내 다리였다

안갯속에서 부서져 나가는 다리를 보면서, 문득 내가 매일 버티고 있는 이 삶의 무게가 저기 펼쳐져 있구나 싶었습니다. 양옆이 새까만 낭떠러지인 위태로운 다리 위를 어린 두 녀석의 손을 잡고 간신히 건너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더군요. 삐끗해서 발이라도 헛디디면 그대로 끝이라는 걸 알면서도,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 하나 없이 앞만 보고 발을 떼어야 하는 그 처절함이 남일 같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지만 시동도 켜지 않은 채 주차장 어둠 속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계기판의 푸르스름한 불빛조차 켜지 않은 컴컴한 차 안에서, 핸들을 쥐고 있던 거친 손바닥만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굳은살이 박이고 가공 칩에 긁혀 잔상처가 가득한 손이었습니다. 습관처럼 켜본 스마트폰 잠금화면에는 얼마 전 처가 식구들과 놀러 갔을 때 찍은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웃는 얼굴 위에 영화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아이를 감싸 안던 아비의 일그러진 얼굴이 겹쳐 보여서 순간 목이 메어왔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살기 팍팍하고 사방에서 옥죄어와도, 저 녀석들 앞에서는 다 부서진 다리도 튼튼한 철교인 척 웃어 보여야 하는 게 부모라는 자리더군요. 정밀 가공을 할 때 공차 범위를 조금만 벗어나도 그 비싼 특수강 소재는 한순간에 고철 덩어리가 됩니다. 제 인생도 꼭 그런 아슬아슬한 공차 위를 걷는 기분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현장에서 실수 하나를 하거나 공정이 꼬여 납기를 맞추지 못하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우리 네 식구의 밥상으로 번져오니까요. 주차장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숨을 고르며, 나는 과연 저 피투성이 아비만큼 내 식구들을 온몸으로 지켜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순대 떡볶이 1인분, 집으로 달린 이유

주차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동네 어귀에 있는 낡은 분식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대와 떡볶이를 각각 1인분씩 포장해 조수석에 싣고 서둘러 집으로 달렸습니다. 차 안에 달착지근하고 매콤한 냄새가 진하게 퍼져나가는데, 헛헛했던 뱃속과 마음이 그제야 조금씩 채워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 내가 이 맛에 그 지긋지긋하고 위태로운 다리를 매일 건너는 거지 싶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맛있는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은 녀석들이 우르르 뛰어나왔습니다. 이제 제법 컸다고 5학년 녀석은 괜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폼을 잡으면서도, 식탁 위에 비닐 포장지를 뜯을 때는 입꼬리가 씩 올라가는 걸 숨기지 못하더군요. 옆에서 둘째는 떡 하나를 집어먹겠다고 젓가락을 들고 방방 뛰고, 아내는 늦은 시간에 이런 걸 사 왔냐면서도 냄비를 꺼내 국물을 데웠습니다. 그 시끌벅적한 거실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참 여러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 녀석들도 조금만 더 크면 머리가 굵어져서 이제 아빠 손도 안 잡으려 하겠지요. 그때가 되면 내가 건너온 이 험하고 가파른 다리의 높이를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줄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매콤한 떡볶이 양념이나 입가에 잔뜩 묻히고 배부르게 웃어주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 위험하고 서늘한 바깥세상의 무게는 나 혼자 작업복에 묻혀두고 집 문 열고 들어오는 순간만큼은 온전하게 감춰두는 게 가장이 해야 할 몫 같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기름 냄새 밴 점퍼를 벗어 걸어두고, 내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그 아슬아슬한 다리 위로 발을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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