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꺼칠한 손으로 자는 아이 작은 발바닥을 한참 동안 쥐고 있었습니다. 절삭유 냄새는 참 질깁니다. 세면대에서 빨랫비누로 손을 빡빡 세 번 문질러 씻어도 쇠 냄새가 손끝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000분의 5밀리미터 공차 맞춘다고 종일 CAD/CAM 화면과 머시닝센터 가공창만 노려봤더니 눈알이 뻑뻑했습니다. 늦은 밤 겨우 신발을 벗고 들어와 거실 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켜놓은 TV 화면에서 영화 파파로티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화면 속 이제훈의 핏대 선 눈빛과 한석규의 덤덤한 표정을 보며 멍하니 굳은살 박인 손바닥만 내려다보았습니다.
파파로티 첫 관람, 맥주 한 캔으로 흘려보낸 밤
이 영화를 처음 만났던 건 몇 해 전 추석 연휴였습니다. 명절 당일에도 가공 라인 세팅 때문에 특근을 뛰었습니다. 파김치가 된 몸으로 소파에 널브러져 캔맥주 하나 땄지요. 채널을 돌리다 킬링타임용으로 무덤덤하게 화면을 넘기다 얻어걸린 영화였습니다. 조폭 생활을 하던 성악 천재 건달과 시골 예고의 까칠한 음악 선생 이야기라더군요. 그냥 뻔한 삼류 설정 같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때는 흔해 빠진 억지 감동 영화 한 편으로 치부했습니다. 성악을 하겠다는 주먹패 녀석이나, 인생 다 산 것처럼 투덜대며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선생이나 현실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 납기 맞춰야 하는 반도체 금형 지그 플레이트 가공 스케줄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남의 집 감동 서사에 신경 쓸 틈도 없던 밤이었습니다. 맥주 캔 바닥이 드러날 즈음 화면 속 주인공은 콩쿠르 무대에 오르고 있었고, 저는 그냥 피식 웃으며 리모컨을 눌렀습니다. 연휴에도 납기 맞추느라 머시닝센터 기계 소음에 귀가 먹먹했던 제 현실과는 너무 먼 딴세상 이야기였습니다. 맥주 한 캔의 알코올 기운과 함께 영화 속 대사들은 머릿속에서 말끔히 날아갔습니다. 내일 새벽 알람 소리나 걱정하며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을 뿐입니다.
네 살 아이 발바닥 쥐던 밤, 두 번째 파파로티
세월이 흘러 첫째 녀석이 네 살이 되던 해,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아이는 퇴근하고 문을 열면 쪼르르 달려와 작업복 바짓가랑이에 얼굴을 부비곤 했습니다. 현장 바닥에 떨어져 있던 미세한 쇳가루라도 묻을까 싶어 얼른 떼어놓고 욕실로 향하곤 했지요. 그날도 잔업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들어왔는데, 거실 바닥에 대자로 엎드려 잠든 녀석의 작은 등허리가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곁에 쪼그려 앉아 아이 등허리를 살살 토닥이며 소리를 줄여둔 TV를 보는데, 공교롭게도 파파로티가 다시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석규가 조폭 보스를 찾아가 무릎을 꿇는 대목이었습니다. 제 손가락을 자를 테니 제자 녀석 하나만 세상 밖으로 온전히 내보내 달라고 사정하더군요. 첫 번째 봤을 때는 영화적인 과장이라 넘겼던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목구멍 안쪽이 턱 막히더군요. 내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바닥까지 내던지는 그 눈빛이 무엇인지,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꺼칠한 손으로 자는 아이 작은 발바닥을 한참 동안 쥐고 있었습니다.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발바닥이 참 보드랍고 따뜻했습니다. 낮에 공장에서 기름때를 묻히고 쇳가루를 마시더라도, 이 아이 앞에서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단단한 벽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화면 속 선생이 왜 그렇게 처절하게 주먹질판에서 녀석을 끄집어내려 했는지, 그 투박한 속내가 가슴에 닿았습니다.
스물넷 막내, 국밥집 뚝배기, 세 번째 파파로티
회사 가공 현장에 스물넷 먹은 막내 녀석이 신입으로 들어왔을 때 일입니다. 공고를 나와 군대까지 마쳤다는데 기가 팍 죽어 있더군요. CAM 툴패스 돌아가는 소리만 나도 흠칫 놀라며 눈치를 살폈습니다. 원점 좌표축 맞춘다고 면장갑을 낀 손을 덜덜 떨며 조작기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스물둘 먹고 기름통 닦던 제 막내 시절이 겹쳐 보였습니다. 치수 틀렸다고 선배들한테 뒤통수 맞아가며 욕을 먹던 서러운 기억이 불쑥 올라왔습니다. 내 자식도 세월이 흘러 스물 몇 살이 되면 남의 일터에서 저렇게 눈칫밥을 먹겠구나 싶더군요. 퇴근길에 어깨가 잔뜩 움츠러든 녀석을 데리고 공장 앞 순대국밥집으로 갔습니다. 아무 말 없이 펄펄 끓는 뚝배기에 순대와 머깃고기를 숟가락 가득 퍼서 녀석의 밥공기 위에 얹어주었습니다. 고개도 못 들고 숟가락질만 바쁘게 놀리는 녀석을 보며 십수 년 전 묻어둔 이야기를 툭 꺼냈습니다. "나도 스물셋에 스핀들 회전수 잘못 먹여서 300만 원짜리 툴 홀더 기계 베드에 그대로 때려 박고 배웠다. 기계는 고치면 그만이니까 겁먹지 마라." 식사를 마치고 편의점 앞 온장고에서 꺼낸 캔커피 두 개를 녀석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쫄지 말고 나와라." 한마디 던지고 돌아서서 걸어가는 녀석의 어둠 속 굽은 등짝을 보았습니다. 내 새끼 밥줄 챙기듯, 이 어린 녀석의 등 뒤도 묵묵히 받쳐줘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날 밤, 머릿속에서 세 번째 파파로티가 떠올랐습니다.
박카스 한 상자, 피식 웃으며 뻐근해진 가슴
그렇게 1년이 흘렀습니다. 구석에서 굳어 있던 막내는 이제 부품 도면을 들고 먼저 다가와 가공 원점과 인서트 팁 옵셋값을 묻는 다부진 녀석이 되었습니다. 공차 100분의 1을 맞췄다며 버니어 캘리퍼스를 들고 제 모니터 옆에서 씩 웃는 녀석을 보는데 속으로 참 대견했습니다. 거친 현장 바닥에서도 밥값을 해내는 기술자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눈에 보였습니다. 어느 날 오후, 잔업 세팅을 준비하고 있는데 녀석이 제 작업대 위에 박카스 한 상자를 툭 올려놓더니 도망치듯 기계실 안으로 튀어가더군요. 노란 박스에서 병 하나를 꺼내 손에 쥐고는 헛웃음이 났지만, 이상하게 목덜미 부근이 뻐근해졌습니다. 그깟 피로회복제가 뭐라고, 녀석이 건넨 마음의 무게가 묵직하게 손바닥을 눌렀습니다. 참, 별일도 다 있습니다. 한석규가 무대 뒤 묵묵히 서 있던 마음이 거창한 게 아니었구나.
남을 위한다는 대단한 사명감이 아니라, 그냥 앞서 걸어간 놈이 제자리에 튼튼하게 버티고 서서 뒤따라오는 녀석이 넘어지지 않게 슬쩍 손을 받쳐준 것뿐이었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에도 납기 독촉 전화가 빗발칠 테고, 기계 소음 가득한 현장에서 온종일 씨름해야 합니다. 그래도 지켜야 할 집안의 아이들이 있고, 현장에서 눈을 빛내는 녀석들이 있기에 저는 내일도 이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현장으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