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엔 멋있는 블록버스터였는데, 마흔을 넘긴 지금은 내 유서처럼 읽혔습니다. 공장 셔터를 내리고 들어온 깊은 밤, 대충 씻고 나와 멍하니 TV를 켰을 때 화면에 그 영화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몸은 파김치인데 뇌신경은 여전히 CAM 시뮬레이션 선회 궤적을 쫓듯 팽팽하게 곤두서 있던 밤이었습니다. 거실 불을 끈 채 맥주 한 캔 딸 힘도 없어 소파 구석에 몸을 푹 파묻었습니다. 온종일 기계 가동음에 시달린 탓에 귀에서 삐- 소리가 울렸지만, 이상하게 리모컨을 내려놓지 못하고 브루스 윌리스의 거친 얼굴을 끝까지 지켜보게 되더군요.
아마겟돈이 찌른 곳, 현장 기술자의 자존심
주인공 해리가 나사 본부에 불려 가 설계 도면을 집어 던지며 내뱉는 말이 있습니다. 이거 만든 놈 당장 데려오라고, 현장에서 쇠 깎아본 적도 없는 놈이 머리로만 그려놨다고 쏘아붙이는 장면이지요.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멍하던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참 나... 설계실 모니터 앞에만 앉아 있는 사람들이 현장의 물성을 무시할 때 느끼는 그 오랜 답답함을 스크린 너머에서 고스란히 긁어줬기 때문입니다. CAD 화면 속에서는 모든 게 완벽합니다. 3D 모델링 상으로는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오차가 없고, 간섭 체크를 돌려도 간섭 하나 뜨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도면을 들고 머시닝 센터나 복합 CNC에 소재를 물리는 순간부터 터집니다. 도면 수치는 완벽한데 엔드밀을 들이대면 기계 전체가 덜덜 떨리는 채터링이 일어납니다. 공구는 열을 받아 날이 깨져나가고, 절삭유를 아무리 쏟아부어도 표면 조도가 엉망으로 뜯겨나옵니다. 책상머리 계산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쇠의 고집입니다. 저도 스물넷에 기름 범벅이 되며 현장 바닥에서 칩을 치우던 막내 시절이 있었습니다. 도면대로 돌렸는데 공구가 터져서 멍하니 서 있으면, 당시 50대였던 반장님이 다가와 담배 한 대 물고 기계 소리를 가만히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퉁명스럽게 툭 던지셨지요. "야, 회전수 내려. 이 재질은 열 받으면 옆으로 밀린다." 회전수 몇백 RPM 낮추고 피드 값 살짝 손보는 그 손 감각 하나로 버니어 캘리퍼스 공차가 귀신같이 잡히던 기억이 납니다. 기계 가공은 디지털 숫자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공구가 파고들 때 손끝에 전해지는 바닥의 진동, 절삭유 타는 냄새, 칩이 튀는 색깔을 눈으로 확인해야 비로소 쇠가 깎입니다. 영화 속 해리와 그 작업자들은 학벌 좋은 나사 과학자들 앞에서 그 손 감각의 무게를 증명해 냅니다. 책상머리 이론가들이 우주를 구하겠다고 머리를 싸맬 때, 결국 땅을 파고 장비를 돌려 임무를 끝내는 건 기름 냄새 밴 현장 기술자들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가슴을 쳤습니다.
15시간 반, 그날 밤의 몸 상태
그 영화를 다시 본 날, 저는 아침 8시부터 밤 11시 반까지 꼬박 15시간 반 동안 공장 기계 앞에 서 있었습니다. 납기가 코앞으로 닥친 반도체 장비 부품이었는데, 알루미늄 블록 내부 깊숙한 곳을 따내는 공정에서 자꾸만 마이크로 단위 치수가 흔들렸습니다. 사무실에서 NC 코드를 수정해 내려오고, 공구 세팅 다시 잡고, 공작기계 문짝을 수십 번 열고 닫으며 치수를 쟀습니다. 점심때는 뭘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저녁밥은 편의점 빵 하나에 믹스커피 두 개를 종이컵 하나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며 때웠습니다. 기름 묻은 면장갑을 벗기도 귀찮아 대충 턱을 괴고 모니터 코드만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발생하는 페널티와 다음 발주 끊길 걱정이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었으니 배고픈 줄도 몰랐습니다. 밤 11시가 넘어 마지막 검사성적서에 사인을 마치고 공장 셔터를 내렸습니다. 차 운전석에 몸을 구겨 넣고 시동을 거는데, 양쪽 무릎이 달달 떨려 엑셀 페달을 밟는 발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더군요. 하루 종일 시멘트 바닥에 서서 긴장한 탓에 허리부터 종아리까지 뻣뻣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핸들을 쥐고 한참 동안 멍하니 비상깜빡이 소리만 들었습니다. 집에 도착해 번호키를 누르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문을 열었습니다. 자고 있는 아내와 두 아이가 깰까 봐 불도 켜지 않고 샤워실로 기어들어 가 기름 냄새를 씻어냈습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방으로 들어가 누우면 바로 기절할 줄 알았는데, 몸은 부서질 것 같으면서도 팽팽하게 쪼여진 신경줄 때문에 눈이 말똥말똥했습니다. 그렇게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을 때 눈앞에 아마겟돈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겁니다.
가장이 보는 아마겟돈, 내 유서처럼 읽혔다
스물 몇 살 때 비디오 테이프로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그저 신나는 액션 영화였습니다. 우주선이 폭발하고 기관총을 쏘며 소행성을 깨부수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마흔 줄에 접어들어 다시 본 화면에서는 거대한 특수효과 따위는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딸의 미래를 위해 드릴 손잡이를 쥔 늙은 기술자의 핏발 선 눈빛 하나만 보였습니다. 핵폭탄을 수동으로 터뜨리기 위해 소행성에 홀로 남아 딸과 지구 통신으로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는 해리의 모습은 영락없는 가장의 최후였습니다. 자기가 죽더라도 내 자식만큼은 살아갈 세상을 온전하게 남겨주겠다는 그 단순하고 지독한 고집 말입니다... 도망칠 수도 없고 남에게 떠넘길 수도 없는 자리에서, 묵묵히 혼자 짐을 짊어지고 스위치를 쥐는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위험한 기계를 돌리고 납기 압박을 견디는 제 하루도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출 이자와 애들 학원비, 매달 빠져나가는 생활비 계산서를 앞에 두고 있으면 가끔 내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헷갈립니다. 그래도 다음 날 아침이면 기름 냄새 나는 작업복을 다시 챙겨 입습니다. 내가 버텨내야 내 아이들이 따뜻한 방에서 웃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불 꺼진 거실 소파에서 소리도 못 내고 목구멍으로 뜨거운 게 훅 넘어왔습니다
세상은 이 영화를 낡고 요란한 90년대 오락 영화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저한테는 가족을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깎아 넣고 떠난 한 늙은 기술자의 처절한 유서였습니다. 화려한 영웅담이 아니라, 끝끝내 자기가 맡은 자리를 지켜낸 한 가장의 지독한 책임감을 증명한 작품입니다. 이제 거실 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눈을 좀 붙이고 나면 몇 시간 뒤에 또 알람이 울릴 것이고, 저는 다시 셔터를 올리러 가야 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해리가 지구를 지키러 우주로 갔듯, 저도 내일 아침 내 아이들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다시 기계 앞에 서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