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덜미가 서늘해지면서, 바닥 모를 깊은 물속에 발이 푹 빠진 것처럼 섬뜩했습니다. 공장에서 잔업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깊은 밤, 멍하니 OTT 화면을 넘기다 우연히 마주친 영화가 바로 이 '데인저러스 애니멀스'였습니다. 하루 종일 쇠 깎는 기계 소음과 0.01밀리미터 공차 맞추느라 곤두섰던 신경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손끝에는 여전히 절삭유 특유의 쇠비린내가 남아 있었고, 작업화 밑창에 눌려 욱신거리던 발바닥 통증도 그대로였지요. 그저 복잡한 머리나 잠시 식힐 요량으로 아무 생각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피로에 절어 흐리멍덩했던 시야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날카롭게 굳어버렸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캔맥주 반 캔도 비우기 전에 꾸벅꾸벅 졸았을 텐데,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할 만치 차가운 공기에 졸음이 싹 달아나더군요. 도저히 중간에 끌 수가 없었습니다.
데인저러스 애니멀스, 진짜 맹수는 삼각대 앞에 있었다
영화 초반부만 해도 흔하디흔한 바다 식인 상어 공포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붉은 피가 번지는 망망대해를 보면서 머리털이 쭈뼛 서게 만든 것은 수면 아래를 맴도는 지느러미가 아니었습니다. 굶주린 짐승은 배를 채우려는 자연의 본능대로 움직일 뿐이지만, 삼각대 뒤에 버티고 선 인간은 오직 비틀린 악의 하나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극 중 살인마 터커는 배 한구석에 능숙하게 캠코더 삼각대를 세워 고정합니다. 그러고는 바다에 피 밑밥을 들이부어 굶주린 상어 떼를 잔뜩 모은 뒤, 붙잡힌 여자를 천천히 도르래로 내려보냅니다. 사람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더군요. 마치 기계 공정에서 세팅된 수치대로 재료를 밀어 넣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 차분한 손놀림이 화면을 보는 내내 끔찍하게 다가왔습니다. 정작 소름이 돋았던 지점은 그 인간의 표정이었습니다. 사람이 참혹하게 희생되는 현장을 눈앞에 두고도, 주말 낚시터에서 손맛을 기록하는 사람처럼 태연하고 은근히 들떠 있었습니다. 눈앞의 대상이 살아 숨 쉬며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자각 자체가 완전히 지워진 눈빛이었습니다. 기계 도면을 볼 때 오차 없이 맞아떨어지는 치수만 확인하듯, 오직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렌즈에 담는 것에만 몰두해 있더군요. 더 기가 막힌 장면은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거친 몸싸움 도중에 손에 쥐고 있던 캠코더가 바다에 빠져버리자, 터커는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카메라가 망가진 것에 눈이 뒤집힙니다. 배 위에 홀로 남겨진 피해자의 목숨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새 장비를 사 오겠다며 육지로 훌쩍 배를 몰고 떠나버리지요.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는데 헛웃음이 다 나왔습니다. 쇠붙이나 기계는 고장 나면 부품을 갈아 끼우면 그만이지만, 사람 목숨을 기계 부속품보다 못하게 취급하는 그 서늘한 광기가 가슴을 턱 막히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포식자는 바닷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멀쩡한 얼굴로 숨어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새벽 1시, 이어폰·캔맥주로 혼자 본 이유
거실 불을 전부 끄고 작은 컴퓨터 방에 조용히 들어앉았습니다. 안방에서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이 깰까 봐 방문을 조심스레 닫고 귀에는 이어폰을 바짝 꽂았지요. 책상 위에는 편의점에서 사 온 차가운 캔맥주 하나가 놓여 있었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하루 종일 도면과 가공 프로그램을 붙잡고 씨름하느라 모니터 잔상에 눈이 뻑뻑했는데도 시선을 돌릴 수가 없더군요. 사방이 고요한 새벽 1시, 불빛이라곤 27인치 모니터 화면 하나뿐인 좁은 방에서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게 되었습니다. 절망적인 바다 한가운데에 고립된 주인공의 거친 숨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고막을 직접 때리는데, 그 서슬 퍼런 긴장감에 온몸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현장에서 납기일 며칠 안 남기고 불량 사고가 터졌을 때 엄습하는 압박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원초적인 공포였습니다. 특히 배 위에 묶여 있던 주인공이 탈출하기 위해 제 손뼈가 망가지는 고통을 감수하며 처절하게 결박을 풀어내는 대목에서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살갗이 찢기고 관절이 꺾이는 고통보다 어떻게든 살아서 이 지옥을 벗어나겠다는 집념이 앞선 그 순간을 보는데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오더군요. 현장 일을 하다 보면 드릴 날이나 엔드밀 모서리에 손가락 한마디만 살짝 스쳐도 하루 종일 욱신거려 공구를 쥐기 힘듭니다. 그런데 벼랑 끝에 몰린 인간이 제 몸을 스스로 내던지며 버텨내는 모습은 독하다 못해 눈물겨울 정도였습니다. 그 질긴 생명력을 숨죽여 지켜보느라, 차갑게 식어버린 맥주캔을 쥔 손이 한참 동안 허공에 멈춰 있었습니다.
별 넷엔 텁텁, 두 개론 아깝다 — 3점짜리 영화
이 영화에 점수를 매긴다면 5점 만점에 딱 3점을 주고 싶습니다. 기승전결의 이음새나 연출의 세밀함을 따져보면 웰메이드 수작이라 치켜세우기는 어렵고, 군데군데 투박하고 거친 티가 역력한 B급 생존극에 가깝습니다. 별 네 개를 선뜻 주기에는 보고 난 뒤 입안에 남는 뒷맛이 너무 텁텁하고 불쾌합니다. 살인마의 맹목적인 악의가 주는 찝찝함이 쉽게 가시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별 두 개짜리로 깎아내리기에는, 그 밑바닥 절망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던 주인공의 처절한 생명력이 가슴에 너무 묵직하게 걸립니다. 딱 3점, 거칠고 투박하지만 보는 사람의 숨통을 바짝 죄어오는 힘 하나만큼은 확실한 영화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까만 화면 위로 조용히 올라갈 때, 모니터 앞에 털썩 기댄 채 낡은 작업복 바지를 손으로 쥐어뜯으며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 속 핏빛 바다와 지독한 살의의 잔상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어 놓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더군요. 기계는 입력한 수치대로 정직하게 깎여 나가지만, 사람이 품은 마음이나 세상일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균열투성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한순간에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그런 악의가 현실 어딘가에도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영화 끝나고 애들 자는 방 문 열어보고서야 차갑게 얼어붙었던 가슴이 겨우 제자리로 내려앉았습니다. 피 칠갑된 잔혹한 장면이나 밑도 끝도 없는 악의에 거부감이 큰 분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지만, 피로에 찌든 깊은 밤 날 선 긴장감으로 멍한 머릿속을 단번에 깨우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쯤 불 끄고 볼 만합니다. 이제 미지근해진 맥주 캔을 분리수거함에 버리고 조용히 자리에 누워야겠습니다. 내일 아침도 어김없이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 내 손으로 지켜내야 할 가족들을 위해 기름 냄새 나는 현장으로 씩씩하게 출근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