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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스토리, 잔업 끝 지하 주차장에서 멍하니 마주한 23번의 싸움

by cow85 2026. 11. 5.

허스토리 영화 공식 포스터

새벽 1시가 훌쩍 넘은 시각,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작업복에 밴 쇳가루와 절삭유 냄새를 맡으며 홀로 운전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종일 CAD 모니터 앞에서 가공 경로를 뽑고 현장을 오가며 0.01밀리미터 공차와 씨름하느라 눈알이 뻑뻑했습니다. 피로가 어깨를 짓눌러 바로 올라가 씻고 쓰러져 자야 맞는데, 머릿속에 남은 모니터 잔상 때문에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잠시 멍때릴 생각으로 스마트폰을 켜고 영화 목록을 뒤적이다가 '허스토리'를 틀었습니다. 딱 20분이나 30분 정도만 틀어놓고 눈이 피로해지면 올라가서 잘 요량이었습니다. 시동을 끄고 차가운 공기가 밀려드는 차 안에서, 그렇게 별생각 없이 화면을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허스토리 관람, 새벽 1시 지하 주차장에서

틀어놓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을 끄려던 제 손이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피곤함에 풀려 있던 눈이 화면 속으로 멱살 잡히듯 단번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1990년대 부산에서 일어난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 화면 속에서, 김희애 배우가 맡은 문정숙 사장과 오랜 침묵을 깨고 나온 할머니들의 모습이 차 안의 적막을 단숨에 깨부수었습니다. 차량 송풍구에서 나오던 미지근한 바람마저 완전히 식어버렸는데 추운 줄도 몰랐습니다. 핸들을 꽉 쥔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고, 지하 주차장의 작은 울림조차 방해가 될까 봐 제 거친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화면을 노려보았습니다. 가공 현장에서 제품이 튕겨 나갈 것 같은 위태로운 순간에도 이 정도로 긴장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일본 법정의 싸늘한 공기와 그 앞에 마주 선 할머니들의 떨리는 목소리가 스마트폰 액정을 뚫고 나와 가슴팍을 짓눌렀습니다. 한평생 가슴에 피멍을 묻어두고 살았던 이들이 온갖 손가락질과 멸시를 뚫고 바다를 건너는 장면마다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화면 속 인물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겉옷 지퍼를 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화면이 팍 꺼지고 마지막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차 문 손잡이를 잡을 엄두가 안 났습니다. 당장 올라가서 애들 얼굴 보고 쉬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시커먼 지하 주차장 안에서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까만 화면에 하얗게 뜬 '6년, 23번의 재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까만 화면 위에 하얗게 박힌 '6년, 23번의 재판'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6년이라는 세월 동안 무려 스물세 번이나 그 먼 바다를 건너가 일본 사법부라는 거대한 벽 앞에 섰던 것입니다. 젊은 사람도 한두 번 왕복하면 녹초가 될 여정입니다. 그런데 굽은 허리를 이끌고 그 험난한 길을 스물세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할머니들이 그 긴 세월 동안 원했던 것은 보상금 몇 푼이 아니었습니다. 힘없는 소녀였던 시절, 국가와 세상에 무참하게 짓밟혀버린 인간으로서의 존재와 지워지지 않는 상처에 대한 정당한 사과 딱 하나였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쪽이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 그 지극히 당연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그 노구를 이끌고 매번 차가운 법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던 셈입니다. 그 스물세 번의 비행기표와 배표 뒤에 서려 있는 피눈물의 무게를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공장에서 납기일 며칠만 밀려도 거래처 눈치를 보며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데, 결론조차 기약 없는 차가운 법정에 6년을 바친 그 고집과 결기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화면이 완전히 꺼졌는데도 한 시간 넘게 시동 꺼진 차 안에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간간이 지나가는 다른 차들의 불빛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차가워진 운전대를 양손으로 쥐고 있으니, 쇳가루 묻은 제 손바닥의 굳은살이 유독 거칠게 만져졌습니다.

 

존엄을 깎아먹던 내 모습과 겹쳤다

차 안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납기를 맞춘다며 무리한 단가 후려치기를 모른 척 넘어가고 거래처의 억지 요구 앞에 고개를 숙이던 제 지난날들이 떠올랐습니다. 가장이라는 핑계로,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이유 뒤에 숨어서 제 자신의 존엄을 갉아먹으며 비겁하게 타협해 왔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손해가 날 것 같으면 미리 주판알을 튕겨보고 발을 빼던 제 얄팍한 모습이 화면 속 할머니들과 그대로 겹쳐 보였습니다. 물론 그 6년간의 긴 싸움은 완전한 승리로 끝나지 못했고 일부 승소라는 절반의 결과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바위에 기어이 지워지지 않는 깊은 흠집을 새겨 넣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깨뜨리지는 못했어도, 바위에 붉은 자국을 남겨서 지나가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 자리를 쳐다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니 새벽 3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3시간도 채 못 자고 다시 아침 7시 반까지 기름 냄새 진동하는 공장으로 기어들어가야 하는 팍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잔업, 귓전을 때리는 기계 소음이 벌써부터 떠올랐지만 이상하게도 평소처럼 짜증이 치밀지 않았습니다.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떴을 때, 늘 머릿속을 먼저 채우던 가공 치수나 단가 계산 대신 법정에서 주먹을 쥐고 서 있던 할머니들의 굳은 손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오늘 하루 대충 적당히 때우고 싶던 비겁한 마음이 쑥 들어갔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납기 압박과 거래처의 무리한 요구 속에서도 제 몫의 일과 기술자로서의 자존심을 먼저 내려놓지 않게 되었습니다. 비록 거창한 싸움은 아닐지라도, 내가 지켜야 할 자리에서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고집 하나가 가슴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출근해 기계 전원을 켜고, 작업 장갑 쥐는 손에 평소보다 힘이 묵직하게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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