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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1970, 옥탑방 시절과 마흔의 기름때 묻은 삶

by cow85 2026. 9. 29.

강남 1970 영화 공식 포스터

토요일 특근을 마치고 불 꺼진 빈집 문을 열었는데, 멍하니 TV 채널을 돌리다 문득 '강남'이라는 두 글자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가에 가 있고, 집 안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웅웅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작업복 조끼를 대충 벗어 던지고 소파에 주저앉았는데, 어깨죽지부터 허리까지 뻐근한 통증이 묵직하게 밀려왔습니다. 낮 동안 MCT 머시닝센터 서너 대를 동시에 돌리며 소수점 둘째 자리 공차 맞추느라 눈을 혹사시켰더니, 모니터 잔상마저 눈앞에 어른거리더군요. 샤워할 힘도 없어 리모컨 버튼만 무심하게 꾹꾹 누르던 차였습니다. 화면 속에서 시커먼 흙탕물 냄새가 훅 풍겨오는 것 같아 손가락을 멈췄습니다.

 

강남 1970, 채널 돌리다 멈춘 장면

지금이야 평당 수억 원을 호가하며 번쩍이는 빌딩숲이 된 강남이지만, 화면 속 그 시절의 강남은 허허벌판 배추밭에 똥물이 흐르던 시커먼 진흙탕이었습니다. 번쩍이는 외제차가 즐비한 테헤란로의 화려함만 보아온 사람들에게는 낯설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지요. 비가 오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진창길을 걸레 같은 옷을 걸친 사내들이 걷고 있었습니다. 저게 정말 사람이 살던 땅이었나 싶을 정도로 황량하고 비릿한 흙냄새가 브라운관 너머로 전해졌습니다. 제 시선이 완전히 묶인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누더기를 걸친 두 젊은 넝마주이, 종대와 용기가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 구석에서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 하나를 두고 숟가락을 부딪치던 장면이었습니다. 찬바람이 숭숭 들이치는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국물 한 방울까지 허겁지겁 들이켜며 서로를 쳐다보더군요. 그 눈빛에 담긴 허기와 막막함이 어찌나 선명하던지 들고 있던 리모컨을 바닥에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저 둘은 대체 무엇을 위해 저토록 처절하게 진흙탕 바닥을 기어 다니는지 절로 생각이 번졌습니다. 영화는 권력자들의 땅따먹기 복덕방 싸움과 정치 깡패들의 피비린내 나는 칼부림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조직의 꼭두각시가 되어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흉기를 맞대는 모습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지요. 번듯한 양복을 입은 자들은 지도 위에 선을 긋고, 저런 밑바닥 청춘들은 진흙밭에 얼굴을 파묻으며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땅 한 평 없는 놈들이 세상을 뒤집어보겠다고 날뛰는 모습은 무모하다 못해 처연했습니다. 개발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아래 깔려 짓이겨지는 청춘들의 악다구니가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액션 너머로, 진창에서 벗어나 발 디딜 단단한 땅을 찾으려던 그들의 발버둥이 유독 가슴 깊숙이 박혀왔습니다. 기계 소음이 멎은 조용한 거실에서 그렇게 한참 동안 화면을 응시했습니다.

 

비 안 새는 집 한 칸, 스물여덟의 소원

"우리도 비 안 새고 연탄불 안 꺼지는 내 집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종대가 화면 속에서 툭 내뱉은 그 대사가 귓전을 세게 때렸습니다. 거창한 부귀영화도 아니고, 그저 비바람 피하고 한겨울에 얼어 죽지 않을 방 한 칸 갖는 게 소원이라던 그 말이 십수 년 전 제 기억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습니다. 저 역시 스물여덟 무렵, 시흥 공단 바닥에서 첫발을 뗐을 때 똑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3만 원짜리 옥탑방에서 살았습니다. 한 달 뼈 빠지게 기름밥 먹어가며 칩 가루 뒤집어쓰고 손에 쥐는 돈은 고작 12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월세 내고, 공과금 치르고, 시골 부모님께 얼마간 용돈을 부치고 나면 손바닥에 남는 돈은 쥐꼬리만 했습니다. 여름에는 슬레이트 지붕이 달아올라 찜통 같았고, 겨울에는 외풍이 어찌나 심한지 머리맡에 둔 물컵이 꽁꽁 얼어붙곤 했습니다. 가장 비참했던 건 야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밤이었습니다. 차가운 방바닥에 전기장판 하나 겨우 켜놓고, 끓는 물을 부은 육개장 사발면 뚜껑을 덮어둔 채 기다리던 3분이 그렇게 길고 아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퉁퉁 부은 손가락의 굳은살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서러움이 왈칵 치밀었지요. 손톱 밑에 파고든 까만 절삭유 기름때는 비누로 아무리 박박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기계 가공의 '기'자도 모르면서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던 막내 시절이었습니다. 치수 0.05밀리미터 틀렸다고 사수에게 몽키스패너로 조인트 까이던 날에도, 옥탑방 난간에 기대어 담배 한 대 피우며 버텼습니다. 그저 내 이름으로 된 작은 전셋집 하나 얻어서, 연탄불 꺼질 걱정 없이 따뜻한 방에서 두 발 뻗고 자는 게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영화 속 종대와 용기가 냄비를 긁어대던 모습에서, 컵라면 뚜껑을 핥던 제 스물여덟의 초상이 겹쳐 보여 헛헛한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마흔의 진흙탕, 덩치만 커진 무게

그 시절을 지나 어느덧 마흔을 넘겼고, 15년 동안 정밀 가공 현장에서 뼈를 깎으며 버텼습니다. 이제는 현장 바닥에서 칩을 치우는 막내가 아니라, 사무실 모니터 앞에 앉아 3D CAD/CAM으로 복잡한 금형 경로를 짜고 공정을 조율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손톱 밑 기름때는 조금 옅어졌을지 몰라도,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습니다. 몸은 옥탑방에서 빠져나와 그럴듯한 아파트 콘크리트 벽 안에 들어앉았는데, 삶의 체감은 여전히 미끄러운 진흙탕을 구르는 기분입니다. 매달 날아오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 고지서와 두 아이의 학원비 청구서를 보면 머리털이 쭈뼛 섭니다. 거래처 원청에서는 단가를 깎겠다고 매년 숨통을 조여오고, 빡빡한 납기 일정을 맞추지 못하면 거래가 끊긴다는 협박 아닌 압박이 턱밑까지 차오릅니다.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 가공처럼, 제 인생의 가계부도 단 1밀리미터의 틈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공정이 삐끗하면 그대로 곤두박질치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셈이지요. 젊은 날에는 나이 마흔이 넘고 기술이 쌓이면 세상살이가 제법 단단해지고 편안해질 줄 알았습니다.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었습니다. 기계 부품은 공차 범위 내에 정확히 깎아 넣으면 제자리를 찾아 딱 맞물려 돌아가지만, 사람 사는 인생은 아무리 치밀하게 도면을 설계해도 뜻대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원자재 가격은 치솟고 기계 할부금은 끝이 보이지 않으며, 아침마다 눈을 뜨면 지켜내야 할 네 식구의 얼굴이 무겁게 떠오릅니다. 짊어진 무게 덩치만 커졌지, 매달 쉼 없이 기계를 돌려야 우리 가족 머리 위의 지붕을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은 옥탑방 시절이나 지금이나 똑같더군요. 영화 속 주인공들은 칼을 쥐고 진흙탕에서 목숨을 걸었지만, 저는 키보드와 기계 조작판을 잡고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매일 피를 말립니다. 형태만 다를 뿐, 자식들 밥그릇 챙기고 내 터전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현대판 기술직 가장의 하루도 결국 치열한 사투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200에 23만 원짜리 옥탑방에서 아파트 콘크리트 벽 안으로 들어왔을 뿐, 짊어진 무게의 덩치만 커졌지 달라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내일도 아침 7시까지 현장으로 나가 머시닝센터 원점을 잡고 첫 공구를 물려야 합니다. 피곤에 절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들어가, 손에 밴 쇠 냄새를 비누로 씻어내며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눈가는 퀭하지만, 그래도 처가에서 돌아와 내 품에 안길 아이들을 생각하면 다시 공작기계 전원 스위치를 켤 힘을 내야겠지요. 그렇게 또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우리 같은 가장들의 숙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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