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을 빠져나오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스크린 속에서 규남이 진흙탕에 얼굴을 처박고 사방에서 빗발치는 총알과 수풀을 헤치며 사력을 다해 내달리는 내내, 내 가슴 역시 똑같이 미친 듯이 방망이질을 쳤습니다. 나는 그저 냉방이 잘되는 어두운 극장 의자에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을 뿐인데,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조명이 켜지는 순간 마치 내가 그 지뢰밭 한가운데를 맨발로 내달리다 간신히 빠져나온 사람처럼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습니다. 땀범벅이 된 규남의 거친 숨소리가 상영관을 빠져나오는 복도 끝까지 귓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시원한 바깥공기를 깊게 들이마셔도 가슴속에 들어찬 뜨거운 불덩어리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종필 감독 연출, 이제훈과 구교환 주연의 영화 탈주가 남긴 충격은 그만큼 날카롭고 강렬했습니다.
탈주 관람 후기, 엔딩 크레디트 앞에서도 쉽게 일어서지 못한 이유
영화 탈주의 기본 서사는 군더더기 없이 아주 명확하고 거침이 없습니다. 북한의 최전방 부대에서 10년이라는 기나긴 군 복무를 마치고 만기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제훈 분)은 미래가 뻔하게 정해져 있는 답답한 땅을 벗어나 남한으로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남쪽에 내려가 엄청난 부자가 되겠다거나 호의호식하며 잘살겠다는 거창한 야망 때문이 아닙니다. 남이 정해준 운명에 순응하는 대신, 내 의지로 무언가를 직접 선택하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다가 설령 낭떠러지로 떨어져 처참하게 실패하더라도 온전히 내 힘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규남의 뒤를 맹렬하게 쫓는 인물은 어릴 적 인연이 있던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 분)입니다. 현상은 한때 러시아에서 촉망받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순수한 예술가의 꿈을 품었지만, 체제의 견고한 벽 앞에서 현실과 타협하고 피아노 뚜껑을 영원히 덮어버린 채 권력의 자리에 안주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영화는 오직 앞만 보고 내달리는 도망자 규남과, 시스템의 부품이 되어 그를 기필코 막아 세워야 하는 추격자 현상의 숨 막히는 직선적 질주를 박진감 넘치는 템포로 밀어붙입니다. 이 작품이 단순한 탈북 스토리를 넘어 현대인들의 심장을 관통하는 이유는, 영화 중반 도망치던 규남이 현상을 향해 울부짖듯 내뱉은 단 한 줄의 대사 때문입니다. "여기선 실패조차 할 수 없으니, 마음껏 실패해 보기 위해 간다." 이 짧은 한마디가 가슴에 비수처럼 박히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지위와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영혼 없는 눈빛으로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현상의 공허함, 그리고 온몸의 살갗이 찢겨 나가고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내 선택으로 실패해 보겠다며 앞을 향해 내달리던 규남의 독기 어린 눈빛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교차했습니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아도 내 삶을 직접 살아내겠다는 자의 서슬 퍼런 눈동자 앞에서, 나는 한동안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스크린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탈주를 보고 난 뒤 지하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지 못한 이유
상영관을 겨우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는데, 평소 같았으면 습관처럼 바로 시동 버튼을 누르고 내비게이션을 켠 뒤 서둘러 주차장을 빠져나갔을 내가 그러질 못했습니다. 시동도 켜지 않은 채 어두컴컴한 차 안에 가만히 앉아, 떨리는 두 손으로 운전대만 부서져라 꽉 쥐고 있었습니다. 손바닥에는 규남이 지뢰밭을 기어가며 움켜쥐었던 흙먼지의 감촉이라도 묻어있는 것처럼 식은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왔고, 차가운 차 안에는 내 불규칙한 숨소리만 작게 메아리쳤습니다. 그러다 문득 사이드미러에 비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난 내 얼굴을 마주한 순간, 가슴 한구석이 덜컹 내려앉으며 덜컥 겁이 났습니다. 지치고 피곤에 절어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 속으로 슬그머니 기어들어가려는 내 표정에서, 영화 속 현상의 그 메마르고 공허한 눈빛이 그대로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안전하다는 울타리 안에서 아무런 모험도 하지 않은 채, 다치지 않으려고 적당히 고개를 숙이고 정해진 궤도만을 맴돌며 살아가던 내 모습이 거울 속에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진짜 살아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안전하게 멈춰 서 있는 걸까.' 차창을 조금 내려 지하 주차장의 서늘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 뒤,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장을 켰습니다. 그리고 잊어버릴세라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꾹꾹 눌러 적었습니다. '마음껏 실패해 볼 자유를 마지막으로 누려본 게 언제였나.' 그 짧은 문장을 화면에 깊게 새겨 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차의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핸드폰 맨 위에 고정된 메모, 지친 일상을 다시 달리게 만들다
그날 밤 적어둔 메모는 지금도 내 스마트폰 메모장 가장 맨 위에 노랗게 핀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정신없이 살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어지기 마련입니다. "이 정도면 남들만큼 사는 거지", "괜히 긁어부스럼 만들며 모험할 필요 있나" 하면서 스스로에게 타협의 핑계를 대고 싶어질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메모장을 열어보곤 합니다. 화면을 열 때마다 시동도 켜지 않은 어두운 차 안에서 사이드미러를 보며 느꼈던 그 서늘한 부끄러움과, 빗발치는 총탄 속을 뚫고 나가던 규남의 처절한 날갯짓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에 그 메모를 다시 꺼내 읽은 것은 며칠 전 퇴근길 차 안에서였습니다. 온종일 기계가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소음 속에서 도면의 미세한 치수를 맞추느라 눈과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웠던 하루였습니다. 반복되는 일과를 겨우 쳐내고 나와 차에 올라탔는데, 온몸에서 진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붉은 신호 대기에 걸려 멈춰 서 있는 동안, '내일도 똑같이 출근해서 대충 사고 없이 하루 때우다 오겠지' 하는 지독한 무기력함이 턱밑까지 차올랐습니다.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고 그저 안전한 트랙 위에서 시키는 대로 버티는 게 훨씬 편하니까, 또다시 나 자신에게 값싼 면죄부를 주려던 찰나였습니다. 빨간 신호등 불빛 아래에서 핸드폰을 켜고 맨 위에 고정된 그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마음껏 실패해 볼 자유를 마지막으로 누려본 게 언제였나.' 액정 빛 너머로 흙투성이가 된 규남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지쳤다는 핑계로 또다시 내 인생의 마운드에서 슬그머니 도망치려 하던 내 안일한 태도가 번쩍 깨어났습니다. “운전대를 쥔 손끝에 묘하게 단단한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 짧은 문장 하나가 나를 다시 달리게 했습니다. 안전하다는 핑계 뒤에 숨어 무기력하게 주저앉는 대신, 비록 거친 비바람을 맞고 넘어질지언정 내 의지로 선택하고 부딪히며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내겠다는 다짐이 내 안에서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탈주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스스로 선택한 길을 향해 숨차게 달리고 있는가, 아니면 정해진 트랙 위에서 안전하게 멈춰 서 있는가. 삶의 매너리즘에 빠져 무기력해진 분들이라면, 마음속 멈춰 선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어 줄 이 거침없는 질주를 꼭 마주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