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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멤버] 후기, 이성민의 눈빛과 서늘한 비극

by cow85 2026. 8. 24.

리멤버 영화 공식 포스터

 주말 밤 가벼운 마음으로 킬링타임 영화나 볼까 싶어 무심코 틀었는데, 침대에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1초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마트폰 OTT 화면 속에서 80대 노인으로 분장한 이성민 배우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손가락의 문신을 내려다보는 첫 순간부터, 이 작품은 내가 예상했던 단순한 오락 영화의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 내 숨통을 거칠게 틀어쥐었다.

 

1. 리멤버 첫 장면, 누워있다 벌떡 일어났다

영화 <리멤버>의 줄거리는 초등학생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다. 뇌종양과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80대 노인 '한필주'가,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자신의 부모와 형제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친일파 원수 4명을 평생 준비해 온 계획에 따라 직접 찾아가 처단하는 복수극이다. 그리고 그 위험천만한 여정에 영문도 모른 채 붉은색 외제차를 운전하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동행하게 된 20대 청년 '인규'가 얽히며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솔직히 나는 영화를 틀기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영화 <테이큰>이나 <존 윅>처럼, 나쁜 놈들을 통쾌하게 박살 내며 묵은 체증을 싹 날려주는 짜릿한 '사이다 액션'을 기대했다. 하지만 첫 장면에서 자신의 떨리는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복수할 원수들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겨 넣고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처단하려는 노인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편하게 베고 있던 베개를 던져버리고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악당을 응징하며 쾌감을 즐기는 영웅 이야기가 아니라, 손을 덜덜 떨며 뇌 속의 기억을 잃어가는 한 노인이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처절한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속 시원하게 악당을 무찌르는 통쾌한 복수극으로 끝날 줄 알았던 내 가벼운 기대는 시작부터 산산조각이 났다.

 

2. 병원 로비 그 장면, 카타르시스 없던 이유

그 서늘한 감정의 파동이 가장 강하게 가슴을 짓눌렀던 순간은 병원 로비에서 첫 번째 원수를 처단하던 장면이었다. 과거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수가 총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을 때, 일반적인 액션 영화였다면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터져 나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피를 흘리며 쓰러진 원수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몸을 숨긴 필주의 모습에는 그 어떤 승리감이나 후련함도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손가락에 새겨진 이름을 붉게 지워나가는 그의 눈빛에는 오직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공포, 그리고 지독한 허탈함만이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바로 그 찰나에 뇌 손상으로 인한 섬망 증세가 찾아와 자기가 방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조차 잊어버리며 넋을 놓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 가슴은 서늘하게 턱 막혀버렸다. 원수를 향한 총알은 통쾌한 구원이 아니라, 노인 자신까지 남김없이 갉아먹고 파괴해 버리는 잔인한 비극이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와닿았다. 기억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가는 뇌를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평생 가슴에 품어온 시린 한을 털어내려 발버둥 치는 모습은 보는 내내 목구멍을 뜨겁게 만들었다. 손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면서도 소중한 사람들과 지독한 원수를 잊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이성민 배우의 거친 숨소리와 떨리는 눈빛 연기 하나만으로도, 러닝타임 내내 숨죽이고 지켜볼 가치가 차고 넘쳤다.

 

3. 엔딩 후 10분, 스마트폰 화면에 비친 내 얼굴

모든 복수의 여정이 끝나고 마지막 총성이 멎은 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검게 변한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화면이 꺼지며 어두컴컴한 방 안의 적막 속에 비친 내 멍한 얼굴을 마주하는데, 명치끝이 묵직한 돌덩이로 꽉 막힌 것처럼 뻐근하고 먹먹했다. 자극적인 액션 영화를 보고 났을 때의 흥분감은 전혀 없었다. 평생을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왔지만 결국 그 끔찍했던 역사의 상처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던 한 인간의 서글픈 일생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지만, 서늘한 여운과 이성민 배우의 처연한 표정이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아 쉽게 눈이 감기지 않았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니 억지로 밤을 새우며 뒤척이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방 안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딱 10분 동안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가슴속에 차오른 그 묵직한 씁쓸함과 먹먹함을 조용히 정리한 뒤에야 스르륵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성민 손 덜덜 떨며 기억 붙잡으려는 숨소리·눈빛만으로 러닝타임 내내 숨죽이고 볼 가치 충분하다. 자극적이고 생각 없이 때려 부수는 일회성 사이다 액션에 지쳐서, 보고 난 뒤 혼자 조용히 가슴을 먹먹하게 채우는 깊은 여운과 압도적인 연기력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주저 없이 이 영화를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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