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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조2, 7만 원 깨져도 가장의 피로를 씻어준 영화

by cow85 2026. 10. 2.

공조2 영화 공식 포스터

추석 연휴 내내 밀린 잔업과 납기 일정에 시달리다 보니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서, 솔직히 극장 의자에 파묻혀 두 시간 푹 잘 생각이었습니다. 명절이라고 남들처럼 온전히 쉬지도 못하고 납기 맞추느라 기름 냄새 풍기며 종일 쇳가루를 뒤집어썼던 터라, 그냥 조용히 눈 좀 붙이고 나올 심산으로 아내와 두 아이 손을 잡고 따라나섰지요. 연휴 직전까지 머시닝센터 가공 공정 잡느라 밤낮으로 기계 소음에 시달렸더니 눈알이 뻑뻑하고 허리도 쑤셔왔습니다. 이런 날에는 집 구석에 누워 시체처럼 잠만 자는 게 상책인데, 명절 연휴라고 잔뜩 기대하는 초등학생 아이들 눈망울을 모른 척할 수는 없더군요. 어두컴컴한 상영관에 불이 꺼지고 화면이 켜질 때까지만 해도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화면 한가운데 유해진의 땀에 전 얼굴이 큼지막하게 잡히는 순간, 이상하게도 눈이 번쩍 뜨이면서 졸음이 싹 달아나 버렸습니다.

 

추석 연휴, 극장서 잘 생각이었다

모니터 앞에서 CAD/CAM 툴패스 선을 하루 종일 긋다가 현장 기계 소음에 귀가 먹먹해진 상태로 극장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면 속 강진태가 북한 형사 림철령과 다시 엮이면서 어떻게든 수사 지원금을 더 뜯어내려 하고, 보너스를 타서 가족들 챙기려는 모습을 보는데 남일 같지가 않더군요. 회사에서 연휴 직전 겨우 쥐여준 떡값 봉투를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쪼개보던 제 모습이 그대로 겹쳐 보였습니다. 현빈이나 다니엘 헤니 같은 인물들이야 스크린 속 멋진 그림일 뿐이지만, 그 사이에서 땀 뻘뻘 흘리며 치이고 구르는 유해진의 몸짓은 묘하게 현실감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특수 임무니 국제 공조니 떠들어도, 결국 저 양반 속셈도 위험수당 챙겨서 식구들 고기 먹이고 집안 대출이자 보태려는 게 전부 아니겠습니까. 소수점 세 자리 공차 맞추느라 신경 곤두세우며 일하다가도 월급날 통장 찍히는 숫자 하나만 보며 버티는 제 처지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던지는 유치찬란한 슬랩스틱이나 뻔한 말장난에도 굳이 재거나 따지지 않고 마음 놓고 껄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분석하러 온 평론가도 아니고, 고단한 명절에 머리 비우러 온 입장에서 진태의 억울한 표정 하나하나가 어찌나 속을 후련하게 긁어주던지요. 방탄조끼 하나 제대로 못 챙겨 입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입으로는 가족들 밥벌이 챙기는 핑계를 쉼 없이 대는 모양새가 참 안쓰러우면서도 정이 갔습니다. 멋들어지게 폼 잡는 주인공들 뒤에서 혼자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모습도 공장 현장의 우리네 일상과 똑같아 보였습니다. 위에서는 납기 일정 쪼아대고 밑에서는 기계 치수 틀어졌다고 아우성칠 때 중간에서 어떻게든 조율해 내는 현장 반장 모습이 딱 저렇지요. 나처럼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어떻게든 밖에서 비비적대고 발버둥 치는 놈이 화면 안에도 또 하나 있구나 싶으니 속이 다 뻥 뚫렸습니다. 거창한 명분이나 대단한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처자식 얼굴 떠올리며 위험한 현장으로 억지걸음을 떼는 그 모습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지요. 그 투박한 버팀목 하나로 온 가족이 굴러가는 것이 세상 가장들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팝콘값이 구내식당 밥값보다 비쌌다

극장 로비 매표기에서 팝콘 라지 한 통에 탄산음료 두 잔 묶인 콤보를 결제하는데 만이천 원이 훌쩍 찍히더군요. 공장 구내식당 한 끼 밥값보다 훨씬 비싼 옥수수 튀김 가격을 보면서 속으로 '아이고, 팝콘 기름값이 절삭유보다 비싸네' 소리가 절로 나오며 헛웃음이 샜습니다. 공장에서는 몇십 원 단위 자재비 아끼려고 단가표 들여다보며 실랑이를 벌이는데, 극장 로비에서는 만 원짜리 몇 장이 우습게 빠져나가더군요. 주말 낮 시간대 성인 둘에 아이 둘 표 값 끊고, 거기에 애들 먹일 버터구이 오징어에 음료수까지 몇 개 더 쥐여주니 합계가 7만 원을 가뿐히 넘어갔습니다. 두 시간 남짓 앉아 있다 나오는 자리에 공장 기계 돌려서 버는 반나절 일당 가까운 돈이 순식간에 카드 영수증으로 떨어지니 손끝이 찌릿찌릿하더군요. 매달 고정으로 빠져나가는 주택담보대출 이자랑 두 아이 학원비 날짜가 머릿속에서 바코드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요즘 물가가 무섭다 무섭다 해도 온 식구 데리고 극장 나들이 한번 나오는 게 이렇게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리게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기름 묻혀가며 번 돈이라 그런지 만 원짜리 한 장 나갈 때마다 손가락 틈으로 피 같은 일당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지요. 그래도 두 녀석이 영화 시작하기도 전에 팝콘 통을 가운데 두고 손가락을 부지런히 놀리며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걸 보니 마음이 풀렸습니다. 팝콘 알갱이 하나 안 흘리려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워 먹으며 히죽거리는 모습을 보는데 지갑 걱정하던 제 자신이 조금 머쓱해지기도 하더군요. 화면에서 터지는 말도 안 되는 액션 장면마다 아이들이 팝콘을 입에 문 채 의자 손잡이를 꽉 잡고 깔깔대고 웃는데, 7만 원 넘게 긁힌 영수증 생각은 어느샌가 머릿속에서 싹 지워졌지요. 밥 숟가락 얹는 것조차 귀찮을 만큼 지쳐 있던 명절이었는데, 애들 입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공조2 아니었으면 '생돈 7만 원 날렸다' 했을 것

솔직히 공조2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폼 잡고 난해하거나 늘어지는 영화를 골랐다면 '아까운 생돈 7만 원 그냥 바닥에 버렸다'며 나오는 길 내내 입술이 댓 발은 나왔을 겁니다. 잔뜩 꼬아놓은 예술 영화나 머리 아픈 철학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었으면 아마 상영 시작 20분 만에 코를 골며 잤을 테고, 아이들은 나가자고 칭얼거렸겠지요. 그 7만 원을 그대로 지갑에 아껴뒀다면 관리비 고지서 메꾸는 데 보탰거나, 대출 원리금 갚는 통장에 들어가서 숫자 몇 개 지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요. 아니면 기껏해야 마트 정육 코너에서 애들 먹일 한우 국거리 한 팩 집어 들고 손을 바들바들 떨었을 테고요. 살림살이라는 게 늘 그렇듯 아끼고 쥐어짜 봐야 어디로 스며드는지도 모르게 말라붙는 법입니다. 통장 속에서 매달 연기처럼 사라지는 숫자들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보다, 우리 네 식구가 극장에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 두 시간 동안 아무 걱정 없이 실컷 웃은 기억을 남기는 게 훨씬 남는 장사였습니다. 평소에는 돈 나갈 곳만 계산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통 없었는데, 이런 게 진짜 돈을 값어치 있게 쓰는 법이 아닌가 싶더군요. 초등학교 다니는 큰아이와 작은녀석은 액션 장면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아내는 유해진 특유의 너스레에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진태가 아내 눈치 보며 슬그머니 비상금 숨기려다 들키는 장면에서는 옆자리의 집사람도 저를 힐끔 쳐다보며 키득거리더군요. 네 식구 중에 누구 하나 구석에서 소외되거나 지루해하지 않고, 각자 자기 몫의 웃음을 양손 가득 챙겨서 극장 문을 나섰으니 참으로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손톱 밑에 새까만 쇳가루 묻혀가며 공차 100분의 1밀리미터 맞추느라 매일 기계 앞에서 버텨온 세월이, 결국 내 식구들의 이런 평범하고 시시콜콜한 하루를 지켜내기 위한 거였구나 싶으니 손에 밴 기름 냄새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더군요. 번지르르한 성공이나 거창한 출세는 못 했어도 처자식 극장에 데려와 팝콘 한 통 쥐여주고 실컷 웃게 해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지 않겠습니까.

 

상영관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아내가 슬그머니 팔짱을 끼며 "오랜만에 진짜 재미있게 웃었네" 하고 말끝을 맺더군요. 그 무심한 말 한마디가 가슴에 툭 닿는 순간, 연휴 내내 온몸을 짓누르던 며칠 치 특근 피로가 그 자리에서 다 녹아내렸습니다. 내일부터는 또 기름 냄새 자욱한 현장으로 출근해 굉음 속에서 묵묵히 툴패스를 깎아내야 하겠지만, 다시 한동안은 기운 차게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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