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를 끄고 불 꺼진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15년 동안 쇳가루 날리는 공장에서 녹초가 되도록 일하면서도 내가 왜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악착같이 버티는지 그 이유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자정이 훌쩍 넘어 공장 셔터를 내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시계는 벌써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벗어둔 안전화 냄새가 신발장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기름때에 찌든 작업복 바지도 채 갈아입지 못한 채 소파 한구석에 몸을 파묻었습니다. TV 화면이 검게 꺼지자 컴컴한 거실 벽면에 모니터 잔상처럼 푸르스름한 어둠만 멍하니 내려앉더군요. 식구들이 깰까 봐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죽이며 방 안쪽을 바라봅니다. 문틈 사이로 색색거리며 고르게 들려오는 아내와 아이들의 숨소리가 거실 바닥을 타고 묵직하게 전해집니다.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텅 빈 집이었다면, 하루 열두 시간 넘게 기계 굉음 속에 갇혀 있던 제 하루는 그저 시커먼 잿더미에 불과했을 겁니다.
드라큘라 보고 나서, 불 꺼진 거실 새벽 2시
수백 년의 긴 세월 동안 핏빛 저주 속에 갇혀 오직 한 사람만을 기다려온 남자의 이야기를 화면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영화 속 드라큘라는 세상을 등진 채 캄캄한 어둠 속에서 끝없는 고독을 삼키며, 다시 만날 온기 하나만을 바라보고 그 긴 시간을 버텨냅니다. 남들은 그저 스크린 속 환상이나 지독한 로맨스로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작업복 바지를 입은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제 눈에는 전혀 다른 형상으로 다가오더군요. 세상을 다 적으로 돌리면서도 끝내 놓지 못했던 그 지독한 집착이, 매일 아침 출근 카드를 찍으며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를 부여잡고 버티는 내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어릴 적엔 영생이라는 단어가 마냥 대단하고 화려한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마흔을 넘기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보니 알겠습니다. 지켜야 할 존재가 사라진 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삶은 영원한 축복이 아니라 그저 끝나지 않는 형벌일 뿐이지요. 영화 속 남자가 어둠 속을 헤매며 그토록 갈구했던 것은 거창한 권력이 아니라, 돌아갈 수 있는 온기 하나였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5년 동안 절삭유 냄새와 쇳가루가 자욱한 공장 바닥에서 청춘을 다 보냈습니다. 아침마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며 현장으로 향할 수 있었던 힘은 거창한 직업의식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가 쓰러지면 당장 다음 달 날아올 아파트 관리비와 애들 학원비, 대출 통장이 멈춰버린다는 가장의 생존 본능 때문이었지요. 지금 이 시간, 굳게 닫힌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식구들의 평온한 숨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습니다. 그 고요한 숨소리가 제 가슴팍으로 쿵쿵 울려 퍼질 때마다, 오늘 하루 온몸을 짓누르던 피로가 겨우 자리를 잡고 가라앉습니다. 내 피와 뼈를 깎아 바쳐서라도 지켜내고 싶은 내 식구들이 거기에 누워 자고 있습니다.
현장 15년, 지문 절반 닳은 손
소파에 기대앉아 무심코 오른손을 내려다봅니다. 엄지와 검지 안쪽에는 누렇게 박힌 굳은살이 단단하게 뭉쳐 있고, 지문은 절반 가까이 닳아 없어져 스마트폰 화면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태반입니다. 갓 스물다섯 나이에 현장 막내로 들어가 기름걸레를 빨던 손이, 어느덧 15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먹고 이렇게 투박해졌습니다. 참 세월 빠르다 싶더군요. 지금은 사무실에서 CAD/CAM 가공 프로그램을 짜고 모니터로 공정을 시뮬레이션하지만, 결국 마지막 승부는 기계 앞 쇠붙이 위에서 판가름 납니다. 버니어 캘리퍼스와 마이크로미터를 쥐고 0.01mm의 공차를 맞추기 위해 씨름하는 일은 여전히 숨이 턱턱 막힙니다. 머리카락 굵기보다도 훨씬 얇은 그 찰나의 오차 하나로 수백만 원짜리 금형 부품이 한순간에 고철 덩어리로 전락하곤 하지요. 소수점 둘째 자리 숫자 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15년을 살다 보니, 제 몸도 그 차가운 기계 부품처럼 메말라가는 것을 느낍니다. 쇠를 깎아내는 엔드밀 날 끝의 마모도를 가늠하듯,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내 체력과 젊음이 얼마나 깎여 나갔는지를 무덤덤하게 헤아리게 되더군요. 공구는 날이 무뎌지면 새것으로 갈아 끼우면 그만이지만, 가장의 몸뚱이는 교체할 부품조차 없습니다. 닳아버린 내 지문 속에 새겨진 것은 고작 쇠를 깎는 기술 따위가 아니었을 겁니다. 아침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 손을 잡던 아이들의 보드라운 살결과,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하며 한숨짓던 아내의 주름진 손을 단단히 붙잡기 위해 남겨진 흔적입니다. 이 흐릿해진 손끝으로 밥벌이를 해왔고, 그 밥벌이로 우리 네 식구가 비바람을 피하고 살았습니다.
새벽 4시 700만 원, 기름 바닥에 주저앉다
잊히지 않는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오릅니다. 찌는 듯한 8월 폭염 속에서 사흘 연속 철야 작업을 이어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쏟아지던 새벽 4시,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고속 가공기 안에서 초경 엔드밀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가공 축이 틀어지며 테이블을 긁었고, 납기를 코앞에 둔 700만 원짜리 특수강 소재는 단 1초 만에 돌이킬 수 없는 불량품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속이 쓰리고 식은땀이 납니다. 순간 공장 안의 모든 소음이 뚝 끊긴 것처럼 고요해졌습니다. 미끄러운 기름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월급쟁이 기술자에게 700만 원이라는 돈은 몇 달 치 월급이 한 번에 날아가는 아찔한 액수였지요. '다 때려치우고 도망치자', '내일 아침 사표 던지고 어디로든 숨어버리자'는 비겁한 생각들이 턱 끝까지 차올라 목을 죄어왔습니다. 그 비참한 바닥에서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보았습니다. '여보, 너무 무리하지 말고 따뜻한 물 챙겨 마셔요.' 새벽에 잠깐 깬 아내가 보낸 짧은 문자 한 줄이었습니다. 그 글자를 보는 순간, 치밀어 오르던 사표와 비명 같은 도망의 욕망을 목구멍 안쪽으로 꿀꺽 집어삼킬 수밖에 없더군요. 화장실로 뛰어가 얼음장 같은 찬물로 벌게진 얼굴을 몇 번이고 씻어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초라한 사내를 노려보며, 다시 현장 바닥으로 걸어 나와 스패너와 렌치를 손에 쥐었습니다. 예전 사수가 제 뒤통수를 치며 내뱉었던 "네 손끝에 네 식구들 목숨줄이 달려 있다"는 투박한 잔소리가 그날처럼 뼈아프게 박힌 적이 없었습니다. 도망치고 싶었던 그 지옥 같은 새벽에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결국 식구들의 얼굴이었습니다.
포스트잇 한 장, 이불 밑에서 뜬눈으로
그날 아침, 700만 원짜리 대형 사고를 쳤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귀가했습니다. 싱크대 위에는 아침 일찍 출근한 아내가 남겨둔 냄비 하나가 얌전히 놓여 있더군요. 뚜껑을 열어보니 차갑게 식어버린 소고기 뭇국이 담겨 있었고, 냄비 손잡이 옆에는 노란색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야근하느라 고생했어, 밥 꼭 챙겨 먹고 자'라는 메모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차가운 밥통을 열어 식은 국에 밥 반 공기를 억지로 말아 넣는데, 목구멍에 커다란 가시가 걸린 것처럼 도무지 넘어가질 않았습니다. 밖에서 무슨 꼴을 겪고 왔는지도 모른 채 남편 걱정만 하는 그 종이 한 장 앞에서, 숟가락을 쥔 손이 덜덜 떨려왔습니다. 밥상을 대충 치우고 방으로 들어가 깰까 봐 조심스레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 갔습니다. 억지로 두 눈을 감았지만 머릿속에서는 깨진 공구 날과 700만 원이라는 숫자가 맴돌아 도저히 잠이 오지 않더군요. 뜬눈으로 방 천장을 바라보며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동안, 제 안에서 굳은 결심 하나가 차갑게 굳어갔습니다.
이 무거운 건 그냥 내가 혼자 삼키고 현장에 묻어두고 오자. 저 사람들이 발 뻗고 자게 하려고 내가 거기서 기름 밥 먹는 거니까. 거실 벽시계가 새벽 세 시를 알리는 작은 소리를 냅니다. 몇 시간 뒤면 다시 알람이 울릴 것이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쇳가루 냄새 배인 작업복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