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강아지 피파가 납치되는 바로 그 순간, 소파에 기대어 있던 두 녀석이 엉덩이를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았습니다.” 주말 저녁, 한 주 동안 쌓인 고단한 피로를 털어내며 그저 아이들과 나란히 둘러앉아 달콤한 간식이나 나눠 먹을 요량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스크린 속에서 작고 앙증맞은 강아지가 비열한 악당들의 손에 거칠게 넘어가자마자, 거실 안을 채우고 있던 느긋하고 평화로운 공기는 단숨에 얼어붙었습니다. 3살 터울의 두 아이는 방금 전까지 과자를 집어 먹던 손을 허공에 그대로 멈춘 채,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눈을 반짝였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부터 우리 집 거실은 단순한 휴식의 공간을 넘어, 오롯이 알프스 산자락 아래에서 펼쳐지는 숨 막히는 구출 작전의 현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한노 올더디센 감독이 연출한 가족 어드벤처 영화 〈래시: 뉴 어드벤처〉가 우리 가족에게 건넨 뜻밖의 뜨거운 선물이었습니다.
래시 뉴 어드벤처, 피파 납치 순간 소파 끝까지 당겨 앉은 아이들
영화 〈래시: 뉴 어드벤처〉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는 초등학생 아이라도 단숨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직관적이고 경쾌합니다. 1943년 에릭 나이트의 소설 이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전설적인 명견 래시와 그의 둘도 없는 단짝 소년 플로가 여름 방학을 맞아 오스트리아 남티롤의 그림 같은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알프스의 눈부신 자연 속에서 사촌 남매들과 재회하고, 새로 사귄 작고 사랑스러운 잭 러셀 테리어 강아지 '피파'와 함께 푸른 들판을 내달리며 꿈같은 방학을 보냅니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마을 일대에서 몸값이 비싼 명품 혈통견들만을 노리고 납치하는 전문 개 도둑 일당이 암약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아이들의 가장 소중한 단짝인 피파마저 도둑들의 그물에 걸려 납치당하고, 영리한 콜리 래시와 아이들은 작은 친구를 구출하기 위해 험준한 산악 지대와 계곡을 넘나드는 위험천만한 모험 속으로 뛰어듭니다. 영화 속에서 도둑들의 손에 피파가 자루에 담겨 끌려가던 바로 그 장면부터, 우리 집 두 녀석은 소파 앞으로 엉덩이를 바짝 당겨 앉으며 숨을 죽였습니다. 래시가 바람을 가르며 가파른 산길을 전력으로 질주하고 아이들이 위험을 무릅쓰며 그 뒤를 쫓아갈 때, 내 양옆에 나란히 붙어 앉아 있던 아이들은 내 팔을 각자 한 짝씩 꼭 붙잡았습니다. "아빠, 피파 무사히 구하겠지?", "래시 다치면 절대로 안 되는데, 어떡해!" 하며 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올 정도로 아빠의 팔을 부서져라 꽉 쥔 채, 영화 속 작은 동물들의 안위를 자기 일처럼 가슴 아파하는 그 조그만 옆모습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때 가슴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함이 왈칵 번져왔습니다. 매사 이해득실을 따지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방어벽부터 단단히 세우기 바쁜 어른들의 세상과 달리, 화면 속 이름 모를 작은 생명의 아픔에 온 마음을 다해 함께 눈시울을 붉히는 그 티 없이 맑은 순수함이 내 메마른 가슴을 툭 치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타고 쫓아가자, 거실 한복판에서 세운 형제의 구출 작전
기나긴 추격전 끝에 마침내 악당들이 응징을 당하고, 작은 피파가 다시 아이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따뜻한 결말과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습니다. 화면이 암전되고 거실에 불이 켜지자마자, 두 녀석은 마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거실 한복판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만약 나쁜 사람들이 우리 강아지 훔쳐 가면, 우린 자전거 타고 끝까지 쫓아가서 혼내줄 거야!" "맞아, 래시처럼 큰 나무 뒤에 몰래 숨어서 망원경으로 암호 신호 보내며 지켜보는 거야!" 영화가 남긴 벅찬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아이들은 거실 바닥을 뒹굴고 소파 위를 방방 뛰며 자기들만의 기상천외한 구출 작전을 세우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도둑을 잡으러 가겠다는 둥, 강아지와 통하는 비밀 신호를 연습해야 한다는 둥, 3살 터울의 형제가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내는 무모하고도 눈부신 용기의 말들이 온 거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더니 녀석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무릎을 짚고 서서는,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우리도 진짜 강아지 한 마리만 키우면 안 돼? 래시처럼 진짜 똑똑하고 씩씩하게 잘 돌볼 수 있는데!" 첫째는 자기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 빼먹지 않고 산책도 시키고 밥그릇도 깨끗하게 씻어줄 수 있다며 의젓하게 큰소리를 쳤고, 둘째는 형의 말에 질세라 자기가 제일 아끼는 로봇 장난감도 강아지에게 다 양보하겠다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습니다. 세상의 전부를 내어줄 것처럼 작은 생명을 온전히 품어보고 싶어 하는 그 순진무구한 열망 앞에서, 나는 한동안 차마 말문을 열지 못한 채 복잡한 마음으로 머뭇거려야만 했습니다.
현실의 벽 앞에 달랬더니, 눈물 훔치고 꺼내 든 돼지 저금통
하지만 매일같이 쇠 깎는 기계 소음 속에서 쇳가루를 마시며 일하고, 늦은 밤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맞벌이 현실 속에서 또 하나의 소중한 생명을 가족으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살아 숨 쉬는 생명을 거둔다는 것은 단순히 예뻐하는 감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텅 빈 집에서 온종일 가족을 기다리며 외로움에 떨어야 할 어린 강아지의 처지나 경제적, 시간적 책임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무거운 마음을 억누르며 아이들의 작은 손을 가만히 쥐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빠가 일터에서 너무 바쁘고, 우리 집이 아직 새 생명을 맞이할 준비가 부족하다는 현실을 눈높이에 맞추어 조심스레 설명하며 달랬습니다. 아빠의 거절 섞인 설명에 처음엔 두 녀석 모두 볼에 바람을 잔뜩 넣은 채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특히 여린 둘째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내 무릎에 얼굴을 푹 파묻은 채 "치이... 나 진짜 밥도 안 굶기고 똥도 매일 잘 치울 수 있는데..." 하고 한참 동안 서러운 목소리로 웅얼거렸습니다. 어린 자식의 그 순수하고 어여쁜 소망을 어른의 현실적인 잣대로 가로막았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목구멍 안쪽이 묵직하게 메여왔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제법 의젓한 척 입술을 앙다물고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첫째가 동생의 어깨를 툭툭 치며 씩씩하게 목소리를 냈습니다. "야, 아빠가 지금 말고 나중에 우리가 더 크면 다시 생각해보자잖아. 그럼 내가 중학생 형아가 될 때까지 도서관에서 강아지 책 엄청 많이 읽어서 진짜 반려견 박사가 되어 있을게. 그때는 아빠도 무조건 인정해 줄 수밖에 없을걸?" 형의 든든하고 다정한 말 한마디에,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먹이던 둘째 녀석도 이내 옷소매로 젖은 눈가를 쓱 닦아내더니 고개를 번쩍 들고 힘차게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럼 난 그때까지 강아지 맛있는 간식 살 돈, 내 돼지 저금통에 동전 꽉꽉 채워 모을 거야!" 떼를 쓰거나 원망을 쏟아내는 대신 아빠의 지친 사정을 어렴풋이 헤아리며, 먼 훗날을 위해 책을 읽고 돼지 저금통을 채우겠다고 나서는 그 조그만 뒤통수들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그 대견하고 눈물겨운 마음에 나는 두 아이를 두 팔 가득 품에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아이들에게 훗날 사춘기가 찾아오면 이 영화를 꼭 다시 틀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 돼지 저금통의 약속을 꺼내 보여줄 생각입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머리 굵은 사춘기가 되고, 차가운 세상의 거친 비바람과 마주하며 휘청거리는 날이 분명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마다 아무런 대가나 계산 없이 누군가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어 했던 저 눈부신 유년의 약속이, 아이들의 영혼을 지켜주는 가장 단단하고 따뜻한 방패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영화 〈래시: 뉴 어드벤처〉는 단순한 동물 영화를 넘어, 아이들에게는 생명을 향한 숭고한 책임을, 어른들에게는 잊고 살았던 순수함의 가치를 눈물겹게 일깨워준 고마운 작품입니다.