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 후 집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차를 몰아 동네 외곽을 빙빙 돌다 혼자 자동차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를 탈 용기가 나지 않는 날이 살다 보면 꼭 한 번씩은 찾아오지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가 달려 나와 매달릴 테고, 아내는 싱크대 앞에서 저녁상을 차리며 피곤한 얼굴로 웃어줄 텐데, 그 얼굴들을 마주 볼 자신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습니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켜면 이번 달 아파트 담보대출 원리금 빠져나갈 날짜와 첫째 아이 학원비 결제 문자가 버젓이 떠 있더군요. 낮 동안 가공 공장에서 겪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2차 벤더로 들어가는 정밀 부품 라인이 원청의 자금난으로 전면 중단되면서, 이번 달 공장 월급이 제때 온전하게 나올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는 대표의 굳은 얼굴을 종일 보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기름때가 묻어 뻣뻣해진 작업복 바지를 그대로 입은 채 운전대를 잡고 멍하니 서 있는데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15년 동안 쇠 깎고 도면 치며 한눈팔지 않고 버텨왔는데, 정작 내 가족 삼시 세끼 책임지는 일조차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게 명치 끝을 짓눌렀습니다. 어디든 도망치고 싶었지만 기름밥 먹는 사십 대 가장이 혼자 갈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명량 보러 간 게 아니었다 — 자동차극장과 캔커피
그날 제가 자동차극장을 찾은 이유는 영화를 감상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동을 켜둔 채 차 안에 틀어박혀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나 쐬면서 딱 두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사람 많은 일반 상영관에 들어가서 콜라를 사고 팝콘을 씹을 마음의 여유 따위는 애초에 없었지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작업복 차림으로 시트를 뒤로 젖힌 채 혼자 있고 싶어 매표소에 만 원짜리 몇 장을 내밀었습니다. 스크린 앞 공터에 차를 대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자 정면에 커다란 배들이 떠 있는 스크린이 보였습니다. 그때 상영관에 걸려 있던 영화가 바로 '명량'이었습니다. 조수석 글로브 박스를 열어 낮에 편의점에서 사둔 캔커피 하나를 꺼내 땄습니다. 미지근해진 캔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는데 입안이 씁쓸하기 짝이 없더군요. 화면 속에서는 조선 수군의 진영이 풍비박산 나고 왜란의 전운이 무겁게 깔리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 십여 분 동안은 영화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눈앞의 스크린 너머로 내일 아침 출근해서 마주해야 할 공장 현장의 멈춰 선 기계들과 마이너스 통장 잔고 숫자만 겹쳐 보였습니다. CAM 화면에서 소수점 셋째 자리 공차 맞추느라 눈이 충혈되도록 씨름하던 일상도, 납품처에서 단가 후려치기를 당하며 고개 숙이던 순간도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자조적인 한숨만 푹푹 나왔습니다. 그런데 차 안의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거친 파도 소리와 절망적인 대사들이 점점 라디오 주파수의 잡음을 뚫고 귓전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임금은 도망치고 백성들은 흩어졌으며, 남은 군사들은 도망칠 궁리만 하는 사방이 꽉 막힌 상황이었습니다. 캔커피 캔을 손에 쥔 채 구겨버리지도 못하고 물끄러미 스크린을 쳐다보았습니다. 화면 속 바다 풍경이 마치 지금 제가 서 있는 현실의 진흙탕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순신 목젖이 파르르 — 영웅이 아니라 벼랑 끝 인간
스크린 속에서 배우 최민식이 연기하는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위인전이나 교과서에서 보던 근엄하고 당당한 구국의 영웅 모습이 아니더군요. 극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온몸을 떨고, 배신과 공포에 질린 부하들을 바라보며 목젖을 파르르 떠는 한 인간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파르르 떨리는 목젖과 핏발 선 눈빛이 차 안의 낡은 스피커를 찢을 듯이 울리며 제 귓바퀴에 그대로 꽂혔습니다. 그 떨림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 벼랑 끝에 내몰린 자가 억지로 삼켜내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부하들이 거북선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는 장면을 묵묵히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데, 가슴속에서 덜컥 무언가 내려앉았습니다. 십수 년 동안 공장에서 일하면서 크고 작은 부도 위기를 겪고, 일감이 끊겨 공장 불이 꺼지던 날들을 버텨냈던 기억들이 단숨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남들은 기술자라고, 베테랑이라고 치켜세워주지만 정작 문제가 터졌을 때 그 책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자리는 언제나 외롭고 서늘한 법이지요. 이순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은 의심하고 부하들은 공포에 질려 칼을 겨누려 드는데, 그 모든 원망과 압박을 홀로 짊어진 채 불타는 거북선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를 영웅으로 본 것이 아니라, 부도 위기를 눈앞에 두고 발을 동동 구르는 중소기업 현장 책임자이자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가장의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피할 곳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는 절대적인 막다른 골목이었습니다. 그 처절한 표정을 보며 저 역시 외면하려 했던 현실의 공포와 정면으로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 '월급이 안 나오면 어쩌지', '아이들 학원을 끊어야 하나', '기계 할부금은 어떻게 메우나' 같은 비겁한 두려움들이 머릿속을 사정없이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도망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스크린 속 장수도, 운전대를 잡고 있는 저도 결국 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자리에서 결판을 내야만 하는 처지였습니다.
대장선 한 척, 왜선 300척 — 그게 내 신세였다
울돌목의 물살이 소용돌이치고 왜선 330척이 바다를 까맣게 뒤덮으며 밀고 들어오는데, 조선의 배는 겨우 열두 척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뒤따라오던 다른 배들은 겁을 집어먹고 아득히 먼 뒤편에 멈춰 서서 관망만 하고 있더군요. 결국 왜군 수백 척의 한가운데로 홀로 나아간 것은 이순신이 탄 대장선 단 한 척이었습니다. 사방에서 적들이 조총을 쏘아대고 갈고리를 던져 배를 기어오르는데, 혼자서 북을 치고 포를 쏘며 버텨내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지독한 고립감이 스크린을 뚫고 좁은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마치 적선 수백 척 한가운데 갇힌 대장선의 모습이 지금 내 처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사장도, 동료도, 거래처도 결국 제 몫의 짐을 대신 져주지 않습니다. 통장에 찍히는 대출금 고지서와 아이들 커가는 소리는 오로지 가장인 저 혼자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조총 탄환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져 혼자 칼을 쥐고 서 있는 꼴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장선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물러서면 그대로 수장될 것을 알기에, 오히려 더 악을 쓰며 대포를 쏘아 올리고 왜선들을 들이받았습니다. 두려움에 질려 주저앉는 대신 그 두려움을 분노와 오기로 바꿔서 쇳덩어리처럼 부딪치는 모습을 보는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미지근해진 캔커피를 쥐고 있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갔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차 문 걸어 잠그고 캔커피나 축내면서 징징대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납기가 밀렸다고 툴툴대고, 원청이 단가를 깎았다고 한탄하며 도망칠 핑계만 찾던 제 자신이 한심해졌습니다. 오기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습니다. 쇠를 깎던 15년 세월 동안 배운 것은 수치가 틀리면 다시 깎고, 공구가 깨지면 새로 갈아 끼워서라도 기어이 도면대로 물건을 뽑아내는 끈기 하나뿐이었습니다.
밤 11시 공장 셔터, 6,500원짜리 100개와 65만 원 봉투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채 다 올라가기도 전에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집이 아니라 제가 일하는 가공 공장으로 핸들을 꺾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 40분을 넘어가고 있더군요. 캄캄하게 불 꺼진 공단 골목으로 들어서서, 굳게 닫혀 있던 우리 공장의 무거운 철제 셔터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위로 걷어 올렸습니다. 작업장 메인 스위치를 올리자 형광등이 깜빡이며 켜졌습니다. 낮에 가공하다 만 알루미늄 블록들이 작업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다른 거래처에서 단가가 너무 짜고 납기가 촉박하다며 다들 손사래를 쳐서 현장 구석에 밀어두었던 임가공 부품 100개짜리 소량 발주 건이 있었습니다. 개당 공임 6,500원짜리. 공구 세팅하고 치수 맞추는 시간에 비해 손이 너무 많이 가서 누구도 손대려 하지 않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에게는 단돈 몇십만 원이라도 당장 내일 아침 손에 쥘 수 있는 확실한 밥줄이었습니다. 작업복 지퍼를 목 끝까지 채워 올리고 MCT 두 대의 전원을 켰습니다. 웅 하는 기계음과 함께 공기 컴프레샤가 묵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맵싸한 절삭유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툴 매거진에 엔드밀과 페이스커터를 물리고 공구 길이를 측정한 뒤 곧바로 가공 프로그램을 전송했습니다. 두 대의 문을 닫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쇠를 깎아내는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절삭유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습니다. 새벽 세 시, 네 시를 지나며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지만 멈출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허리도 끊어질 것 같고 다리도 후들거렸습니다. 그래도 버니어 캘리퍼스와 마이크로미터를 들고 가공되어 나오는 부품들을 일일이 찍어가며 0.02밀리미터 공차를 맞췄습니다. 밤새도록 차가운 바닥 위를 오가며 기름 묻은 장갑으로 공작물을 갈아 끼우고 에어건으로 칩을 털어냈습니다. 새벽의 맹렬한 기계 진동 속에서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통장 잔고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깨끗이 씻겨 나가고, 오직 오차 없이 치수를 뽑아내겠다는 원초적인 집중만 남았습니다. 동이 트고 아침 7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마지막 100번째 부품의 모따기 가공이 끝났습니다. 기름때를 닦아내고 플라스틱 상자에 100개를 가지런히 담아 트럭에 실었습니다. 거래처 가공 납품처 문이 열리자마자 물건을 넘겼고, 검사원이 치수를 확인한 뒤 현장에서 현금 65만 원이 든 흰 봉투를 건네주었습니다. 밤새 뜬눈으로 8시간 동안 기름 튀어가며 기계를 돌려 받아 든 65만 원.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그 얇은 종이 봉투가 밤새 깎아낸 수백 킬로그램짜리 쇳덩어리보다 훨씬 더 묵직하게 손목을 내리눌렀습니다. 어디 도망치지 않고, 남 탓하지 않고, 울돌목 바다에서 혼자 대포 쏘던 심정으로 버텨서 건져 올린 피 같은 내 자존심이자 밥값이었습니다.
세수대야에 찬물을 받아 밤새 찌든 기름때를 씻어내며 거울을 보았습니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턱 밑을 만져보는 손끝에는 다시금 단단한 힘이 들어가 있더군요. 대출 이자가 숨을 조여오고 세상살이가 아무리 거친 파도처럼 밀려든다 한들, 내 손으로 기계를 멈추지 않는 한 이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땀에 절은 작업복을 털어 입고, 몇 시간 뒤 또다시 시작될 정규 작업의 도면을 펼치며 공구대를 정돈했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나는 내 가족의 배를 띄우기 위해 이 자리에서 정밀하게 쇠를 깎아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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