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 한 캔 들고 편하게 틀었다가 납치 장면에서 자세를 고쳐 앉게 된 영화가 있다.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집안이 완전히 고요해진 늦은 밤, 혼자 소파에 편하게 기대앉아 머리도 식히고 가볍게 쉴 겸 OTT 서비스를 켰다. 목록을 이리저리 넘기다 보니 예전부터 포스터로 자주 접했던 <청년경찰>이 눈에 들어왔다. 박서준과 강하늘 두 배우가 경찰대 제복을 입고 유쾌하게 웃고 있는 모습만 보고는, 그냥 머리 비우고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는 전형적인 캠퍼스 버디 코미디물이겠거니 생각했다. 캔맥주 하나 뜯어서 꼴깍꼴깍 넘기며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틀었는데, 영화가 시작하고 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에 들려 있던 맥주캔은 그대로 허공에 멈춰 서고 말았다.
청년경찰, 맥주 한 캔 들고 틀었다가 자세를 고쳐 앉은 순간
영화 <청년경찰>의 전반부 줄거리는 초등학생도 단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무척 유쾌하고 명쾌하게 흘러간다. 몸이 먼저 앞서는 행동파 기준과 책에서 배운 원칙을 따지는 뇌섹남 희열, 서로 성격도 취향도 정반대인 두 청년이 경찰대학교에 입학해 고된 훈련을 받으며 티격태격 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다. 둘은 주말을 맞아 꿀 같은 외박을 나와 여자친구를 만들어 보겠다며 한껏 멋을 부리고 젊음의 거리로 나선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풀리지 않고 씁쓸하게 돌아서던 그 순간, 으슥하고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길을 묻는 척 다가온 낯선 승합차가 앞서 걸어가던 어린 여성을 거칠게 낚아채 납치하는 끔찍한 현장을 정면으로 목격하게 된다. 그 납치 장면이 화면에 펼쳐지는 순간, 나는 시원하게 한 모금 마시려고 맥주캔을 입가에 가져가려던 손을 그대로 공중에 멈춘 채 굳어버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기던 화면 속 분위기가 묵직한 쇠문이 쾅 닫히는 서늘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굉음을 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납치 차량을 바라보는데 정말 숨이 턱 막히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몇 초 동안 맥주캔을 손에 쥔 채 멍하니 굳어 있다가, 기준과 희열 두 청년이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빗길을 미친 듯이 전력 질주하기 시작할 때쯤에야 황급히 캔을 테이블 위에 탁 내려놓았다. 소파에 기대고 있던 허리를 바짝 세워 고쳐 앉은 뒤로는, 캔맥주에 김 빠지는 줄도 모르고 리모컨 쥔 손에 땀을 쥐어가며 화면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B급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난자 불법채취·인신매매를 정면으로
영화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은 포스터의 익살스러운 표정이나 예고편만 보고 그저 가볍게 웃고 넘기는 B급 청춘 버디 코미디 영화겠거니 오해하기 쉽다. 두 주인공이 옥신각신 몸개그를 치거나 유치한 말장난을 주고받는 킬링타임용 개그물이 전부일 거라 넘겨짚는 것이다. 하지만 화면 속 사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드러나는 이야기의 실체는 상상 이상으로 어둡고 잔혹하며 묵직하다. 영화는 가출 청소년들을 유인해 감금한 뒤 난자를 강제로 채취해 불법으로 거래하는 거대한 인신매매 조직의 끔찍한 범죄를 정면으로 다룬다. 기숙사 안에서 컵라면 하나를 두고 유치하게 투닥거리던 철없는 스물두 살 20대 청년들이 눈앞의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자마자 눈빛부터 완전히 180도 돌변한다. 경찰서에 달려가 신고를 해보지만 복잡한 절차와 서류 작업, 인력 부족이라는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되자, 두 청년은 망설이지 않고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직접 빗속을 내달리며 온몸을 내던진다. 가볍게 피식거리며 웃으려고 틀었다가 차가운 현실 범죄의 민낯과 두 청춘의 뜨거운 분노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묵직한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게 되는 반전 매력이 이 영화의 진짜 진가였다.
철문 열리고 10초 넘게 숨도 못 쉬고 굳어 있었다
단서 하나하나를 발로 뛰며 집요하게 추적하던 두 청년이 마침내 범죄 조직의 은밀한 본거지인 산부인과 건물을 찾아내 굳게 잠겨 있던 두꺼운 철문을 힘겹게 열어젖히는 순간, 나는 거실 소파 위에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끼익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리자 그 어둡고 퀴퀴한 밀실 안에는 마취제에 취해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수많은 가출 소녀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 참담한 광경을 두 눈으로 마주한 순간, 장난기 가득했던 두 경찰대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지워지고 분노와 서늘함이 뒤섞인 눈빛으로 변해갔다. 그 표정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턱 막혀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만든 복잡한 행정 절차와 법의 집행이 늦어진다면, 무기도 없고 신분도 학생에 불과하지만 우리 둘이라도 목숨을 걸고 당장 이 아이들을 구해내야 한다는 처절한 절박함이 화면을 뚫고 가슴 깊숙이 전해져 왔다. 철문이 열리고 두 주인공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질 때까지, 족히 10초가 넘는 시간 동안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숨도 못 쉬고 정지 화면처럼 굳어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엔딩 크레딧이 조용히 올라갈 때, 일상에 치여 가슴속 열정과 패기가 식어버린 어른들이 꼭 한 번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차올랐다. 나이가 들고 세상과 타협하며 손익 계산부터 먼저 앞세우게 된 우리들에게, 눈앞에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계산 없이 온몸을 던지는 두 청춘의 직진은 잊고 지내던 순수한 정의감과 가슴 뜨거운 에너지를 다시금 세차게 흔들어 깨워줄 것이다. 늦은 밤 긴장감으로 땀이 뱄던 손을 털어내며, 식어버린 맥주잔을 마저 비우고 내일의 일상을 다시 뜨겁게 마주할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