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야간 잔업을 간신히 마치고 집에 들어와 캔맥주 하나 들고 리모컨을 쥐었습니다. 현관문을 조용히 닫고 들어서니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아이들 방 문틈으로 규칙적인 숨소리가 새어 나오고, 아내는 낮 동안 밀린 집안일에 지쳤는지 안방 불을 진작 끄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작업복 바지만 대충 벗어 세탁기 통에 던져 넣고, 씻지도 않은 끈적한 손으로 냉장고에서 라거 한 캔을 꺼냈습니다. 거실 불을 끈 채 텔레비전 푸른 화면만 마주하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웠습니다. 낮 동안 CAD 화면에서 0.005밀리미터 공차 맞추느라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더니, 눈알이 뻑뻑하고 잔상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을 비우고 멍하니 볼 무언가가 절실했습니다.
재난영화가 당기는 밤, 공장 한 주 끝에
쇳가루 날리는 현장에서 한 주를 치열하게 버티고 나면 이상하게 재난 영화가 당깁니다. 깎아내야 할 금속 덩어리와 납기일이 박힌 도면 사이에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거대한 소동극을 보며 뇌를 식히고 싶어집니다. 머리 쓰는 복잡한 드라마나 잔잔한 멜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그냥 화면 안에서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고 건물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며 멍때리고 싶을 뿐입니다. 이번에 튼 영화는 '도쿄 엠이알 난카이 미션'이었습니다. 움직이는 수술실을 갖춘 특수 구급팀이 재난 현장 한가운데로 돌진하는 이야기입니다. 극장판 특유의 화려한 스케일 속에서 터널이 무너지고 흙더미가 쏟아져 내립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넘기며 화면의 폭발음을 배경음악 삼아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초반에는 가벼운 오락거리로 넘겼습니다. 현실의 공장 바닥에서는 안전모 턱끈 하나만 헐거워도 반장한테 소리를 듣는데, 저 위험천만한 붕괴 현장 속으로 방호복 하나 걸치고 뛰어드는 모습이 만화처럼 느껴졌습니다. 비현실적인 영웅들의 활약상을 보면서 주중에 쌓인 피로를 대충 씻어내려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화면 속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고, 무전기 너머로 다급한 비명이 오가기 시작하면서 멍하던 정신이 묘하게 현실로 끌려왔습니다. 저 사람들도 결국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현장에 투입된 월급쟁이이자 실무자일 텐데, 저 자리에서 저런 판단을 내리는 심정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쑥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단순한 눈요기로 보려던 재난 영화가 점차 다른 질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마흔 아비 눈에 걸린 것, 구조 장면 아니었다
마흔을 넘기고 아이 둘 학원비 고지서를 매달 챙기는 아비가 되어 보니, 영화 속 화려한 인명 구조 장면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상부 지휘부에서 당장 위험하니 뒤로 물러서라는 철수 명령 무전을 날리는데, 현장 팀장이 그 무전을 제 손으로 뚝 잘라버리고 고립된 부상자에게 뛰어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남들은 그 순간에 가슴 뜨거운 희생정신이나 영웅적인 결단을 보았겠지만, 제 머릿속에는 엉뚱하게도 대출금 잔액과 가장의 처지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참 속물 같지만, 솔직히 겁부터 났습니다. 저러다 현장에서 잘못되어 불구가 되거나 목숨이라도 잃으면, 집에 남겨진 처자식은 대체 무슨 돈으로 살아가야 하나 싶었습니다. 직장에서 규정 어기고 단독 행동 하다가 사고 터지면 산재 처리는 제대로 나올지, 회사는 과연 끝까지 책임을 져줄지 따위의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이 먼저 돌아갔습니다. 영웅적인 투혼을 보며 박수를 쳐야 할 장면에 차가운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제 모습이 씁쓸했습니다. 가공 불량이 나서 수천만 원짜리 소재를 통째로 날려먹을 위기에 처했을 때, 납기 맞추겠다고 기계 알람을 강제로 풀고 억지로 밀어붙이던 제 과거가 겹쳐 보였습니다. 거래처 담당자에게 고개 숙이며 아쉬운 소리를 넘기고, 사무실 구석에서 단가 계산기를 두들기며 한숨 쉬던 그 초조함이 저 무전기를 꺼버린 팀장의 손끝에서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서 혼자 결정을 짊어져야 하는 사람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첫 캔을 비우고 그냥 잘까 하다가, 무전기를 끄던 그 무거운 침묵의 대사를 보고는 홀린 듯 냉장고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하지만 새로 꺼내온 두 번째 맥주캔은 절반도 채 비우지 못한 채 식탁 위에 우두커니 올려두었습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탄산이 갑자기 까칠하게 느껴졌고, 취기 대신 가장으로서 매일 겪는 생활의 무게감만 입안에 묵직하게 맴돌았습니다.
기름밥 15년, 책임이라는 두 글자의 무게
기름밥을 먹은 지 어느덧 15년이 훌쩍 흘렀습니다. 스물 후반에 현장 바닥에 처음 들어와 칩에 손등을 긁히고 절삭유에 젖어가며 기계를 배웠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마흔 줄에 들어선 두 아이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샤워실 거울 앞에서 손톱 밑에 깊게 박힌 검은 기름때를 솔로 문질러 닦아내다 보면,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어 멍해질 때가 많습니다. 초창기 2년은 시키는 대로 깎고 치우면 그만이었습니다. 사고가 나도 위에서 수습해 줬고, 제 몫의 일만 끝내면 퇴근길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제가 CAM으로 짠 프로그램의 지코드(G-code) 한 줄, 툴 세팅 수치 하나 잘못 들어가면 기계 축이 틀어지고 며칠 치 작업이 한순간에 날아갑니다. 사무실에서 도면을 검토할 때나 현장에서 메인 스핀들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무덤덤하게 서 있지만 속으로는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나이를 먹고 맡은 자리가 무거워질수록 책임이라는 두 글자가 참 무섭다는 생각을 매일 아침 출근길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절감합니다. 내가 무너지면 우리 집 네 식구의 평온한 일상이 그대로 멈춰 선다는 공포가 늘 등 뒤에 붙어 다닙니다. 영화 속 팀장이 무너지는 구조물 밑에서 끝까지 버티며 팀원들을 밖으로 밀어낼 때, 그 사람이 짊어지고 있던 것은 명예가 아니라 오직 자기가 뱉은 말과 자리에 대한 끔찍한 책임감이었을 것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까만 화면 위로 조용히 올라갈 때, 손에 쥐고 있던 빈 맥주캔을 천천히 우그러뜨리며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습니다. 멋지고 숭고한 이야기였지만, 두 번 다시 이 영화를 재생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틀어봤자 영화 속 눈부신 사명감과 제 손에 쥐어진 초라한 계산기, 그리고 팍팍한 영수증을 자꾸 비교하게 될 것 같아 헛헛해질 뿐입니다.
다시 틀지 않을 것 같다, 이유는 한 번 보고 내 자리의 무게감 짚어본 걸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내일도 아침 일찍 일어나 작업복을 챙겨 입고 공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0.00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차가운 기계 앞에 서서, 내 가족의 밥벌이를 위해 또 묵묵히 버텨내야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짊어진 현장이자 삶의 무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