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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일의 휴가 보고 대구 부모님께 전화 한 통 걸었습니다

by cow85 2026. 11. 6.

3일의 휴가 영화 공식 포스터

영화 끝나고 불 꺼진 거실에 혼자 앉아 대구 부모님 생각이 덜컥 났습니다. 애 둘 재우고 아내도 곯아떨어진 깊은 밤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현장 도면 펼쳐놓고 소수점 둘째 자리 치수 맞추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모니터 꺼진 TV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낮에는 머시닝센터 물림 상태 체크하고 납기 맞추느라 분초를 다투며 살았습니다. 공작기계 돌아가는 쇳소리 속에서는 딴생각이 끼어들 틈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안 조명이 다 꺼지고 정적만 남은 거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으니, 낮 동안 억지로 버티고 있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온몸에 힘이 쑥 빠져나갔습니다.

 

영화 3일의 휴가, 불 꺼진 거실에서

새벽 1시 반, 휴대전화 화면에 어머니 번호를 띄워놓고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통화 버튼을 누르지는 못하고 엄지손가락으로 액정만 연신 껐다 켰다 반복했습니다. 이 늦은 시각에 벨이 울리면 시골 노인네들이 자식한테 무슨 사단이라도 난 줄 알고 경기하듯 놀라실 게 뻔했습니다. 화면에서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이 어두컴컴한 거실 천장을 찔렀습니다. 영화 속 복자는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특별한 휴가를 받아 딸 진주를 보러 내려옵니다. 미국 명문대 교수 노릇을 팽개치고 시골 고향 집으로 내려와 백반을 파는 딸을 지켜보며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릅니다. 산 사람은 죽은 어미를 보지 못하고, 어미는 그저 곁을 맴돌며 딸이 차려내는 음식 냄새만 맡습니다. 그 답답하고 먹먹한 거리를 보고 있자니 제 속이 다 타들어 갔습니다. 진주가 엄마와의 기억이 담긴 무 덮밥을 조리고 만두를 빚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우리 어머니 생각이 겹쳤습니다. 일터에서는 치수 조금만 틀어져도 불량 난다고 난리를 치면서, 정작 나를 낳아준 사람이 나이 먹고 쇠약해지는 건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월에 조금씩 닳아가는 부모님의 시간은 제 머릿속 계산기에서 항상 뒷전이었습니다. 자식 키우며 돈 들어갈 구멍만 계산하느라 바빴습니다. 첫째 학원비에 둘째 유치원비, 다달이 나가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맞추는 게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기름밥 먹기 시작했던 스물다섯 살 현장 바닥 시절부터 지금까지, 앞만 보고 뛰어가느라 고향 집 문풍지 흔들리는 소리에는 귀를 닫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통화 버튼은 누르지 못했습니다. 액정을 바닥 쪽으로 뒤집어 내려놓고 마른세수를 크게 한 번 했습니다. 거실 창밖으로 멀리 아파트 단지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출근길 차 안, 손이 절로 갔다

다음 날 출근길, 지하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고 차 엔진을 예열하는 동안 손이 절로 갔습니다. 계기판 바늘이 제자리를 잡고 엔진 회전수가 안정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습니다. 밤새 머릿속에 맴돌던 어머니 이름을 찾아 통화 버튼을 찔렀습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달칵 소리가 났습니다. "이 아침에 웬일이고? 밥은 묵었나." 어머니의 첫마디는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시계는 아침 7시를 막 넘긴 참이었습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이미 한참 전에 일어나 마당 쓸고 아침상 차려놓으셨을 모습이 훤하게 그려졌습니다. 용건이 뭐냐고 묻지도 않고 자식 뱃속에 밥숟가락 들어갔는지가 첫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그냥 출근길에 생각나서 전화 걸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목소리가 왜 이리 가라앉았냐며 감기 들었냐고 도리어 되물어오시는데 목구멍에 쇠뭉치가 걸린 것처럼 말이 툭 끊겼습니다. 영화에서 진주가 뒤늦게 엄마를 부르며 목 놓아 울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살아있을 때 이렇게 바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게 뭐라고 번호 누르는 게 그리 어려웠나 싶었습니다. 기름 냄새 찌든 작업복 입고 현장 지키던 시절에도, 지금 컴퓨터 화면 앞에서 도면 라인 쪼개고 있는 지금도, 어머니한테 저는 여전히 밥 굶고 다닐까 걱정되는 어린 자식일 뿐이었습니다. 차 안으로 스며드는 찬 공기 속에서 수화기 너머 전해지는 거친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묘한 온기가 명치 끝을 쳤습니다. 조심해서 일하고 밥 챙겨 먹으라는 당부를 끝으로 통화는 1분 만에 끝났습니다. 전화를 끊고 차 핸들에 한동안 이마를 기댄 채 가만히 엎드려 있었습니다. 차 엔진 진동이 이마를 타고 미세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잔업의 피로감 사이로 알 수 없는 서러움 같은 것이 왈칵 밀려왔습니다.

 

5월 대구, 세 시간의 민낯

지난 5월 아버지 칠순 생신 때 대구 내려갔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주말 고속도로에 차가 꽉 막혀 경기도 시흥에서 대구까지 왕복 7~8시간을 꼬박 운전대만 잡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부모님 얼굴 마주 보고 식당에 앉아 밥 먹고 머문 시간은 세 시간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올라와야 다음 날 월요일 새벽 출근에 지장이 없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식당에 가니 어머니는 당신 젓가락질은 멈춘 채 제 앞접시에만 장어 꼬리를 연신 집어 올려주셨습니다. 애비가 공장에서 뼈 빠지게 일하느라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면서, 기름진 생선 토막을 자꾸만 밀어 넣으셨습니다. 정작 당신은 틀니가 불편해 제대로 씹지도 못하면서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빤히 쳐다보셨습니다. 그게 부모 마음인 줄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밥숟가락만 재촉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차 트렁크를 열어보니 김치통 두 개와 볶은 멸치, 사과 한 상자가 이미 빈틈없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식당에서 밥 먹는 사이 아버지가 무릎 삐걱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리며 실어두신 짐이었습니다. 허리 굽은 노인네 둘이서 그 무거운 걸 낑낑대며 차 트렁크에 밀어 넣었을 생각을 하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출발하려는데 두 분 다 낡은 슬리퍼를 끌고 아파트 단지 입구 큰길가까지 따라 나오셨습니다. 날도 더운데 그냥 들어가시라고 창문을 내리고 손사래를 쳤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도로로 합류하며 룸미러와 백미러를 힐끔 보았습니다. 사이드미러 구석에서 차가 완전히 코너를 돌아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 계시던 두 분의 작아진 모습, 그게 벌써 반년 전 일이었습니다. 회사 일할 때는 거래처 납기일 늦으면 큰일 난다고 날을 세우면서, 정작 부모님께 쓰는 시간은 어쩜 그렇게 아깝다는 듯 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일 바쁜 것만 앞세우느라 부모님이 기다려줄 시간은 무한정 남아있는 줄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반년 동안 전화 몇 통 건 게 전부였다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12월엔 하룻밤 자고 올 생각이다

영화 3일의 휴가 마지막 장면을 보며 한 가지는 분명하게 머릿속에 박혔습니다. 세상을 떠난 뒤에 차려내는 산해진미나 제사상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 눈앞에 살아계실 때 따뜻한 국 한 그릇 같이 비우고, 거친 손 한 번 맞잡는 게 진짜라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12월 셋째 주 주말에는 연차 하루 붙여서 무조건 대구 내려가 하룻밤 자고 올 생각입니다. 당일치기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다녀오지 않고, 푹 끓인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 천천히 비워낼 작정입니다. 아버지의 굳은살 박인 손도 가만히 쥐어보고, 어머니 허리 둘레가 얼마나 줄었는지도 찬찬히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공장 일 바쁘다는 핑계, 잔업 물량 밀렸다는 핑계는 대자면 평생 끝이 없습니다. 여유라는 건 내가 애써서 틈을 쪼개 만들지 않으면 평생 안 생기는 거니까요.

 

당장 내일 아침에도 현장 나가면 가공 불량 난 제품들 검사하고 납기 맞추느라 정신없이 치이며 살 겁니다. 그래도 이번 달 달력 셋째 주 토요일 칸에는 굵은 매직으로 대구 가는 날이라고 단단하게 표시해 두었습니다. 기계 도면보다 부모님 얼굴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게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정밀하게 지켜내야 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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