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네 살, 나는 오십 먹은 반장 멱살을 잡았습니다. 머리통에서 김이 펄펄 나던 시절이었고, 세상이 온통 나를 짓밟으려고 작정한 줄만 알았습니다. 야간 잔업을 마치고 퀭한 눈으로 거실 소파에 앉았는데,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웬 괴팍한 늙은 선생 하나가 눈에 밟혔습니다. 영화 '바튼 아카데미'의 폴 선생이었습니다. 사시가 있는 한쪽 눈에 몸에선 생선 비린내가 난다며 기숙학교 아이들에게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양반입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집에 가지 못한 문제아 녀석 하나와 텅 빈 학교에 덩그러니 남겨진 꼴을 보는데, 씻지도 못한 채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제 몸뚱이가 슬그머니 굳어졌습니다. 내일도 아침 일곱 시 반까지 출근해 공차 100분의 2밀리미터짜리 가공 지그를 맞춰야 하는 고단한 밤이었지만, 리모컨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튼 아카데미, 폴 선생이 남 같지 않던 이유
처음 공장에 발을 들였을 때 저는 세상에서 제가 제일 밑바닥으로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또래 녀석들은 대학 졸업장 쥐고 번듯한 사무실로 출근하는데, 저는 매일 아침 기름 냄새 찌든 작업복으로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그 작업복 꼬락서니가 어찌나 부끄럽고 치욕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퇴근길 지하철에 타면 쇠가루 냄새가 날까 봐 남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면서, 괜히 턱을 바짝 치켜들고 눈에 시퍼런 힘을 주고 다녔습니다. 자격지심이 온몸을 감싸고 있으니 주위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다 비수로 꽂혔습니다. 현장 선배들이 "야, 공구 함부로 굴리지 마라" 하고 툭 던지는 소리에도 속에서는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저 인간이 지금 학벌 없다고 날 무시하나', '공장 바닥이라고 날 개차반으로 보나' 싶어 주먹부터 쥐어대기 일쑤였습니다. 속박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리던 날들이었습니다. 화면 속에서 온몸에 가시를 잔뜩 세우고 삐딱하게 돌아다니는 털리 녀석을 보는데, 기가 찼습니다. 딱 제 스물네 살 적 꼴통 짓이었으니까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 하나를 주체하지 못해서 툭하면 선을 넘고, 빈정거리고, 어른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그 눈빛이 꼭 그 시절 제 모습 같았습니다. 어른이 조금만 다가오려 해도 도망치거나 물어뜯을 준비부터 하는 녀석의 뾰족한 태도가 남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런 털리를 억지로 꺾으려 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끝끝내 곁에 서 있던 사람이 폴 선생이었습니다. 고집불통에 깐깐하기 이를 데 없어 학생들에게 '벽창호' 소리를 듣는 늙은이였지만, 녀석이 절벽 끝으로 떨어지지 않게 묵묵히 버텨주는 그 무뚝뚝함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제 앞에서 버티고 서 있던 그 시절 현장 반장님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금형 공장 막내, 반장 멱살을 잡던 날
절삭유가 사방으로 튀던 여름날이었습니다. 머시닝 센터 안에서 황삭 공구가 물려 돌아가는데, 세팅값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엔드밀이 바이스를 그대로 들이받았습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공구 날이 산산조각 났고, 기계가 에러를 뿜으며 멈춰 섰습니다. 공정 전체가 올스톱되는 대형 사고였습니다. 기계 소리가 뚝 끊기자 공장 안의 모든 시선이 제 작업대로 쏠렸습니다. 다가온 반장님이 깨진 팁 조각을 집어 들더니 제 면전에 대고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기본도 안 된 놈이 겉멋만 들어서 쇳덩이를 만지냐." 그 한마디가 귓바퀴를 때리는데, 안 그래도 창피해 터질 것 같던 속에서 오기가 폭발했습니다. 순간 이성을 완전히 잃고 반장님 멱살을 거칠게 부여잡았습니다. 손끝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옷깃을 쥐어틀었습니다. 주변 형들이 기겁해서 달려들려는데, 반장님이 손을 들어 형들을 말렸습니다. 그리고는 피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은 채 그 씁쓸한 눈으로 저를 가만히 내려다봤습니다. 분노나 경멸이 아니라, 제 안에서 날뛰는 독기를 다 꿰뚫어 보는 듯한 무겁고 처연한 눈빛이었습니다. "쇠는 거짓말 안 해. 네가 조급하게 들이대면 쇠는 정직하게 터지는 거다." 그 낮고 마른 목소리가 공장 바닥에 뚝 떨어졌습니다. 그 말 한마디를 듣는 순간, 제 손에서 힘이 스르륵 풀려나갔습니다. 부끄러움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쏟아져 내렸습니다. 반장님은 구겨진 옷깃을 대충 털어내더니, 깨진 파편들을 빗자루로 쓸어 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섰습니다.
다음 날 작업대 위 믹스커피 한 잔
그날 밤에는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당장 내일 짐을 싸서 도망쳐야 하나, 공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람들 손가락질을 어떻게 견디나 싶어 식은땀이 났습니다. 당장 통장에 남은 잔고는 몇 푼 없었고, 다음 달 월세 낼 돈도 빠듯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공장 문을 열었습니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작업대 앞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제 작업대 모서리에 노란 맥심 믹스커피 한 잔을 툭 올려두고 지나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종이컵을 들고 고개를 드니, 저만치서 반장님이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뒤돌아 서 있었습니다. 어제 멱살을 잡았던 놈에게 던진 유일한 아침 인사였습니다. 그 달달하고 텁텁한 커피를 한 모금 삼키는데 목구멍이 턱 막혔습니다. 저를 자르지도 않았고, 사과를 강요하지도 않았으며, 어제 일로 면박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평소와 똑같이 기계를 돌리기 위해 장갑을 끼고 있었습니다. 그 무심한 배려가 어설픈 위로보다 몇 곱절은 더 깊숙이 박혀왔습니다. 반장님은 제게 다가와 주머니에서 쇠로 된 측정기 하나를 꺼내 놓았습니다. "마이크로미터 눈금 읽는 법부터 다시 배워. 눈금 제대로 못 읽으면 평생 남 탓만 하다 끝나는 거야." 그날부터 저는 반장님 옆에 붙어서 100분의 1밀리미터를 손끝 감각으로 읽는 법부터 다시 배웠습니다.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던 손에 처음으로 기술이라는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서른둘, 소주 4병과 낡은 버니어캘리퍼스
세월이 흘러 저도 CAM 프로그램을 다루고 제 몫의 공정을 온전히 쳐내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서른둘 가을, 다른 정밀 가공 업체로 이직을 결정하고 반장님과 둘이 허름한 삼겹살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우리는 말없이 소주를 비워냈고, 빈 병이 네 병째 바닥에 굴러다녔습니다. 잔을 채워주던 반장님이 피식 웃으며 제 어깨를 툭 쳤습니다. "김 반장, 참 용케도 사람 됐다." 멱살을 잡고 씩씩거리던 스물네 살의 철부지가 이제는 제법 기술자 티를 내며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견했던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듣는데 지난 세월 공장에서 흘렸던 땀과 서러움이 단번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 반장님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손때가 새까맣게 묻은 일제 미쓰토요 버니어캘리퍼스 하나를 제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눈금이 다 닳아서 희미해진, 자기가 수십 년 동안 쓰던 물건이었습니다. "어디 가서 일하든 치수 속이지 말고, 네 양심대로 깎아라." 그 묵직한 쇠붙이를 받아 쥔 주머니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폴 선생은 학생 털리의 앞날을 위해 스스로 학교를 떠나는 길을 택합니다. 짐가방 하나를 들고 낡은 차에 올라타 떠나가는 그 노인의 뒷모습을 보는데, 저를 떠나보내던 반장님의 거친 손이 겹쳐 보였습니다. 생색 한 번 안 내고 조용히 뒤돌아서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이 먹는다는 게 참 무겁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낡은 버니어캘리퍼스 하나뿐인 주머니, 뱃심은 가득 찼던 그 시절이 지나 이제는 저도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매달 나가는 아파트 대출 원리금에, 둘째 학원비 고지서가 날아올 때마다 어깨가 무겁고 숨이 찰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도 저는 다시 작업복을 챙겨 입고 밀리미터 단위의 오차와 싸우러 현장으로 나갈 것입니다. 내게 부끄럽지 않은 치수를 남기고, 내 아이들에게 떳떳한 가장으로 남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