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자루를 쥐어본 적 없는 평범한 책상물림의 지독한 집념.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난 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바로 이것 하나뿐이었다. 보통 첩보 영화라고 하면 번쩍거리는 최신 무기와 화려한 격투 기술로 무장한 무적의 비밀 요원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영화 <아마추어>는 시작부터 끝까지 그런 뻔한 환상을 단숨에 깨부수며 나를 완전히 스크린 속으로 끌어당겼다.
더 아마추어, 흔한 복수 액션물이 아니다
영화 <아마추어>의 핵심 줄거리는 초등학생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면서도 묵직하다. 주인공 찰리 헬러는 CIA라는 거대한 정보기관에서 일하지만, 총을 쏘거나 현장에 나가는 비밀 요원이 아니다. 매일 사무실 컴퓨터 앞에 얌전히 앉아 복잡한 암호를 해독하고 컴퓨터 코드를 분석하는 지극히 평범한 내근직 기술자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아내가 끔찍한 테러 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만다. 하지만 정부와 상부 조직은 정치적인 이유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테러범들을 잡는 일을 덮으려고만 한다. 아무도 아내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자, 결국 분노한 주인공은 자기가 직접 테러범들을 찾아내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결심하며 현장으로 뛰어든다. 얼핏 '아내를 잃은 남자의 복수극'이라는 한 줄 줄거리만 들으면, 사람들은 "또 흔해 빠진 <존 윅>이나 <테이큰> 같은 킬링타임 복수 액션 영화겠지" 하고 넘겨짚기 십상이다. 주인공이 갑자기 숨겨둔 무술 실력을 발휘해서 악당들을 시원시원하게 때려눕히고 총으로 쓸어버리는 그런 뻔한 영화로 오해하기 딱 좋은 설정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영화를 틀기 전에는 그저 통쾌한 액션이 이어지는 오락물일 거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 쾌감이 아니라 차가운 심리 스릴러에 훨씬 가까웠다. 주인공은 현장 훈련을 전혀 받아본 적이 없어서 달리기도 느리고, 싸움도 못 하며, 총을 쥐는 법조차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현장에서는 완전한 '아마추어' 그 자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평생 컴퓨터 앞에서 갈고닦은 치밀한 정보 수집 능력과 명석한 두뇌를 무기 삼아, 거대한 악당 집단과 자신을 방해하는 조직의 숨통을 한 단계씩 차분하게 조여 들어간다. 평생 칼자루 한번 쥐어본 적 없는 책상물림이 오직 아내를 향한 사랑과 지독한 집념 하나로 판을 뒤흔드는 이 독특한 긴장감은, 그 어떤 화려한 총격전보다도 내 심장을 거세게 뛰게 만들었다.
가장 숨 막혔던 장면, 총 든 손이 덜덜
영화 속 수많은 장면 중에서 내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압도당했던 순간은, 주인공 헬러가 마침내 현장에서 자신의 첫 번째 표적과 단둘이 맞닥뜨려 총을 겨누던 장면이었다. 다른 액션 영화 속 주인공들이라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멋진 자세로 방아쇠를 당겼겠지만, 헬러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처음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눈 그의 손은 눈에 띄게 덜덜 떨리고 있었고, 턱 끝까지 차오른 거친 숨소리는 방 안을 위태롭게 채웠다. 상대방이 한 걸음만 튀어나와도 금방 제압당해 목숨을 잃을 것 같은 허술한 자세였지만, 그 두꺼운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눈빛만큼은 아내를 잃은 슬픔과 분노로 지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떨리는 손과 위태로운 눈빛을 지켜보는데,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면서 서늘한 안타까움이 왈칵 밀려왔다. 원래대로라면 따뜻한 집에서 아내와 저녁을 먹고 모니터 앞의 숫자나 들여다보고 있어야 할 평범한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깊은 절망과 지옥을 건너왔으면 저렇게 손을 덜덜 떨면서까지 살인이라는 끔찍한 현장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멋있어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처절한 절박함 그 자체에 온전히 압도당한 순간이었다. '제발 여기서 무너지지 마라, 다치지 말고 꼭 살아남아라' 하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쥔 채 숨을 죽이고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아마추어 별점, 10점 만점 8.5점 이유
나는 이 영화에 10점 만점에 8.5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깎아낸 1.5점은 온전히 취향과 호불호의 영역이다.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화려한 자동차 추격신이나 시원하게 적들을 쓸어버리는 맨몸 격투 액션을 기대하고 온 관객이라면, 주인공의 조심스럽고 느린 호흡과 정적인 분위기가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움 못 하는 내근직 분석관'이라는 주인공의 치명적인 약점과 어설픔조차,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숨 막히는 서스펜스로 완벽하게 바꿔놓은 연출의 완성도만큼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팽팽한 두뇌 싸움으로 상대를 덫에 빠뜨리는 영리한 전개 덕분에 러닝타임 내내 깊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인물의 절박한 감정과 팽팽한 두뇌 싸움에 깊게 몰입하고 싶은 날이라면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수작이에요. 그래서 나는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 조용히 불 꺼진 방에서 밀도 높은 긴장감과 묵직한 여운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주말 밤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볼 것 같다.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집념이 만들어내는 이 지독한 서스펜스는 오랫동안 내 마음에 짙은 잔상을 남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