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움찔거릴 때마다 와이프는 맥주 한 모금 마시며 분장이랑 연출 감탄했다. 주말 밤에 애들 다 재워두고 거실 불을 끈 채 나란히 앉아 [검은 수녀들]을 틀었는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와 와이프의 극과 극 반응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평소에 무서운 영화나 오컬트 장르를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즐겨보는 와이프는 여유롭게 캔맥주를 들이키며 스크린에 빠져들었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폼을 잡고 앉아있던 나는 기괴한 음향과 서늘한 화면 연출이 튀어나올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혼자 진땀을 뺐다.
검은 수녀들 OTT 관람, 애들 재우고 거실 불 끄고
평소에 직장 일로 바쁘고 주말에도 애들 챙기다 보면 극장 시간 맞춰 다녀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주말 밤에 애들을 일찍 재워 방으로 들여보낸 뒤, 거실 불을 싹 끄고 OTT로 와이프와 마주 앉았다. 불 꺼진 거실에서 소리만 살짝 줄여놓고 감상하기 시작했는데, 어두컴컴한 공간 덕분인지 극장 못지않게 숨이 턱 막히는 서늘한 몰입감이 거실 전체를 가득 채웠다. 영화의 줄거리는 초등학생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목표가 확실하고 뚜렷하다. 강력하고 악랄한 악령에 씐 어린 소년 희준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주변의 모든 어른과 종교계마저 위험하다며 소년을 포기하고 외면하려 할 때, 송혜교 배우가 연기한 유니아 수녀가 소년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금지된 구마 의식을 결심한다. 여기에 전여빈 배우가 분한 미카엘라 수녀가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도 유니아 수녀의 곁을 지키며 함께 악령과의 처절한 사투에 뛰어든다. 남성 사제들이 중심이 되던 기존 구마 영화들과 달리, 두 여성 수녀가 온몸을 내던져 아이의 영혼을 구하려 부딪히는 구도가 초반부터 대단한 흡인력을 발휘했다.
아직 본게임도 안 했는데 벌써 쫄았어?
영화가 중반부로 치달으면서 소년 희준의 몸을 장악한 악령의 기괴한 행동들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 관절이 비틀리며 뼈 꺾이는 섬뜩한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고, 조용하던 정적을 깨며 짐승 같은 괴성이 터져 나올 때마다 나는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쑥 뺐다. 내가 움찔거릴 때마다 와이프는 맥주를 홀짝이며 "오, 저 장면 특수분장이랑 조명 연출 기가 막히게 잘 썼다"라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뼈 꺾이는 소리에 놀라 어깨가 굳고 몸을 뒤로 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와이프는 팝콘을 집다 말고 피식 웃으며 "아직 본게임도 안 했는데 벌써 쫄았어?" 하고 짓궂게 놀려댔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때문에 심장이 쿵쾅거리는 건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몇 번 흠흠 내뱉고는 안 놀란 척 팔짱을 단단히 낀 채 진지한 표정으로 버텼다.
검은 수녀들 클라이맥스, 맥주 캔이 배신했다
하지만 안 놀란 척 버티던 나의 허세는 클라이맥스 구마 의식 장면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좁은 방 안에서 불빛이 미친 듯이 점멸하고, 악령이 쇠를 긁는 듯한 저주를 쏟아내다 갑자기 수녀들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드는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손에 쥐고 있던 맥주 캔을 손아귀 힘으로 꽉 찌그러뜨리고 말았다. 조용한 거실에 '딱!' 하는 경쾌한 캔 찌그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내 다리는 소파 위로 바짝 올라가 있었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와이프가 찌그러진 캔과 굳어버린 내 다리를 보더니, 소리 죽여 끅끅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가 끝나고 거실 불을 켜자마자 와이프는 내 찌그러진 맥주 캔부터 가리키며 "혼자 화장실은 갈 수 있겠어? 손잡아 줄까?" 하고 놀려대기 바빴다. 긴장해서 손에 힘이 들어갔을 뿐이라고 구차한 핑계를 댔지만 속으로는 머쓱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영화인데 다 보고 나니 두 수녀의 지독한 신념과 에너지가 가슴속에 진하게 남았다. 단순한 공포를 넘어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어린 생명을 위해 자기 영혼과 목숨까지 내던지며 끝까지 악과 맞서 싸운 두 사람의 눈빛이 대단히 강렬했다. 혼자선 절대 못 보겠지만 와이프가 맥주 들고 오면 또 볼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멋진 이야기였다.
혼자선 절대 못 보겠지만 와이프가 맥주 들고 오면 또 볼 것 같다. 깜짝 놀라며 맥주 캔을 찌그러뜨릴지언정, 두 배우가 뿜어내는 처절한 에너지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구원의 메시지는 다시 보아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 만큼 묵직한 여운을 전해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더위를 날려줄 서늘한 긴장감과 진한 울림을 동시에 느끼고 싶다면 밤에 거실 불을 끄고 꼭 한번 감상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