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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용감한 시민 통쾌한 주먹 뒤에 떠오른 15년 차 정밀가공 가장의 버티는 삶

by cow85 2026. 10. 12.

용감한 시민 영화 공식 포스터

소파에서 "그렇지! 턱 돌아갔다!" 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야간 잔업 마치고 파김치가 돼서 들어온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캔맥주 하나 따서 마시며 영화 '용감한 시민'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튀어나온 소리였습니다. 낮에 공장에서 모니터 들여다보며 3D 캐드 도면 수정하고, 현장 머시닝센터 가공 라인 오가느라 눈알이 뻑뻑했는데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습니다. 온종일 가공 오차 0.005mm 잡는다고 온신경을 곤두세웠더니 어깨가 돌덩이처럼 뭉쳐 있었습니다. 샤워 대충 하고 나와 거실에 반바지 차림으로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신혜선이 닭 가면 뒤집어쓰고 그 싸가지 없는 놈 턱주가리에 주먹을 사정없이 꽂아 넣는 순간, 저절로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습니다. 안방에서 자는 애들 깰까 봐 입술은 틀어막았지만 손아귀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습니다.

 

용감한 시민, 소파에서 주먹 불끈 쥔 이유

영화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주인공은 정교사 자리 하나 얻으려고 온갖 더러운 꼴을 다 참아냅니다. 학교를 제멋대로 쥐고 흔드는 놈이 선을 넘고 난리를 쳐도, 밥줄 잡힌 계약직 처지에서는 고개 숙이고 침묵하는 게 현실입니다. 솔직히 그 비굴한 눈빛을 보는데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나이 먹고 딸린 식구 늘어날수록 억울해도 쥐구멍 찾듯 숨죽여야 하는 순간이 많은데, 꼭 아침마다 작업복 입고 나서는 제 모습 같았습니다. 그러다 옥상하고 골목길에서 주먹 날리며 그 악질 놈을 바닥에 내리꽂을 때는 속이 뻥 뚫렸습니다. 뼈 부러지는 소리 나고 턱에 정타가 꽂힐 때마다 속에 쌓인 체증이 싹 씻겨 내려갔습니다. 복잡한 계산도 없고, 다음 달 카드값 걱정도 없이 오직 잘못한 놈에게 그 자리에서 대가를 치르게 하는 액션이라 통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영화에서나마 저렇게 패주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우리 같은 일개미들한테는 저런 가면도 없고, 올라가서 주먹질할 옥상도 없습니다. 현실에서 저렇게 들이받았다가는 당장 경찰서 유치장으로 직행하고, 합의금 물어주느라 집안 거덜 나기 십상입니다. 가면 벗으면 또 밥줄 쥐고 흔드는 사람들 앞에서 허리 굽신거려야 하는 게 인생입니다. 화면 보면서 박수치고 환호하다가도, 맥주 캔 바닥을 비우고 나면 내일모레 또 공장 나가서 기계 돌려야 하는 내 처지가 불쑥 치고 올라왔습니다. 액션은 시원해서 좋았는데, 거실 형광등 불빛 아래 앉아 있는 내 피로는 너무나 묵직했습니다.

 

0.01mm 공차와 원청 갑질, 달력이 나를 막았다

작년에 반도체 검사장비 부품 가공할 때 머리털 다 빠질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0.01mm 공차 맞춰서 전량 납기일에 실어 보냈더니, 다음 날 아침 원청 품질 쪽에서 조립 안 된다고 공장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도면 펴놓고 삼차원 측정 데이터 대조해 보니 원청 설계자가 기준점을 엉뚱하게 잡아서 넘긴 도면 오류였습니다. 지들 실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담당자 놈은 지 얼굴 붉어지니까 되레 현장 바닥에 제품을 집어던지며 우리 공장 가공 불량이라고 억지를 썼습니다. 20대 현장 막내 시절 같았으면 손에 쥔 몽키스패너 바닥에 집어던지고 멱살부터 잡았을 겁니다.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솟고 주먹이 바들바들 떨려 당장 면상에 한 방 날리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때 공장 벽에 걸린 달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빨간 매직으로 동그라미 쳐진 아파트 중도금 날짜, 바로 밑에 적힌 큰애 학원비랑 둘째 기저귀 값 빠져나가는 날이 선명했습니다. 그 숫자를 보니까 쥐고 있던 스패너를 조용히 기계 선반 위에 내려놓게 되더군요. 여기서 엎어버리면 거래처 날아가고, 당장 다음 달 우리 식구들 통장에 펑크 난다는 계산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쳤습니다. 에휴, 참나. 결국 죄송하다고 허리 굽히고 수정 도면 받아서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 반까지 13시간 반 동안 밤샘 가공을 돌렸습니다. 절삭유 냄새 뒤집어쓰고 쇳가루 튀는 현장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툴 갈아 끼우고 치수를 맞췄습니다. 자존심은 시궁창에 버렸어도, 그 원청 놈들이 내 손끝 기술 하나만큼은 절대 입도 벙긋 못 하게 하겠다는 옹졸한 오기 하나로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15년, 쇠만 깎은 게 아니라 내 모서리도 갈아냈다

공장 처음 들어갔던 20대 초반에는 기름 냄새 풍기는 것도 싫었고 사소한 억울함도 못 견뎠습니다. 쇳밥에 손 베여 피가 철철 나도 안 아픈 척했고, 공구 깨먹고 욕먹으면 혼자 씩씩대며 깡소주로 밤을 채우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성격이 엔드밀 날 끝처럼 날카로워서 세상 부조리한 꼴을 보면 그냥 넘어가질 못했습니다. 결혼하고 애 둘 낳고 나니까 사람이 딴판으로 변했습니다. 내 이름 석 자나 자존심보다 매달 꼬박꼬박 찍히는 급여 명세서가 백배 천배 귀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웃는 낯으로 허리 숙이는 법을 배웠고, 퇴근길 텅 빈 차 안에서 핸들 붙잡고 꺽꺽거리며 울음 삼킨 날도 참 많았습니다. 가만히 지난 15년을 돌아보면 공작기계 위에서 서스 강재나 두랄루민만 깎아낸 게 아니었습니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내 안에 있던 모난 구석들을 모조리 깎아내 버렸습니다. 처자식 다치지 않게 하려고 둥글넓적하게 닳고 닳은 가공품처럼 제 성질머리를 죽여온 세월이었습니다. 원청 사람 앞에서는 실실 웃고, 사무실 들어와서 조용히 피드 값 수정하는 제 손등을 볼 때가 있습니다. 손등 곳곳에 박힌 미세한 쇠가시 흉터들을 만져보면, 그 시절 서슬 퍼렇던 객기는 다 사라지고 묵묵히 버티는 가장의 두꺼운 살가죽만 남았습니다.

 

입학 책가방, 야간특근 2번의 대가

얼마 전 큰애 초등학교 들어간다고 아내가 가방을 하나 사다 놨습니다. 요즘 애들 메는 브랜드 가방이었는데 꽤 비쌌습니다. 아이는 신이 나서 가방 메고 거실을 뱅글뱅글 뛰어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 가방 하나가 내 주말 야간특근 두 번 뛴 대가였고, 현장에서 원청 눈치 보며 자존심 깎아낸 값이었습니다. 내가 흘린 땀과 구겨진 마음이 공중으로 날아간 게 아니었습니다. 저렇게 아이 등 뒤에 걸린 번듯한 책가방으로 남았구나 싶었습니다. 쇳덩이 만지며 겪은 피로와 모욕이, 적어도 집에서는 따뜻한 밥 한 끼로, 아이 어깨 위에서는 새 가방으로 단단하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퇴근길 차 안에서 혼자 우는 짓은 딱 끊었습니다. 나 혼자 서럽다고 핸들 잡고 눈물 질질 짜는 짓거리는 아직 자존심 덜 깎인 놈들이나 부리는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처자식 먹여 살리는 전장에 서 있는 가장에게는 센티해져서 눈물 흘릴 시간도 아깝습니다. 서러운 눈물은 자존심 덜 깎인 놈의 사치였고, 진짜 가장이 되고 나니까 울음 대신 이 악물고 삼키는 헛웃음과 담배 연기만 남게 되더군요.

 

월요일이 되면 저는 또 컴컴한 새벽바람 맞으며 공장으로 차를 몰 것이고, 0.01mm 오차와 씨름하며 기름밥을 먹을 겁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주먹 한 방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내 새끼들 웃는 얼굴 지키기 위해 이 묵직한 기계 소리를 묵묵히 버텨내는 것이 제가 살아가는 진짜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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