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날 밤 OTT 목록을 넘기다 틀었다. 온종일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 채 현장에서 일하느라 머릿속은 꽉 차 있었고 온몸의 기운이 턱밑까지 다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머리 쓸 일도 없이 그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소파에 파묻혀 가볍게 웃고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박서준과 아이유의 얼굴이 나란히 걸려 있는 포스터를 보고, 그저 흔하디흔한 킬링타임용 밝은 코믹 영화겠거니 싶어 망설임 없이 리모컨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무심코 시작했던 두 시간의 상영 시간은, 지친 내 마음에 생각지도 못했던 묵직하고 뜨거운 파동을 남기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1. 천근만근 퇴근길, OTT 목록 넘기다 틀었다
영화 <드림>의 줄거리는 초등학생도 단번에 쏙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명확하고 직관적이다. 선수 생활 최대의 위기에 처해 징계를 받게 된 축구선수 홍대가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숙인들로 구성된 홈리스 국가대표팀의 감독 자리를 억지로 맡게 되면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축구공을 제대로 다뤄본 적도 없고 체력도 바닥인 평범하고 사연 많은 사람들이 모여, 헝가리에서 열리는 전 세계 '홈리스 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좌충우돌 훈련에 돌입하는 성장 드라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던 퇴근길 끝에 소파에 누워 가벼운 웃음이나 기대하며 틀었던 영화였지만, 화면이 흐를수록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지는 묵직한 감동이 차올랐다. 공 하나 제대로 차질 못해 발이 꼬이고 잔디밭에 엉덩방아를 찧는 오합지졸 선수들의 어설픈 몸짓들을 지켜보는데, 처음에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어느 순간 그 모습 속에서 매일같이 팍팍한 현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위태롭게 버텨내는 내 모습이 고스란히 겹쳐 보였다. 각자의 벼랑 끝에 서서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내며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는 그들의 투박한 발걸음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 드림 코미디, '발야구도 이렇게 안 해요' 그 엇박자
포스터에 박서준과 아이유라는 두 대세 청춘스타가 나란히 등장하다 보니, 영화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뻔한 청춘 로맨틱 코미디이거나 둘이 티격태격하다 사랑에 빠지는 흔한 연애물이겠지 하고 지레짐작으로 넘겨짚기 딱 좋다. 아니면 불쌍한 노숙인들의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관객의 눈물샘이나 억지로 쥐어짜는 신파 스포츠 영화일 거라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둘 사이의 로맨스는 1도 찾아볼 수 없고 억지 신파와도 아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 넘치는 티키타카가 빛을 발하며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특히 훈련장에서 홍대가 복장 터진다는 표정으로 "아니, 이게 축구예요? 발야구도 이렇게는 안 해요!"라며 핏대를 세우고 쏘아붙일 때,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은 소민이 카메라를 들이밀며 영혼 없는 자본주의 미소로 "서사가 부족해요. 조금 더 불쌍하게 뛰어보세요"라고 능청맞게 받아치는 그 엇박자의 순간은 소파에 누워 있던 나를 단번에 빵 터지게 만들었다. 억지로 감동을 포장하려는 방송의 민낯을 꼬집는 찰진 대사와 배우들의 억울한 리액션이 맞물려, 억지 감정 강요 없이 쉴 새 없이 사람을 웃게 만드는 솔직하고 건강한 웃음이 가득했다.
3. 드림 본선, 10점 차에서 기어코 한 골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 홈리스 월드컵 본선 경기 장면이었다.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거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뻔하디뻔한 스포츠 판타지는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 최강 팀들과 맞붙은 우리 선수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며 점수 차는 10점 넘게 벌어졌고, 온몸이 땀과 흙투성이가 된 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다리가 풀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다. 그렇게 10점 넘게 큰 점수 차로 벌어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기어코 온몸을 내던져 단 한 골을 터뜨리는 그 순간이 내 마음에 훅 들어왔다. 이미 승패는 결정 난 경기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골망을 흔드는 그 찰나에 코끝이 찡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게 되었다. 경기장에서 뒹굴며 피를 흘리고 땀을 쏟아낸 그 누구도 결코 패배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1등이나 승리가 아니더라도, 내 몫의 하루를 어떻게 다시 살아낼 것인가를 담담하게 질문 던지는 영화의 메시지가 가슴을 뭉클하게 채웠다. 세상이 정해놓은 거창한 성공 기준에 맞추지 못해 주눅 들어 있던 내 마음에도 커다란 위안이 번져 나갔다. 오늘 하루 포기하지 않고 내 발로 끝까지 뛰어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았다는 응원을 전해주고 싶었다. 매일 반복되는 고단한 일상 속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 혼자 끙끙 앓으며 버텨내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조용히 이 영화를 틀어주고 싶다. 내일 아침 다시 마주할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당당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지친 하루의 끝을 따뜻한 온기로 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