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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웅과 15년 차 가공 기술자의 왼손이 겹치던 밤

by cow85 2026. 11. 4.

영웅 영화 공식 포스터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와 주차장에 서 있는데, 무심코 제 왼손을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차 문을 열기 전 차가운 지하 주차장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손을 펴보았는데, 굳은살 박인 손바닥과 마디 굵어진 손가락들이 평소와 다르게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잔업을 마치고 곧장 극장으로 달려오느라 미처 털어내지 못한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고, 코끝에는 여전히 절삭유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유독 기계 소음 대신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차 시동도 바로 걸지 못했습니다. 100분의 1밀리미터 공차 맞춘다고 하루 종일 모니터와 가공물 사이를 오가며 신경을 곤두세웠던 탓에 눈자위가 뻑뻑했습니다. 멍하니 서서 핸들을 잡아야 할 손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영화 속 단지동맹 장면에서 잘려 나가던 그 손가락의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한참 동안 차 문 손잡이를 쥔 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영웅 혼자 관람, 손톱 기름때 덜 빠진 채 구석 자리

퇴근길에 충동적으로 예매를 하고 혼자 극장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평일 늦은 시간이라 관객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게 차려입은 연인들과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 틈에 섞여 있으려니 묘하게 겉도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작업복 바지만 겨우 갈아입고 부랴부랴 오느라 손톱 밑에 낀 검은 기름때를 미처 다 빼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조용히 상영관 맨 뒤 구석 자리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오랜만에 푹신한 극장 의자에 몸을 파묻었는데도 어깨 뭉친 근육은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화면에서 안중근 의사의 결의에 찬 눈빛과 동지들의 외침이 웅장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을 때, 혼자 보러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먼저 스쳤습니다. 옆에 아내나 아이들이 있었다면 가장이라는 체면에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를 먹었을 텐데, 사방이 컴컴한 어둠 속이라 숨죽여 끅끅거리며 터져 나오는 울컥함을 온전히 다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스크린 속에서 거친 눈보라를 맞으며 조국의 독립을 노래하는 인물들의 얼굴을 보는데, 이상하게도 제 속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먹먹함이 동시에 차올랐습니다. 역사책에서 글로만 보던 영웅의 거대한 대의명분 이면에 깔린 한 인간의 처절한 고통이 노래와 함께 객석 구석자리까지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주먹만 꽉 쥐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객석에 불이 환하게 켜지는 순간에도 벌겋게 충혈된 눈을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었습니다.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코끝까지 바짝 끌어올리고 나서야 뜨겁게 달아오른 눈가를 조금씩 식힐 수 있었습니다.

 

공장 15년이 본 넷째 손가락, 악력 절반·캘리퍼스 손 덜덜 떨림

주차장 차 안으로 들어와 앉아서도 제 왼손의 네 번째 손가락을 자꾸만 만지작거리게 되었습니다. 정밀 가공 현장에서 15년을 굴러먹다 보니, 영화를 보면서도 그 단지(斷指)라는 행위가 직업적으로 얼마나 끔찍한 대가를 치르는 일인지 본능적으로 계산이 서더군요. 기계 만지는 기술자에게 손가락 하나는 단순히 살점 한 조각이 아닙니다. 넷째 손가락이 잘려 나가면 손 전체의 악력이 절반 가까이 날아가 버립니다. 당장 묵직한 가공 소재를 바이스에 물릴 때 힘을 제대로 줄 수도 없고, 1000분의 1밀리미터를 다투는 버니어 캘리퍼스나 마이크로미터를 쥘 때 손끝이 덜덜 떨려 영점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칼날보다 날카로운 칩이 튀고 회전하는 스핀들 앞에서 손의 균형 감각을 잃는다는 건, 기술자에게는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그 손가락을 제 손으로 직접 잘라내며 피로 맹세를 적어 내려갔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손끝이 서늘해졌습니다. 제 왼손 넷째 손가락을 들여다보니, 결혼반지를 껴야 할 자리에 반지는 온데간데없고 쇳덩이에 긁히고 패인 굳은살만 덕지덕지 박여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공장 바닥에 처음 들어와 칩에 손을 베여가며 기계를 배우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 손은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바동거리며 굳은살을 채워온 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손가락을 조국을 위해 망설임 없이 바쳤던 그 무게감이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아 팔뚝에 닭살이 돋아났습니다. 거룩한 대의명분 뒤편에 홀로 남겨졌을 그의 처자식과 어머니의 속눈물이 유독 가슴 깊숙이 밟혔습니다.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지어 보낸 수의를 입고 담담하게 죽음을 기다리던 그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 사람의 영웅 뒤에는 묵묵히 뼈를 깎는 고통을 삼켜야 했던 가족들의 찢어지는 비명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나라를 구한 불멸의 역사보다, 남겨진 가족들의 시린 삶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건 저 역시 두 아이의 아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관문 열자마자, 24평 아파트의 영웅 노릇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조심스럽게 도어록을 누르고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어질러진 신발들과 거실 바닥에 뒹구는 알록달록한 색종이 조각들, 그리고 주방 한구석에 식어 있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훅 끼쳐왔습니다. 식탁 위에는 오늘따라 숙제를 다 끝내지 못하고 잠들었는지 첫째 아이의 연필 깎다 만 흔적과 구겨진 공책이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은 뒤, 불 꺼진 방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나란히 누워 색색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두 아이의 얼굴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들여다보았습니다. 매일 기름때와 쇳가루를 뒤집어쓰고 와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는 무뚝뚝한 아비인데, 이 24평 작은 아파트 안에서 나는 과연 이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밖에서는 납기일에 쫓겨 거래처 눈치나 보고 불량 하나에 속을 졸이는 일개 임가공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이 작은 방 안에서만큼은 제가 이 아이들의 온전한 우주이자 벽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나라를 구하는 거창한 대의는 꿈도 꾸지 못하지만, 매달 돌아오는 대출금과 아이들 학원비를 감당하며 이 보잘것없는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전쟁입니다. 이 작은 울타리 지키는 하루하루가 나 같은 평범한 놈의 영웅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처럼 역사의 전면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내 가족이 비바람 맞지 않게 기름 묻은 손으로 묵묵히 밥벌이를 해내는 것 자체가 내가 짊어져야 할 사명일지도 모릅니다.

 

엔진오일 두 시간, 1년 통틀어 유일한 내 시간

문득 지난 주말에 정비소에서 카니발 엔진오일을 갈며 보냈던 두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1년 365일을 통틀어 온전히 나 혼자만의 의지로 보낸 시간이라고는 그 정비소 고객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자판기 믹스커피 한 잔 마시던 그 두 시간이 전부였습니다. 집에서는 남편이자 아빠로, 공장에서는 반장이자 기술자로 쉴 틈 없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다 보니 혼자 있는 법조차 잊고 살았습니다. 모처럼 두어 시간의 자유가 생겼을 때도 신나거나 홀가분하기는커녕,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리고 마음이 좌불안석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공장 기계가 멈췄다는 전화가 올지, 집에서 아이가 다쳤다는 연락이 올지 몰라 핸드폰 화면만 습관처럼 뒤집어 확인하곤 했습니다. 나라는 인간의 이름 석 자를 지워버리고 산 지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막상 내게 주어진 찰나의 빈 시간조차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것입니다. 영화 속 독립투사들은 자신의 청춘과 목숨까지 송두리째 바쳐 나라의 내일을 열었습니다. 그 거대한 희생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오늘날 우리네 평범한 가장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워가며 가족의 내일을 버텨내고 있습니다. 쇳밥 먹으며 굳어진 손으로 핸들을 쥐고, 내 삶의 몫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수많은 이들의 하루가 겹쳐 보였습니다.

 

이 작은 울타리 지키는 하루하루가 나 같은 평범한 놈의 영웅 노릇이지요. 내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알람 소리에 무거운 눈을 비비며 일어나 작업복 지퍼를 올릴 것입니다. 거창한 대의는 없을지라도, 내일도 도면 보면서 치수 하나 안 틀리게 쇠를 깎아내며 내 아이들의 따뜻한 밥상을 지켜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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