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거실 불을 죄다 꺼두고 소파 모서리에 걸터앉아 TV를 켜놓고 있었지요. 시계 바늘은 이미 1시 반을 넘겼고, 온몸은 납기 맞추느라 종일 서 있던 탓에 무거웠습니다. 화면에서는 케이블 채널 영화가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하필 그 타이밍에 눈앞에 걸린 게 어벤져스 엔드게임이었습니다. 낮 동안 머시닝센터 모니터 앞에서 소수점 셋째 자리 공차 맞추느라 눈알이 뻑뻑했습니다. 피로가 가시지 않아 멍하니 캔맥주 하나 비우려던 참이었지요. 머릿속에는 다음 주에 쳐내야 할 알루미늄 임가공 물량과 며칠 뒤 빠져나갈 주택담보대출 이자, 큰애 영어 학원비 고지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낯익은 영화 장면 하나가 피곤에 절어 있던 머릿통을 정통으로 때렸습니다.
엔드게임 세 번, 볼 때마다 꽂힌 지점이 달랐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봤던 건 개봉하던 해 주말이었습니다. 그때는 큰애 손잡고 팝콘 통 안고 들어가서 히어로들 주먹질하고 방패 던지는 화려한 CG 보느라 바빴지요. 공장 일에 찌들어 있던 주말이라 그저 시원하게 때려 부수는 것만으로도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는 오랜만에 돈 아깝지 않게 스트레스 풀었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본 건 2년 전 명절 연휴 끝자락이었습니다. 특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채널을 돌리다 중간부터 우연히 걸렸지요. 그때는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세상이 반토막 나고 남겨진 놈들이 악착같이 버텨내는 그 쓸쓸함이 먼저 보였습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공장에서 쳐내는 도면의 무게가 달라지다 보니, 화면 속 인물들이 짊어진 그 지긋지긋한 책임감이 슬슬 눈에 밟히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혼자 텅 빈 거실에서 세 번째로 이 영화를 마주했습니다. 극장이나 명절 때와는 꽂히는 지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전투 장면이나 타노스의 군대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요. 그저 한 가정을 꾸리고 딸아이를 안고 있던 한 남자의 표정 하나에 시선이 콱 박혀서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화면 속 그 남자의 얼굴을 보는데, 새벽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가장 토니 스타크, '3000만큼 사랑해'가 내 거실로 들어왔다
타노스 핑거스냅 이후 5년이 흐른 시점, 토니 스타크는 숲속 오두막에서 딸 모건을 키우며 살고 있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일행이 찾아와 과거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을 때, 그는 단칼에 거절합니다. 본인은 이미 소중한 가정을 얻었고, 지금 손에 쥔 행복을 단 1퍼센트도 잃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지요. 그 장면에서 토니의 눈빛은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가 아니라, 그저 내 새끼 지키고 싶은 평범한 애비의 눈빛이었습니다. 딸아이를 재우며 모건이 천진난만하게 내뱉는 "3000만큼 사랑해"라는 대사가 거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그 순간 안방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우리 집 두 아이의 숨소리가 그 대사와 묘하게 겹쳐 들어왔지요. 퇴근하고 현관문 열면 아빠 양말 벗기도 전에 달려와 다리에 매달리던 녀석들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손끝이 찡해지면서 TV 화면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었습니다. 토니는 결국 자기가 찾아낸 타임머신 공식을 외면하지 못하고 다시 슈트를 입습니다. 나 하나 편하자고 모른 척하기엔, 두고 온 세상 사람들과 남겨진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대한 부채감이 너무 컸던 탓이지요. 그 서글픈 부채감과 도망칠 수 없는 가장의 숙명이 남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남들은 억만장자의 영웅담을 보겠지만, 제 눈에는 그저 가족 먹여 살리고 지키려고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가장의 등짝으로 보였습니다. 영화를 보며 문득 닥쳐온 생각은 너무나 시렸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쇳가루 날리는 현장으로 내 발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현실이 서늘하게 뼈마디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절삭유 냄새 풍기는 기계 앞이 지긋지긋해도, 매달 찍히는 월급 통장과 아이들의 학원비를 생각하면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발을 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그 무거운 족쇄가, 오늘따라 유독 살갗을 파고들었습니다.
시흥 공단 15년, 굳은살 박인 건 손가락뿐인 줄 알았는데
20대 중반에 기름 묻혀가며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놓은 지 벌써 15년째입니다. 시흥 공단 좁은 공장에서 CNC 머시닝센터 기계 문짝 수천 번을 열고 닫으며 청춘을 다 보냈지요. 매일 퇴근길에 쇠솔로 손을 박박 문질러 닦아도 손톱 밑 기름때는 아무리 씻어도 안 지워집니다. 그 검은 테두리는 어느덧 제 손의 일부가 되었고, 내 식구들 밥줄을 이어준 훈장 같은 흔적이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쇠 깎고 공차 0.01밀리미터와 싸우다 보면 사람이 점점 무뎌집니다. 마흔 넘어 15년 구르면 눈물샘이 메말라버린다고들 하지요. 독한 절삭유 연기를 들이마시고 손등이 쇠 칩에 긁혀 피가 나도 반창고 하나 붙이고 헛웃음 치며 넘기던 나날이었습니다. 세상 어떤 슬픈 영화를 봐도 콧방귀나 뀌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토니가 마지막 순간에 손가락을 튕기고, 아내 페퍼 포츠가 이제 당신은 편히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순간에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소리도 못 내고 굵은 침만 꿀꺽꿀꺽 삼키며 눈시울을 붉혔지요.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목구멍으로 억지로 밀어 넣는 울음이 더 아팠습니다. 가슴속 저 밑바닥에 쌓여 있던 묵직한 돌덩이 같은 게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기계 만지면서 웬만한 충격에는 꿈쩍도 안 하던 속이 그렇게 덜컹거릴 줄은 몰랐습니다. 독하게 버티며 굳은살 박인 건 손가락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 사고 없이 버텨야 한다는 긴장감, 내 손에 달린 처자식의 미래라는 중압감이 가슴 한구석을 딱딱하게 굳혀놓았을 뿐이었습니다. 겉만 단단한 척 굳어 있던 껍질 안쪽은 여전히 두렵고 여린 채로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도어록 삑삑, 번쩍 정신 들었다
들키기 일보 직전, 도어록 삑삑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습니다. 야간 편의점에 잠깐 나갔다 오던 아내가 도어록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였지요. 저는 잽싸게 티슈로 눈가를 훔쳐내고, 소파에 몸을 비스듬히 눕히며 하품을 쩍 했습니다. 그러고는 짐짓 목소리를 깔고 "어, 잠깐 졸았네"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습니다. 집사람한테까지 흔들리는 속내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장이라는 자리가 원래 그런 거잖아요. 내가 삐끗하면 뒤에 있는 식구들이 휘청거릴 걸 아니까, 아무리 새벽에 가슴이 쿵 내려앉아도 아침 7시에는 씻고 작업복을 챙겨 입어야 합니다.
이제 몇 시간 뒤면 또 기계 알람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장 바닥으로 출근도장을 찍으러 갈 겁니다. 그래도 거실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아이들 장난감을 슬쩍 치우며 속으로 조용히 다짐해 봅니다. 내일도 내 자리에서 버텨내자고, 묵묵하게 쇳덩이를 깎아내자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